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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불의와 정의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

등록 2018-05-03 20:31수정 2018-05-03 20:37

죽은 자로 하여금
편혜영 지음/현대문학·1만3000원

편혜영(사진)의 경장편 <죽은 자로 하여금>은 병원을 무대로 삼지만,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라 관리직 직원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마찬가지로, 환자의 치료나 수술 같은 의료행위가 아니라 여느 회사와 다를 바 없는 업무와 인간 관계가 서사의 중심을 이룬다. 메디컬 드라마가 아니라 사무실 이야기인 것이다.

서울의 종합병원을 그만두고 지방 도시의 병원으로 옮겨 온 무주는 병원장 직속 혁신위원회에 소속돼 일하던 중 상급자 이석의 비리 혐의를 확인한다. 동료들 사이에 평판이 좋고 무주 자신에게도 호의적이었으며 아픈 가정사를 지닌 이석을 고발하는 문제를 놓고 무주는 고민에 싸인다. 그러나 “세상이 나아져야 한다는 신념”과 “순도 높은 정의감과 도덕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내의 뱃속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그는 결국 이석을 고발하고 이석은 해임된다.

윤리냐 실리냐를 둘러싼 무주의 고뇌와 그 해소가 이 소설의 주제인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는 오히려 소설의 서두부에 해당한다. 이석의 해임 이후 무주는 직원들 사이에 따돌림의 대상이 되고 결국 원치 않는 철야 근무를 받아들여야 하게 된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서 풀려는 그에게 지쳐 아내도 서울에 일자리를 얻어 올라간다. 설상가상으로 이석이 개선장군처럼 귀환하고, 무주가 몰랐던 사태의 진상이 차례로 드러나는 가운데 그는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어정쩡한 위치에 놓인 채 떠도는 신세가 된다….

<마태복음> 구절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에서 제목을 가져온 소설은 무주가 처한 곤경과 딜레마를 시종 건조한 문체로 서술한다. 그를 비도덕적 사회의 도덕적 인간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역시, 상사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는 해도, 타인의 비리에 눈감고 스스로도 불법을 저질렀다. 그러면서도 자식에게만은 괜찮은 사회를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희생을 무릅쓰고 윤리와 정의의 편에 서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근본적으로 불의와 정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그때그때의 자기 선택을 합리화하는 데에 더 익숙하다. 아마도 그런 것이 대부분 인간의 진면목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주가 “자신에게 남은 것을 애써 생각”해보며 “간절히 무슨 말인가 시작하고 싶어”하는 소설 결말은 무주와 독자에게 모종의 성찰과 결단을 요구하는 듯하다.

출판사 현대문학은 이 책을 필두로 매달 경장편 한 권씩을 ‘핀 시리즈’로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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