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수사학
우찬제 지음/문학과지성사·2만8000원
산수유와 매화를 필두로 화신(花信)이 바삐 북상하는 무렵이다. 찬 겨울을 헐벗은 몸으로 견딘 나무들이 화사한 꽃과 잎사귀로 봄을 구가하는 것이다. 여름이면 무성한 잎으로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가을엔 알록달록 단풍으로 마지막 불꽃을 사르다가는 겨울이 되면 기꺼이 가난과 고독 속으로 침잠하는 나무의 사계는 뭇 시인·소설가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불어넣어 왔다.
문학평론가 우찬제(사진) 서강대 교수의 새 책 <나무의 수사학>은 한국문학에 나타난 나무의 이미지와 상상력을 천착한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빼고 4장으로 이루어진 책은 나무의 계절별 형태와 속성을 통해 인간과 세계의 이치를 궁구하고 소망을 피력한 작품들에 초점을 맞춘다. ‘뿌리 내리기와 생명의 나무’ ‘변신의 수형도와 욕망의 나무’ ‘난세의 풍경과 상처의 나무’ ‘봄을 그리는 나목(裸木)과 치유의 나무’ 등 계절별 제목이 그 이치와 소망을 요약한다.
“오 이 향기/ 싱글거리는 흙의 향기/ 내 코에 댄 깔대기와도 같은/ 하늘의 향기/ 나무들의 향기!”(‘초록 기쁨’)라 노래한 정현종은 봄 나무의 생명력을 줄기차게 노래한 대표적 시인이다. 우찬제 교수에 따르면 “정현종의 나무는 생명의 에너지로 충일해 있다. 그 우주의 나무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기운을 연결하며 생명의 환희로 모든 것을 춤추게 한다.” 정치와 역사의 황톳길을 지나온 김지하가 “내가 타 죽은/ 나무가 내 속에 자란다/ 나는 죽어서/ 나무 위에/ 조각달로 뜬다”(‘줄탁’)고 비의적으로 선언할 때, “(그가)추구하는 신생은 무엇보다 생명의 연대에 기반한 우주적 질서가 현현된 삶”이라고 우 교수는 파악한다.
2장 여름 편에서는 이승우와 한강의 소설을 비중있게 다룬다. “두 개의 좌절한 사랑 이야기가 나무의 신화 위에서 겹으로 전개”되는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이 “수성(獸性)적 혹은 동물적 욕망의 악무한으로 점철되고 있는 현실에서 수성(水性)적 혹은 식물적 욕망의 가능지평을 탐문”한다면, <채식주의자>의 한강은 “폭력적 현실에서 절망하여 식물적인 나무의 상태로 회귀하려는 충동과 정념을 보인다.”
‘장평리 찔레나무’ ‘장석리 화살나무’ 등 연작 여덟편으로 이루어진 이문구의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와 관련해 우 교수는 “‘장’자로 시작되는 마을의 나무들은 무용지용의 ‘장자’의 나무들”이라며 그것이 장자식 ‘쓸모없음의 쓸모’라는 이문구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그런가 하면 박수근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박완서 소설 <나목>은 “봄에의 그리움과 믿음으로 견디는 겨울 나목의 상징성”을 지녔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최재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