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앙드레 말로 지음, 김웅권 옮김/문학동네·2만원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사진·1901~76)가 스페인 내전 참전 경험을 담아 쓴 소설 <희망>(1937)이 새롭게 번역돼 나왔다. <희망>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와 더불어 스페인 내전을 다룬 3대 산문작품으로 꼽힌다.
앙드레 말로는 1936년 파시스트에 맞서는 공화군의 국제비행대를 조직하고 지휘한 경험을 살려 이듬해 이 소설을 내놓았다. 1936년 7월에 파시스트 프랑코 장군의 반란으로 촉발된 스페인 내전은 스페인은 물론 유럽과 미국, 소련 등 전 세계 양심 세력의 연대 투쟁에도 불구하고 1939년 3월 군부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희망>은 프랑코의 반란에서부터 8개월의 기간을 반파시스트 진영 내부의 시점에서 그린다. 공산당을 필두로 한 각종 좌파 정당 및 조직, 무정부주의자들, 노조원들과 농민들, 그리고 민위대와 파시스트 출신 전향자들이 뒤섞인데다 말로 자신과 같은 외국인 의용군까지 결합돼 반파시스트 진영은 매우 혼란스러우면서도 국제주의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소설은 파시즘에 저항한다는 것 말고는 이념과 목표가 서로 다른 이들이 때론 갈등하고 때론 협력하며 형제애와 연대를 구축하는 모습,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혼란과 긴장,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전사들의 용기와 희생정신을 다각도로 보여준다.
<희망>은 반파시스트 진영의 다채로운 면모를 대표하는 주요 인물 20여명의 이야기를 파노라마 식으로 보여준다. 말로 자신의 가탁이라 할 국제비행대 의용대장 마니앵도 흥미롭지만, 소설의 문을 열고 닫는 주인공은 영화 스튜디오 음향기사이며 공산당원인 마누엘이다. 스키를 타러 갈 때 쓰고자 몇 달 전 중고 자동차를 구입했던 마누엘은 내전이 발발하자 자신의 자동차를 당의 공적 용도에 기꺼이 내놓는다.
“막연하지만 끝없는 희망으로 가득한 이 밤, 인간 각자에게 지상에서 수행할 임무가 부여된 이 밤만이 있을 뿐이다.”
내전 발발 직후 마누엘의 심경과 각오를 담은 이 문장은 파시즘의 준동에 맞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켜야 하며 또 지킬 수 있다는, 정치적 낙관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로부터 8개월 뒤에 해당하는 소설 마지막 장면 역시 마누엘의 내면 묘사로 처리되는데, “도랑을 흐르는 물소리와 포로들의 발소리에 뒤섞인 그 존재, 그의 심장의 고동소리처럼 깊고 영속적인 그 존재를 내면으로 느끼고 있었다”고 할 때의 ‘그 존재’란 가톨릭으로 대표되는 모종의 영적인 존재 내지는 가치라는 것을 소설을 통독하면 알게 된다. 옮긴이가 이 소설을 가리켜 “공화국 군대의 창설 과정이 로마교회의 탄생 과정을 창조적으로 재현하고 혁명과 교회의 재탄생을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되도록 짜놓은 정교한 작품”이라고 해설에서 쓴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가령 바르셀로나에서 파시스트에 맞서 싸우다 숨진 무정부주의자 인쇄공 푸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민위대 대령 히메네스와 논쟁을 하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유일하게 성공한 무정부주의자’라 표현한다. 그런가 하면 역시 무정부주의자인 에르난데스 대위가 소설 중반부에서 파시스트들에게 붙잡혀 처형되는 장면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연결되면서 역시 혁명과 교회 재탄생의 긴밀한 상관 관계를 보여준다는 게 옮긴이의 해석이다.
“처음으로 자유주의자, U.G.T.(노동총연맹)와 C.N.T.(전국노동연맹)의 구성원, 무정부주의자, 공화주의자, 조합주의자, 사회주의자 들이 모두 함께 적의 기관총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푸취가 목격한 이런 장면이야말로 스페인 내전에서 구현된 인류애와 형제애, 연대의 상징이자 소설 <희망>의 핵심에 해당한다 하겠다.
최재봉 기자, <한겨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