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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냉전시대의 예술가 망명을 끝내다

등록 2005-12-01 21:30수정 2005-12-10 21:29

존 버거 <우리 시대의 화가>
존 버거 <우리 시대의 화가>
영국의 미술비평가이자 소설가, 사회비평가이기도한 존 버거가 1958년에 쓴 첫 소설 <우리 시대의 화가>가 번역돼 나왔다. 강수정 옮김, 열화당 펴냄.

런던에 망명한 헝가리 화가 야노스 라빈의 실종 사건이 소설의 핵심 모티브를 이룬다. 헝가리 출신 유대인이자 공산주의자이기도 한 야노스는 런던에서 마련한 첫 번째 개인전이 성공적으로 개최된 지 일주일 만에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더구나 그가 사라진 시점은 1956년 10월 중순, 헝가리에서 벌어진 반소 민주화 시위를 진압하러 소련군 탱크가 부다페스트를 향하고 있는 무렵이었다. 망명자 야노스는 아마도 자신의 예술적·상업적 성공을 뒤로한 채 조국의 폭풍 같은 혼란 한가운데로 뛰어든 듯하다….

소설은 야노스의 실종 직후 그의 작업실에서 발견된 그의 일기와 영국인 미술비평가인 친구 존이 그에 대해 덧붙인 코멘트로 이루어졌다. 망명 예술인으로서 야노스의 고뇌와 모색이 일기를 통해 조금씩 드러나는 그의 과거사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어느 날의 일기에서 야노스는 자신을 “이중의 망명자”(96쪽)라 표현한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조국 헝가리로 돌아가지 않았으며, “인생을 당면한 목표가 아닌 예술에 쏟기로 했”다는 점에서다. ‘망명자로서의 예술가’라는 관점이다. 일기에서 드러난바, 야노스는 젊은 시절 친구들과 함께 공산주의 혁명에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바치고자 했다. 그러나 “예술과 민중의 결혼식”(67쪽)을 꿈꾸었던 시인 친구 라슬로는 어느덧 당 관료가 되어 경직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주창하는가 했더니 이내 숙청되어 결국 사형에 처해지고 만다. 야노스가 화가로서 자신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때문에 더욱 더, 조국의 현실에 대한 부채감에 시달렸을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배경이다.

소설의 결말은 열려 있다. 야노스가 격동기의 조국으로 돌아가서 무슨 일을 했고, 누구 편에 서서 싸웠을지를 짐작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다만 작가는 존의 입을 빌려 “나는 야노스가, 지금 살아 있다면, 카다르를 지지한다고 믿고 싶다”(246쪽)고 밝히고 있다. 카다르는 친소 개혁주의자로서 헝가리 사태를 종식시킨 인물이거니와, 바로 이 구절 때문에 이 소설은 보수적인 평단의 공격 대상이 되어 출간 한 달 만에 배포 중단 사태를 빚기도 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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