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에세이 <남자들, 쓸쓸하다>
권력은 잃고 책임과 의무만 지닌 우리 시대 남자들의 약점과 아픔 풀어놔
여자들에게 욕먹을 각오로 쓴 “힘내라 아빠”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
여자들에게 욕먹을 각오로 쓴 “힘내라 아빠”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
“그들은 자신의 몸이 기억하는 ‘만들어진 권력자’로서의 원초적 관성 때문에 더 심각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나이가 들어도 ‘책임과 의무’의 사회적 억압은 절대적이므로, 오늘도 ‘무서운 자식’들과 ‘똑똑한 아내’와 자본주의 경쟁이 주는 ‘잔인한 세계 구조’에 가위눌리면서, 저기, 어둑한 베란다나 냄새나는 쓸쓸한 뒷골목에 피신해 담배 한 대, 소주 한 잔으로 남몰래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중이다.”(<남자들, 쓸쓸하다> 23쪽)
소설가 박범신(59)씨가 우리 시대 남자들을 위무하고 응원하는 에세이집 <남자들, 쓸쓸하다>(푸른숲)를 내놓았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남자편 8개 장과 여자편 7개 장으로 이루어진 책에서 작가는 강한 권력자로서의 남자라는 통념에 반(反)해, 남자들의 약점과 아픔을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로 풀어놓는다. 한 사람의 중년 남자로서 자신의 경험과 관찰을 근거로 펼치는 그의 ‘약한 남자론’은 흥미로우며 동시에 논쟁적이기도 하다.
프롤로그에 이어지는 책의 첫 장 ‘남자는 권력인가…’에서 작가는 딸부잣집의 막내아들로서 자신의 성장기를 돌아보며 남자=권력이라는 등식을 뒤집어 보고자 한다. 힘들게 얻은 외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가치 부여는 딸들을 향해 “계집애들, 백 명하고도 안 바꿔.”(17쪽)라 악을 쓰는 모습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당연히 이 아들은 집안의 ‘작은 권력자’로서 온갖 특혜를 받게 되는데, 정작 당사자가 회고하는 상황은 겉보기와는 크게 다르다: “아들은 밥상에 앉아서 혼자 쌀밥을 먹거나 생선의 몸통을 먹어야 하는 일이 죽기보다 싫었다.”(17쪽) “어머니야말로 세계로부터 아들을 ‘왕따’시키는 장본인이었다.”(18~19쪽) 보호와 대접이 오히려 불편하고 괴로웠다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 빗대어 말하기
이런 구체적 경험을 근거로 작가는 과감하게 선언한다: “비인간적인 ‘가부장제’의 최초 희생자는 어쩌면 남자일지도 모른다.”(23쪽) 또 “호주제에 의해서 최초로 억눌리는 것은 바로 호주인, 아버지인, 그들 남성들이다.”(72쪽)
아들, 남자, 호주로서 거느리게 되는 특권은 불가피하게 별도의 의무와 책임 역시 수반하게 되는데, 작가가 보기에는 특권과 의무 모두 부자연스럽고 부당한 것이다. “남자만 항상 돈을 벌어와야 한다는 것은 지나치 독선”(31쪽)이라거나 “제사나 부모를 모시는 일 같은, 사회 문화적 책임도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93쪽)는 주장이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작가의 이런 주장은 원론적으로는 옳겠지만 여전히 여성들이 유형 무형의 차별과 불이익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작가 역시 남성들이 성장 과정에서 습득한 “권력자의 관성”(20쪽)을 지적하고는 있거니와, 그런 관성은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에서 두루 발휘, 관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자들을 향한 도발은 수위를 높여 간다. 그리고 그 역시 자신의 발언에 내재한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다. 주부라는 직업을 자랑스러워하고 여성스러움의 미덕을 강조하는 미국 여성 화가의 글을 인용한 다음 그는 서둘러 덧붙인다.
“화내는 ‘미즈 스트롱,’ 당신의 얼굴이 보인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라. 당신을 부엌으로 몰아넣어 부려먹자고 하는 말도 아니고, 당신 위에 군림하기 위한 전략적인 당의정도 아니다. 불의, 참을성 없는 전투력으로 무장하지 않아도 창조적 생산성을 확보해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강한 당신이 좋아서 하는 말이다./ 나는 약한 하나의 남자에 불과하다.”(131쪽)
엄살 혹은 불쌍한 척하기
‘강한 여자와 약한 남자’란 부분적 사실일 수는 있어도 보편적 진실에서는 거리가 먼 그림이다. 왜곡이 아니면 과장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이론적 엄밀함에 바탕한 게 아니라 정서와 감정에 호소하는 에세이라는 점을 감안하자. 작가는 ‘약한 남자’의 근거를 여럿 들이민다. 유산하는 태아의 대부분이 남자라는 사실이 남성의 생물학적 약점에 해당한다면, 사십대 남자의 급사 사망률이 세계 최고라는 이야기는 한국 남자들의 사회적 취약성을 가리킨다. 중년 남자들 중 절반이 발기부전에 시달린다는 통계를 인용하며 “멀쩡한 중년 남자 중 50%는 관계조차 어려운데 여성들을 위한 방중술을 계속 가르치면 어떡하란 말인가”(57쪽) 항변하는 데에 이르면 슬몃 웃음이 깨물어지기도 한다.
이 책의 글들이 대부분 여성지 독자들을 대상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작가가 쓴 대로 “남자를 좀더 세심히 이해해보고, 그 남자들을 향해서 다가가는 길을 생각해보자는 뜻에서”(53쪽) 나온 글들이다. 여성 독자들의 이해와 포용을 구하기 위해 이 ‘감성의 작가’가 구사하는 주된 전략은 엄살 혹은 ‘불쌍한 척하기’이다. 프롤로그의 시작 부분이다.
“돌아누워 잠든 당신의 남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라.// 한때 권력자로 길러졌고 권력자로 행세했던 남자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거대 자본주의의 피어린 경쟁에 내몰리고 페미니즘의 폭발적 확장과 신문명의 서슬 푸른 변화에 기가 죽은 한 남자가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당신의 침대에 누워 있다. 그는 지나간 가부장적 권위주의 시대에 ‘권력자의 전설’을 갖고 있었으나, 이제 그 모든 화려했던 전설은 추억 속의 빛바랜 흑백사진에 불과해졌다. 권력은 대부분 해체되었고 그는 쓸쓸하게 인간의 거울 앞으로 돌아와 누웠다. 그는 속이 텅 빈 공룡 같은 존재이다.”(4쪽)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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