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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나는 과연 너에게 무해한 사람이었나

등록 2018-07-05 19:38수정 2018-07-05 20:04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문학동네·1만3500원

<내게 무해한 사람>은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2016)로 좋은 평을 얻었던 최은영(사진)의 두번째 소설집이다. 일곱 중단편이 실린 이 책은 폭력적인 세계와 잔인한 어른들에 둘러싸인 젊거나 어린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번 조례에 지각했다는 이유로 여고생의 뺨을 때리고 머리를 쳐서 쓰러뜨리는 교사의 행동을, “실망스럽지도 않은 불행한 인간들의 가학 취미”(‘모래로 지은 집’)라 치부하며, ‘나는 커서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이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폭력과 무지를 경험하고 그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확보한 결과 그들은 경멸할 만한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서로에게 무해하고 유익한 사람이 되었을까. 사정이 그러하지 못하다는 데에 삶의 아이러니가 있다. 굳은 다짐과 섬세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들은 자기처럼 취약하고 외로운 상대에게 해를 끼치고 상처를 입힌다. 서툴러서, 제 몫의 상처와 고통에만 집중하느라 상대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601, 602’에서 초등생 주영은 옆집에 사는 친구 효진을 이유 없이 욕하고 때리는 오빠와 그런 아들을 방조하고 오히려 부추기는 경상도 출신 부모, 그리고 학교에서는 그런 사실을 숨기고 행복한 듯 연기를 하는 효진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효진이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오래도록 생각해왔다. 그애가 처한 상황을 보며 그런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고, 그애가 자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에 반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남존여비라는 해묵은 차별에 관한 한 주영네 식구들 역시 다르지 않다는 소설 말미의 깨달음은 주영이 효진과의 관계에서 의도하지 않은 가해자였음을 알게 한다.

소설가 최은영
소설가 최은영

책 제목은 단편 ‘고백’에서 왔다.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고교 시절 삼총사 중 하나였던 진희를 두고 미주는 이렇게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미주의 작은 모서리를 쓰다듬어주는” 진희, 그리고 “언제나 미주의 편을 들어주는 든든한 존재” 주나는 미주와 함께 안정적인 삼각관계를 이룬다. 그러나 진희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백하고 그에 대한 두 친구의 반응에 절망한 진희가 자살을 택하고서야 미주는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눈빛으로 주나가 진희에게 했던 말보다 더 가혹한 말을 했다”는 것을. 고교 동창으로, 천리안 통신 동호회의 별명으로 불리는 남자 공무와 두 여자 나비, 모래가 나오는 중편 ‘모래로 지은 집’ 역시 ‘고백’과 비슷한 삼각 구도를 보인다. 졸업 뒤 대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처음 얼굴을 확인한 세 남녀는 남다른 애정과 신뢰로 서로 묶여 있으면서도 미묘한 갈등과 증오를 어쩌지 못해 결국 파국을 맞고 만다. 헤어지면서 모래가 나비에게 보낸 편지 속 이런 구절은 세 사람의 관계뿐만 아니라 이 소설집 전체의 주제를 담은 것으로 읽힌다.

“사람이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 난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최재봉 기자, 사진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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