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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전쟁에 휩쓸린 평화주의자 문학청년

등록 2018-03-15 20:14수정 2018-03-15 20:27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안재성 지음/창비·1만4500원

안재성(사진)은 소설 <경성 트로이카>와 <박헌영 평전> <이관술> 같은 논픽션 작업을 통해 일제강점기와 해방 공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족적을 되살리는 데에 주력해 왔다. 그의 신작 장편소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는 그 연장선상에 놓이는 작품이다.

작가에 따르면 이 소설은 지인한테서 건네받은 수기를 바탕 삼아 쓰였다. 수기의 주인은 정찬우(1929~1970)라는 실존 인물. 전북 고창 출신인 그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가족과 함께 만주로 옮겨 갔고, 일제 말에는 조선의용군에 들어가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으며, 해방 뒤에는 북쪽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와 교사로 일하며 소설집을 내고 작가동맹 소속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쟁이 나면서 영남지방을 담당하는 당 교육위원으로 임명되어 남쪽으로 내려온 그는 인천상륙작전 뒤 낙오한 인민군과 함께 지리산 등지에서 빨치산 생활을 하다가 체포되었으며,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전향서를 쓰고 1960년에 석방되었다.

안재성의 소설에서 정찬우의 삶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쟁에 휘말려 찢기고 짓밟히는 무기력한 희생자의 그것으로 그려진다. 식민 시기부터 사회주의 이념을 신봉했고 남북 분단 뒤에는 북 체제를 택했던 그이지만, 그의 꿈은 어디까지나 학문 연구와 교육 그리고 문학이었다.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딸과 결혼을 앞두고 있었지만 헤어져야 했고, 전쟁 중에 사랑했던 여성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김일성 수상이 하사한 권총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단 한 방도 쏘지 않을 정도로 폭력을 증오하고 평화를 사랑했던 그가 전쟁 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에서, 그리고 이어서는 사상범으로 감옥에서 겪어야 했던 유형 무형의 폭력은 역사의 잔인한 아이러니를 절감하게 한다.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야밤에 마을에 침입해 식량과 가축을 빼앗고, 밥술이나 먹는 사람은 반동분자라고 죽여버리고, 돌아올 때에는 인민들이 애써 지은 학교나 관공서를 불태워버리는 게 무슨 구국투쟁이요, 해방투쟁입니까?”

패잔병 신세로 도망 다니던 정찬우가 역시 같은 신세가 된 운전병 출신 윤성남과 우연히 재회했을 때 그가 한 말은 전쟁의 허무한 본질을 겨냥한다. “인민군도 싫고 국방군도 싫”다며 “무사히 살아남으면 고향에 돌아가 농사나 지을” 거라던 윤성남은 결국 토벌대의 총에 스러지고 만다. 그보다 앞서, “산골짜기에 아무도 모르는 오두막을 지어놓고 (…) 살다가 틈을 보아 자수하”자던 전장의 연인 이옥련의 운명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작가는 “그의 수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구상에 어떠한 전쟁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에 맞춰져 있다”며 그것이 수기를 소설화한 이유였다고 밝혔다.

최재봉 기자,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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