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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문학, 발로 쓴 독후감

등록 2005-12-01 21:32수정 2005-12-02 14:01

<춘향이 살던 집에서, 구보씨 걷던 길까지>
<춘향이 살던 집에서, 구보씨 걷던 길까지>
‘문학기행’은 문학과 문학작품에 다가가는 대중적인 접근법의 하나다. 작가의 연고지나 작품 무대를 찾아 봄으로써 작가와 작품에 대한 ‘실물적 이해’를 꾀하는 방편이 바로 문학기행인 것이다. 신문이나 문학잡지들이 마련하곤 하는 문학기행 기획의 주된 취지는 독자로 하여금 문학과 문학작품에 좀 더 친근하게 접근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국문학자들의 모임인 민족문학사연구소가 펴낸 <춘향이 살던 집에서, 구보씨 걷던 길까지>(창비)는 <삼국유사>에서 <마지막 테우리>까지 한국 문학의 배경과 무대를 답사한 기록이다. 14명의 소장 국문학자가 참여한 이 기행 프로젝트는 민족문학사연구소의 학술지 <민족문학사연구>에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연재되었다. 쓰여진 시기의 편차는 책으로 정리해 내면서 보완했다. 책은 크게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동아시아’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동아시아’에서는 1923년 일본 도쿄에서 일어난 관동대지진이 한국 문학에 미친 영향, 김사량의 일본어 소설 <빛 속으로>의 무대로서의 도쿄, 그리고 중국 베이징에 남아 있는 단재 신채호의 흔적 등을 추적한다.

고전소설 <춘향전>의 무대 남원을 답사한 필자(김종철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광한루원 안에 꾸며 놓은 ‘월매의 집’이 <춘향전>의 묘사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음을 지적하며 “기생집 하나 재현해놓지 않고 춘향의 고을이라”(105쪽) 하는 행태를 개탄한다. 각각 부산과 인천을 무대로 삼은 작품들을 검토한 글들에서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의 주인공 “옥련이 인천을 거쳐 일본에 닿는”(309쪽) 데 비해 “옥련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부산을 통해서 바깥 세계로”(282쪽) 나가는 사실을 확인하는 재미는 각별하다. 슬픔의 시인 김소월이 등단작 <밤>에서 “벌써 해가 지고 어둡는데요/이곳은 인천의 제물포, 이름난 곳,/부슬부슬 오는 비에 밤이 더디고/바닷바람이 춥기만 합니다.”라 노래했는가 하면, 댄디 박인환이 “밤이 가까울수록/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와/주둔소의 네온싸인은 붉고/짠그의 불빛은 푸르며/마치 유니온 작크가 날리든/식민지 향항의 야경을 닮어간다//조선의 해항 인천의 부두가/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상해의 밤을 소리없이 닮어간다.”(<인천항>)며 해방 조국의 식민지화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채만식 소설 <탁류>의 무대인 군산을 답사한 김만수 인하대 교수는 채만식이 소설에서 군산역을 언급하지 않은 사실을 아쉬워한다. “군산역에서 벌어지는 활기찬 물류의 움직임, 이곳을 중심으로 한 철도노동조합, 고향을 떠나고 토막을 찾아드는 조선 민중들의 움직임이 <탁류>에는 없다.”(223쪽) 자본주의의 핵심이 ‘흐름’인데, <탁류>가 탁함을 풍자하면서 흐름에 둔감했다는 사실은 리얼리즘 소설로서 일종의 결격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강진호 성신여대 국문과 교수는 월북 문인들의 생가와 유적이 어떻게 보존되고 기념되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충북 옥천의 정지용 생가 자리에 문학관이 들어서고 충북 괴산과 진천에서 각각 홍명희문학제와 조명희문학제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 단편소설의 완성자’ 소리를 듣는 상허 이태준의 서울 성북동 집은 전통찻집으로 보존되어 있고 고향인 강원도 철원군에는 그의 흉상과 문학비가 세워졌지만, 민통선 안 생가 자리에는 잡초 속에 허름한 나무 표지판 하나가 달랑 서 있을 뿐이다. <고향>과 <두만강>의 작가인 이기영의 경우에는 그의 고향인 충남 천안은 물론 휴전선 남쪽 땅 어디에도 기념비 하나가 없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강 교수는 특히 월북작가들의 문학적 평가에 적극적인 진보진영 쪽의 분발을 촉구한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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