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슬로는 인간의 욕망을 생리적 욕구와 안전·소속감·애정·자존심의 5단계로 구분해 해석했다. 그의 이론에는 인간의 욕망을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인간 문명 자체를 업그레이드 하려는 원대한 철학적 계획이 담겨져 있다. 그림은 화가 살바도르 달리 (1904~1989)의 작품 <욕망의 수수께끼> 부분.
마케팅·처세에 차용되는 ‘매슬로 욕구 5단계설’
그러나 욕망 부추기는 자본주의와는 상극이다
‘결핍욕구’ 넘어 ‘존재욕구’ 지향
욕망의 꼭대기 너머 ‘문명 업그레이드’ 꿈
오늘날 하위욕구가 ‘자아실현 장신구’를 달고 있다
고전 다시읽기/에이브러햄 매슬로 ‘존재의 심리학’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욕구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이윤은 끊임없이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충족시켜주는 과정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인간의 욕망 구조를 설명하는 매슬로의 ‘욕구발달 5단계설’은 마케팅이나 처세 목적의 인간관계 서적에서 좀처럼 빠지는 법이 없다. 이런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인간의 욕망을 생리적 욕구, 안전, 소속감과 애정, 자존심, 자아실현의 단계로 구분하고 이를 피라미드 모양으로 정리한 도표를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터다.
그러나 정작 매슬로가 누구인지, 왜 그가 욕구 이론을 주장하게 되었는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아는 만큼 활용할 수 있는 법, 세간에서 그의 이론이 적용되는 수준은 고대의 비밀을 밝혀줄 비석을 마당의 댓돌로 사용하고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매슬로의 이론에는 인간의 욕망을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인간 문명 자체를 업그레이드 하려는 원대한 철학적 계획이 담겨 있다. <존재의 심리학(Toward A Psychology of Being)>은 매슬로의 이러한 꿈이 펼쳐져 있는 책이다.
채워주면 해소되는 ‘결핍욕구’
물론, 매슬로의 욕구발달 5단계설은 그 자체로도 일상을 진단하는 요긴한 도구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신경증이란 근본적으로 영양 부족과 다를 게 없다. 비타민이나 철분이 부족하면 병에 걸리듯, 마음도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을 때 병에 걸린다. 매슬로는 생리적 욕구, 안전, 소속감과 애정, 자존심에 이르는 욕구를 ‘결핍욕구’(D-need, Deficit need)라고 부른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듯, 정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런 욕구는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배부르면 식욕이 사라지는 것처럼 이러한 욕구들도 채워지면 곧 없어진다.
매슬로의 이론은 마음에서 결핍된 지점을 확인시켜 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열흘 굶은 사람에게 명예를 지키라는 말은 공허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풍요와 관심 속에 자라난 엘리트에게 자존심의 상처는 목숨을 걸만큼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생리적 욕구에서 자존심에 이르는 욕구의 단계를 알고 있다면, 각각에 욕망에 걸 맞는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할 터다. 그러나 매슬로의 이론이 이것뿐이라면, 콤플렉스의 원인을 충족되지 못한 욕구로 풀어보려는 여느 정신분석 이론들과 별 다를 바가 없다. 나아가 결핍욕구의 최종 목표는 충족을 통해 욕구 자체를 없애는 데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욕망이 사라진 상태란 곧 죽음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결핍욕구만을 추구하는 삶은 결국 허무로 끝날 수밖에 없다. 매슬로의 위대함은 결핍 욕구를 넘어선 지점에서 비로소 빛을 발한다. 모든 결핍욕구가 채워졌다 해도 인간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던 결핍욕구에서 벗어난 순간,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실현하려고 하는 욕구에 휩싸인다. 이를 매슬로는 자기 자신이 되려는 욕망, 즉 존재욕구(B-need, Being need)라고 부른다. 존재욕구는 채우면 채울수록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해진다. 예컨대, 지존의 음악가는 모든 부와 명성을 얻은 후에도 더 완벽한 연주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능력은 곧 욕구이기 때문이다.” 근육이 뛰어난 사람은 몸을 쓸 때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완전히 기능할 때 최고의 행복을 느낀다는 말이다. 이른바 자아실현이란 이런 상태를 말한다. 채울수록 강해지는 ‘존재욕구’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통해 세상을 본다. 그러나 자아실현에 다다른 이들은 더 이상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다. 때문에 세계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신과 같은 상태에 있다.” 신은 모든 죄를 다 끌어안고 이해해주는 동시에 잘못을 엄격하게 응징하는 존재다. 자아실현 하는 사람들도 다른 이들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면서도 옳고 그름을 냉철하게 가릴 수 있다.
이들에게는 마음의 갈등도 없다. 결핍욕구에 시달리는 상태에서는 해야 할 바와 하고 싶은 일이 늘 엇갈리기 마련이지만, 자아실현의 경지에서는 즐거움과 의무는 다른 게 아니다. “양분하면 병적으로 되고, 병적으로 되면 양분하게 된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매슬로의 자아실현의 상태란 꼭 ‘도사’의 경지 같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매슬로는 자아실현은 “상태가 아닌 빈도의 문제”라고 말한다. 자아실현을 했다 해서 배고픔이나 애정, 자존심 등 하위 욕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인 이상 욕구의 결핍은 언제나 생기기 마련이다. 다만, 자아실현에 이른 사람들은 욕구에 덜 시달릴 뿐이다. 나아가 자아실현한 사람들도 죄의식을 느끼고 화를 낸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콤플렉스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문제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고 정당한 분노를 표출할 줄 안다.
