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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딸 한강에게 당부한 슬픈 눈빛은, 세상 보는 냉엄한 눈”

등록 2018-03-13 15:18수정 2018-03-13 20:50

원로 소설가 한승원 산문집 출간 간담회
“슬픔의 힘, 더 정확하게 꿰뚫는 시각 열어줘
진작 아비 뛰어넘은 딸의 문학, 가장 큰 효도”

소설가 한승원
소설가 한승원
“예전에 어느 유학자가 말하기를, 집을 나서자 길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늘 길을 잃었다가 다시 찾고, 잃었다가는 다시 찾는 일을 계속 해왔더군요. 꽃을 꺾는다는 건 인생의 큰 어떤 것을 성취한다는 뜻인데, 길을 잃었다가는 다시 찾고 각성해온 기록이 이 책이요 저의 인생살이인 셈입니다.”

원로 소설가 한승원(79)이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불광출판사)를 내고 13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고향인 전남 장흥의 해산토굴로 내려가 22년째 살고 있는 작가의 이번 산문집은 문학을 꿈꾸며 아버지에 맞서던 젊은 시절부터 그 자신 ‘늙은 아비’가 되어 자식들을 염려하고 격려하는 현재까지 반세기 넘는 세월을 아우른다. 책 말미에는 지난해 독감에 걸려 고생하면서 쓴 일기와 편지글을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주는 편지’라는 제목 아래 부록으로 곁들였다.

“아들딸들이 모두 문학을 하니, 그들 앞에 제가 전범이 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들딸에게 주는 편지에서도 밝혔지만, 유식학(唯識學)에서는 내 눈빛이 하늘의 별빛과 달빛을 만든다고 합니다. 저는 제 자식들에게, 자신만의 독특한 슬픈 눈빛을 지니라고 당부합니다. 그 눈빛으로 자신만의 풍경을 창조하라고요.”

왜 굳이 ‘슬픈 눈빛’인가 하는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즐거운 감성일 때는 마음이 들뜨기 때문에 세상을 냉엄하게 보지 못합니다. 슬퍼졌을 때 더 차가워지고 냉엄하게 세상을 보니까, 더 정확하게 꿰뚫는 시각을 지닐 수 있어요. 제 자식들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그처럼 슬프고 냉엄한 눈빛, 도전적인 정신을 지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를 내고 13일 낮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소설가 한승원이 자신의 서재 벽에 써 놓고 자신을 다스린다는 문구 ‘광기’ 를 써서 보여주고 있다.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를 내고 13일 낮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소설가 한승원이 자신의 서재 벽에 써 놓고 자신을 다스린다는 문구 ‘광기’ 를 써서 보여주고 있다.
기자간담회가 열리기 직전 작가의 딸인 소설가 한강이 2016년에 이어 다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간담회에서도 그에 관한 질문이 쏟아졌는데, 작가는 “저와 제 책이 아닌 딸에 관한 질문이 나오는 게 불편하지 않다. 한강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도 기분 좋다”고 말했다. “그게 진짜 효도죠. 저는 그 아이가 진작 저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효도는 승어부(勝於父), 그러니까 아비를 뛰어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돼야 우리 세상도 싹수 있는 세상이겠죠.”

그는 “내가 좀 더 리얼리즘 쪽에 뿌리하고 있다면, 강이(=한강)의 세계는 훨씬 환상적이랄까 신화적인 쪽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세계라서, 그 아이의 작품을 읽으면서 나도 공부를 더 해야겠다 생각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올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오른 <흰>과 관련해서도 “강이 생각이 내 생각과 일치하더라”라며 이번 산문집에 실린 글 가운데 ‘흰, 그게 시(詩)이다’라는 글을 참조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지금 젊은 세대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초현대적이고 열려 있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죠. 눈앞을 가리는 꽃나무가 많은 세상입니다. 핸드폰이 대표적이죠. 헬조선 속에 자기를 빠뜨리는 것도 자기고, 그것을 극복하고 새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도 자기라는 것, 도전적으로 살라는 말을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습니다.”

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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