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성 지음/창비·1만4500원 안재성(사진)은 소설 <경성 트로이카>와 <박헌영 평전> <이관술> 같은 논픽션 작업을 통해 일제강점기와 해방 공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족적을 되살리는 데에 주력해 왔다. 그의 신작 장편소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는 그 연장선상에 놓이는 작품이다. 작가에 따르면 이 소설은 지인한테서 건네받은 수기를 바탕 삼아 쓰였다. 수기의 주인은 정찬우(1929~1970)라는 실존 인물. 전북 고창 출신인 그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가족과 함께 만주로 옮겨 갔고, 일제 말에는 조선의용군에 들어가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으며, 해방 뒤에는 북쪽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와 교사로 일하며 소설집을 내고 작가동맹 소속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쟁이 나면서 영남지방을 담당하는 당 교육위원으로 임명되어 남쪽으로 내려온 그는 인천상륙작전 뒤 낙오한 인민군과 함께 지리산 등지에서 빨치산 생활을 하다가 체포되었으며,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전향서를 쓰고 1960년에 석방되었다. 안재성의 소설에서 정찬우의 삶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쟁에 휘말려 찢기고 짓밟히는 무기력한 희생자의 그것으로 그려진다. 식민 시기부터 사회주의 이념을 신봉했고 남북 분단 뒤에는 북 체제를 택했던 그이지만, 그의 꿈은 어디까지나 학문 연구와 교육 그리고 문학이었다.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딸과 결혼을 앞두고 있었지만 헤어져야 했고, 전쟁 중에 사랑했던 여성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김일성 수상이 하사한 권총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단 한 방도 쏘지 않을 정도로 폭력을 증오하고 평화를 사랑했던 그가 전쟁 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에서, 그리고 이어서는 사상범으로 감옥에서 겪어야 했던 유형 무형의 폭력은 역사의 잔인한 아이러니를 절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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