<존재의 심리학>에서 매슬로는 대부분의 분량을 자아실현과 이것의 체험 상태인 ‘절정경험’을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성장을 위해서는 문제에 주목하기 보다는 이상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 이상을 좇아 상승하다보면, 어느덧 심각했던 문제도 하찮은 것으로 바뀌어 버리기 때문이다. 매슬로의 전략도 이와 같다. 큰 인간이 되고 나면 소인배였던 시절의 문제는 더 이상 고민거리가 아니다.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매슬로의 이론은 인본주의 심리학이라 불린다.
그러나 이상적 인간상을 통해 인류를 한 단계 끌어올리려는 매슬로의 원대한 꿈은 한 때의 유행처럼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자본주의와 그의 이상은 상극에 가깝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결핍 욕구의 축소는 시장의 위축과 다른 말이 아니다. 자아실현은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 등장할 만큼 흔한 말이 되어버렸지만, 그 용도는 공허한 장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아실현은 삶의 목표로서의 기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자아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을 빼기 위해서 요가와 명상을 한다. 지성인 세계에서도 자아실현은 더 이상 욕구로 인정받지 못한다. 학자들은 퇴출당하지 않기 위해 실적을 만들고(안전의 욕구), 자리를 보전하고 승진을 하기위해 논문을 써야 한다.(자존심의 욕구)
욕구 분석 초월한 구원의 철학
어찌 보면, 하버마스 이후로 별다른 사상계의 거인이 출현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저급한 욕구에 기대어, 어르고 협박하는 방식으로 다섯 살 아이를 다루 듯 사람들을 통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을 통해서는 결코 어떤 사람도 독창적이고 성숙한 개인으로 키워낼 수 없다.
물질적 풍요가 행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고질적 병폐다. 부유한 국가일수록 자살률이 높고 더 많이 가진 이들일 수록 더 큰 욕망 덕택에 고통 받는다. 대개 결과는 목표 단계에서부터 판가름 난다. 완전치 못한 동기로는 불완전한 문명을 만들 수 있을 뿐이다. 결핍 욕구를 넘어서서 인간 고유의 성장 동기에 주목할 때 인류는 완전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이제 매슬로의 이론이 욕구 분석을 넘어 구원의 철학으로 다시 읽혀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서평자 추천 도서
존재의 심리학
아브라함 H. 매슬로 지음, 정태연·노현정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2005)
(알기 쉬운 번역과 상세한 해제)
성격심리 (상)
홍숙지 지음
박영사 펴냄(2004)
(매슬로, 로저스 등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에 대한 체계적 설명)
칼 로저스의 카운슬링의 이론과 실제
칼로저스 지음, 한승호·한성열 옮김
학지사 펴냄(1998)
(인본주의 심리학의 임상적 적용 모델을 볼 수 있음)
50자 서평
◇ 노현정(34·중앙대 학생생활연구소 상담원) “매슬로의 관점에서 자기실현 하는 사람은 세상을 분류하거나 범주화하고 추상화해서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 있는 그대로 이해한다.”
◇ 박선미(33·문예출판사 편집부) “욕구 단계설로 유명한 매슬로의 사상적 배경을 여러모로 알려주는 책. 비주류 심리학자였던 그가 주창하는 인본주의적인 사상은 따뜻하다.”
◇ 무명(아마존닷컴 독자서평에서) “처음 읽을 때엔 이론적인 글이 마치 VCR 매뉴얼을 읽는 것처럼 지루했다.…그러나 이 책은 내게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이 그들대로 사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무척 큰 도움을 주었다.”
▽ 다음주 이후 고전 <슬픈 열대>, <꿈의 해석>, <홍길동전>의 50자 서평에 참여해주세요. 전자우편 cheolwoo@hani.co.kr
매슬로의 이론은 마음에서 결핍된 지점을 확인시켜 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열흘 굶은 사람에게 명예를 지키라는 말은 공허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풍요와 관심 속에 자라난 엘리트에게 자존심의 상처는 목숨을 걸만큼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생리적 욕구에서 자존심에 이르는 욕구의 단계를 알고 있다면, 각각에 욕망에 걸 맞는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할 터다. 그러나 매슬로의 이론이 이것뿐이라면, 콤플렉스의 원인을 충족되지 못한 욕구로 풀어보려는 여느 정신분석 이론들과 별 다를 바가 없다. 나아가 결핍욕구의 최종 목표는 충족을 통해 욕구 자체를 없애는 데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욕망이 사라진 상태란 곧 죽음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결핍욕구만을 추구하는 삶은 결국 허무로 끝날 수밖에 없다. 매슬로의 위대함은 결핍 욕구를 넘어선 지점에서 비로소 빛을 발한다. 모든 결핍욕구가 채워졌다 해도 인간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던 결핍욕구에서 벗어난 순간,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실현하려고 하는 욕구에 휩싸인다. 이를 매슬로는 자기 자신이 되려는 욕망, 즉 존재욕구(B-need, Being need)라고 부른다. 존재욕구는 채우면 채울수록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해진다. 예컨대, 지존의 음악가는 모든 부와 명성을 얻은 후에도 더 완벽한 연주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능력은 곧 욕구이기 때문이다.” 근육이 뛰어난 사람은 몸을 쓸 때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완전히 기능할 때 최고의 행복을 느낀다는 말이다. 이른바 자아실현이란 이런 상태를 말한다. 채울수록 강해지는 ‘존재욕구’
매슬로의 ‘욕구발달 5단계 이론’ 삼각형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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