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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기호와 ‘이기호’가 제기하는 불편한 질문

등록 2018-05-31 19:46수정 2018-05-31 20:08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문학동네·1만3500원

“소설에 등장하는 ‘이기호’와 소설을 쓰는 ‘이기호’ 사이에는 과연 어떤 벽이 세워져 있는가? 그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존재이고, 개별적이며 고유한 영혼을 지닌 인물인가?”

이기호(사진)의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말미에는 ‘이기호의 말’이라는 제목을 단 제법 긴 글이 붙어 있고, 그 가운데 인용한 대목이 나온다. 세련된 독법에 따르면 작중 인물과 작가는 분리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그 인물이 작가와 같은 이름을 지녔고 정황상 작가 자신임에 틀림이 없어 보이더라도, 소설은 어디까지나 허구로 취급해야 하는 것이다.

이기호가 인용한 대목과 같은 질문을 던질 법도 한 것이, 이 소설집에는 ‘이기호’라는 이름을 지녔거나 작가 자신을 연상시키는 소설가가 주인공 또는 주요 인물로 나오는 소설이 여럿 있다. 전체 일곱 단편 가운데 넷이니 과반에 해당한다.

책 맨 앞에 실린 ‘최미진은 어디로’에서 ‘이기호’는 우연히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자신의 책이 매물로 나온 것을 확인한다. “병맛 소설, 갈수록 더 한심해지는, 꼴에 저자 사인본”이라는 설명에다 다른 책 다섯권을 사면 무료로 증정한다는 안내까지 곁들여졌다. 모욕감을 느낀 그는 광주에서 행신까지 케이티엑스(KTX)를 타고 가서는 책을 내놓은 생면부지의 청년을 만난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책을 되사고 청년한테서 사과의 말까지 듣지만, 그는 이제 모욕감 대신 부끄러움에 시달리게 된다. 헤어진 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전화를 걸어온 청년의 말이 그 부끄러움을 더한다. “씨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내가 죄송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사는데… 꼭 그 말을 들으려고… 꼭 그 말을 들으려고 그렇게…”

‘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한 고민으로 소설은 마무리되거니와, 이런 윤리적 딜레마에서 기인한 불편한 질문이 책 안에는 빼곡하다. ‘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에서는 용산참사 당시 현장으로 출동하지 못한 크레인 기사를 취재하던 소설가가 기사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당신은 그 얘길 왜 쓰려고 하는데? 당신은 죄책감을 느껴? 당신이 뭘 안다고? 당신이 뭘 쓸 수 있다고… 똥폼은 젠장…”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에서 사채업자에게 돈을 떼인 사내의 일에 개입하려다 실패하고 물러난 소설가 ‘나’의, “우리는 왜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지” 하는 질문도 같은 궤에 놓인다.

역시 작가 자신을 연상시키는 소설가가 등장하는 ‘한정희와 나’에서도 딜레마와 질문은 이어진다. 이 소설에는 레비나스와 데리다에게서 유래한 ‘절대적 환대’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고, 복수를 생각하지 않는 환대라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 하는 것이 작가의 의문이다. 이론적·윤리적으로는 가능하고 또 가능해야 하겠지만, 현실에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작가는 이렇게 자문한다. 이 소설집의 주제라 해도 좋을 질문이겠다.

“이렇게 춥고 뺨이 시린 밤, 누군가 나를 찾아온다면,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때 나는 그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때도 나는 과연 그에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최재봉 기자, 사진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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