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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반공주의 넘어 평화관점 연구를”

등록 2005-12-02 18:02수정 2005-12-02 18:02

2일 오전 서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21세기 평화의 시대, 한국전쟁 연구의 쟁점과 과제’ 학술대회.
2일 오전 서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21세기 평화의 시대, 한국전쟁 연구의 쟁점과 과제’ 학술대회.
한국산업사회학회 ‘21세기, 한국전쟁…’ 심포지엄

한국 전쟁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잉태한 카오스다. 혼돈의 대사건을 이해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수고를 덜어준 명쾌한 관점이 하나 있다. 바로 반공주의다. 그 간편한 해석의 폭력성을 뿌리부터 뒤흔든 학계의 연구는 한국 사회에 제대로 소통되지 못했다. 보수 언론이 최장집 교수와 강정구 교수를 난도질할 때, 모든 해석의 준거는 간단히 반공주의로 모아졌다. 수많은 학자들이 한국전쟁의 복잡한 층위를 넘나들며 사실과 진실의 고리를 엮어왔지만, 그 학문적 성과를 완강히 거부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박명림·정해구 교수 등 한국전쟁 시각 전환 강조

2일 오전 서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 정치학·역사학·사회학 연구자들이 함께 모였다. ‘21세기 평화의 시대, 한국전쟁 연구의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한 자리였다. 한국산업사회학회가 주최하고 북한연구학회가 주관한 이날 심포지엄은 한국 전쟁에 대한 국내 학계 연구가 어디까지 진전됐는지를 살피고, 이를 따라잡기는커녕 관심도 두지 않는 한국 사회의 보수성에 대한 성찰의 자리였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발표에 나섰다. 박 교수는 내년 2월 발간 예정인 <역사, 지식, 사회>의 초고를 토대로 한국전쟁 연구사를 통사적으로 살폈다. 특히 90년대 이후 반공주의와 수정주의를 동시에 넘어 한국전쟁을 객관적으로 새롭게 정립시켜온 국내 학계의 노력에 주목했다. 박 교수는 △전쟁의 원인 △점령과 통치정책 △포로 및 학살문제 △휴전체제 등 여러 영역에 걸쳐 “문제의식과 깊이, 주제에서 한국전쟁연구가 폭발적으로 넓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또다른 진전을 주문했다. “세계사에서 프랑스 혁명이 차지하는 위치와 한국전쟁이 차지하는 위치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 그러하듯 한국전쟁 역시 “세계적 지평에서 보편적 언어로 소통시킬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전쟁과 권력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해, 평화·인권·화해·통일의 관점에서 접근하자”는 게 그의 제안이다.

토론에 나선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 전쟁에 대한 시각 전환을 강조했다. 정 교수는 “다들 한국 전쟁이 발발한 원인과 그 책임에만 매달리고 있는데, 이미 이 논의는 대단히 이데올로기적이고 정략적인 요소로 ‘오염’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전쟁의 원인과 책임에 대해 올바른 이야기를 할 경우조차 그런 ’오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정 교수는 “오히려 전쟁의 원인과 책임보다 국가와 전쟁이 과연 국민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런 점에서 인도주의와 평화, 인간의 차원에서 전쟁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인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위원회 발족 직후부터 한국 전쟁 피해자 접수가 들어오고 있다”며 “앞으로 4년에 걸친 조사활동을 마치게 되면 한국전쟁 연구를 새롭게 쓰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김 교수는 “여전히 한국 전쟁에 대한 연구 자체가 드물고, 이에 대한 한국 학자들의 연구가 국제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상태”라며 “한국전쟁에 대해 아직까지도 한국인들이 주체가 아니라는 현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보수언론 ‘한국전쟁 연구‘ 보도행태 도마위에

“왜곡 보도, 연구에 찬물”

이른바 ‘강정구 교수 사건’도 이날 화제에 올랐다. 우선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를 편의적으로 왜곡하는 언론 보도의 문제가 지적됐다. 박명림 교수는 “한국전쟁을 둘러싼 언론과 사회의 이념논쟁은 학문적 논쟁의 최소한의 금도(襟度)마저 파괴했다”며 “매체는 자신의 관점에 의해 왜곡된 내용을 전달하고, 그 결과 학계의 연구수준은 추락하고, 학자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있다”고 짚었다.

강정구 교수 “통일전쟁” 주장 학문적 반론도 제기

정해구 교수는 “새로운 연구를 진전시켜도 언론은 ‘옛날 방식’으로 이를 다룰텐데, 한국 전쟁을 연구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회의가 들 때도 있다”며 “학계 연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특정 언론이 악의를 갖고 멋대로 왜곡한 결과, 학자들의 연구가 사회의 역사의식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수 언론의 보도행태와 별개로 강 교수의 주장에 대한 ‘학문적 반론’도 제기됐다. 박명림 교수는 “남한을 분석할 때는 행위자·리더십의 문제로 보고 북한을 살필 때는 구조·외세의 문제로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 잘못”이라며 “한국 전쟁에 대한 연구가 사실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을 때, 이는 냉전 이데올로기를 해체하기보다 오히려 강화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오고 우파에게 반격의 기회를 준다”고 지적했다.

정해구 교수도 “전쟁 발발은 구조와 행위를 동시에 살펴야 하고, 여기서는 남북한의 리더십이 모두 문제가 된다”며 “구조적으로 보자면 미국·소련·일본 등의 책임이 있고, 행위의 측면을 보자면 김일성을 포함한 남북 리더십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당시 북한이 혁명적 민족주의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내부에는 스탈린주의적 요소도 있었다”며 “한국 전쟁을 ‘혁명전쟁’이라 가정한다 해도 이를 전적으로 정당화시킬 수 있는지에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강 교수의 주장에 대한 해석은 논쟁적일 수 있지만, 우익단체가 특정한 포석과 악의를 갖고 사안을 접근하면서 이 문제가 논쟁도 토론도 아닌 것이 돼버렸다”고 덧붙였다.

이날 자리에 청중으로 참석한 강정구 동국대 교수는 특별한 언급없이 토론자들의 발표를 묵묵히 들었다.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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