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지음/북콤마·1만8800원 이명박 정부 첫 해인 2008년, <한겨레21>은 ‘올해의 판결’을 선정하기 시작했다. 결정적 순간에 약자·소수자의 인권을 외면하는 등 법원이 점점 더 자본과 정치권력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기존 자유주의 법관념에 대한 ‘비판법학’이 활발했지만 당시 한국에서 사법부 판결에 도전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판결에 대한 재검토와 논증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2017년 심사에는 김태욱·김한규·노희범·박한희·오지원 변호사,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 이석배 단국대 법학과 교수가 참여했다. 지난해 3월10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판결은 가장 큰 관심을 받았지만 ‘올해의 판결’ 심사위원들에겐 아쉬움이 남았다. 만장일치 탄핵 결정은 의미가 컸지만, 촛불 집회의 뜨거운 열기를 수동적으로 받아 안은 선택이라는 평가도 많았다. 이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이희진(33)씨의 다발성경화증을 ‘삼성 직업병’ 산재로 처음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박 전 대통령 탄핵 판결과 함께 2017년 ‘최고의 판결’로 꼽았다. ‘현대차 파업 지지 발언에 20억원의 연대 손해배상 판결’은 ‘최악의 판결’로 뽑혔다. ‘2400원 횡령한 버스기사 해고 유효 판결’, ‘성소수자 이집트인 난민 불인정 판결’ 등은 부정적 판결로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새 시대를 기대하는 시민의 열망은 컸지만 명판결이라 부를 만한 내용은 많지 않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했으나 피부에 와 닿는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겨레21>은 이를 한줄로 정리했다. “옛것은 사라졌지만 아직 새것은 오지 않았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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