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살인
김별아 지음/해냄·1만4000원
김별아(사진)의 소설 <구월의 살인>은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여종에 의한 주인 살해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여주 사람 김태길의 종인 구월은 태길이 남편을 살해한 데 대한 복수로 태길을 칼로 찔러 죽였으며 범행 뒤 체포되어 고문을 받던 중 숨진다. 작가는 <조선왕조실록>에 단 한번 나오는 기사와 <승정원일기>의 여러 기록을 근거로 17세기 조선 사회를 뒤흔든 희대의 사건을 재구성한다.
김별아는 <미실> <논개> <채홍> 같은 소설들에서 역사 속 여성 인물들의 정한과 욕망을 즐겨 그려 왔다. 그런 점에서는 여종 구월이를 주인공 삼은 <구월의 살인>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작가는 특히 구월이가 저지른 살인의 배후에 사랑과 자유를 향한 갈구가 놓인 것으로 해석한다. 구월이의 남편 석산이가 면천(免賤)을 통한 자유를 꿈꾸다가 주인의 눈밖에 나 살해당했으며 구월이가 그런 남편을 대신해 복수에 나섰다는 설정이 그래서 필요했다.
“노비는 자기 삶의 고삐를 잡을 수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그래서 구월은 달리는 말에서 뛰어내렸다.”
<구월의 살인>이 김별아의 기존 역사소설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작가가 추리적 기법을 적극 사용했다는 사실에 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구월이와 그의 배후인 윤 선달 등 비밀조직 검계(劍契)를 한쪽 주인공으로 삼고, 사건을 수사하는 형조좌랑 전방유를 다른 쪽 주인공으로 삼는다. 특히 미제로 남을 사건들의 진실을 들춰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수사관 전방유가 최소한의 증거에서 출발해 사건의 실체로 나아가는 과정은 추리와 발견의 재미를 제공한다.
“무엇을 쓸지에 못지 않게 어떻게 쓸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에는 재미있는 게 널려 있는데 문학을 통해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독자의 입장에서 고민한 결과가 추리적 기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게 추리소설이잖아요? 보이지 않는 독자들과 밀당 하는 즐거움을 이 책을 쓰면서 느껴 보았습니다.”
책을 내고 26일 낮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별아는 “근대의 서사양식인 소설로 현대를 제대로 담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쓴 소설”이라고 <구월의 살인>을 소개했다.
<구월의 살인>에 추리적 기법이 쓰이긴 했지만, 이 작품을 본격 추리소설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책 제목에서부터 살인자의 정체를 밝혀 놓은데다, 소설이 아직 절반도 진행되기 전에 구월이가 범인으로 지목되고 체포된다. 작가의 주안점은 “할미와 어미가 그러했듯 (…)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사랑을 선택”한 구월이의 모계 내력, 검계 핵심인 윤 선달과 노장 등이 반사회 조직을 꾸리게 된 까닭, 그리고 사건의 발생 배경과 그 처리에서 보이는 당대 조선 사회의 변화상 등에 놓인다. 작가는 단순 살인 사건의 배후에 커다란 사회적 흐름이 놓여 있다고 본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 난을 겪은 뒤 조선은 근대화와 개혁이 아닌 보수화를 택합니다. 각종 차별이 한층 강고해지고, 복수함으로써 치욕을 씻는다는 ‘복수설치’(復讐雪恥)의 정신이 지배층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 사이에도 팽배해지죠. 구월이는 머지 않아 전면적으로 드러날 반항하는 민초의 선구적 인물로도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최재봉 기자, 사진 해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