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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2차 한국전쟁 없어야 한다” 예술로 승화한 역사적 소명

등록 2018-07-23 19:18수정 2018-07-23 21:33

최인훈 60년 문학세계

젊어선 ‘광장’-노년엔 ‘화두’로
조국 분단과 이념 대립 속
지식인 역할 끊임없이 탐구

‘4·19혁명 문학적 적자’인 ‘광장’
시대적 의미 자각…7번이나 개작
“역사 끌어안되 예술성 획득…
평생 한가지 노래 불렀다” 회고

생전 마지막 작품은 ‘바다의 편지’
“단행본 한권 분량 원고 있다”
미발표 소설 출간 여부도 관심
최인훈 작가가 2012년 2월 경기도 고양시 자택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최인훈 작가가 2012년 2월 경기도 고양시 자택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작고한 평론가 김현의 말처럼 <광장>은 1960년 4·19 혁명의 문학적 적자(嫡子)였다. 주인공 이명준이 밀실과 광장으로 상징되는 남과 북의 정치 현실을 차례로 겪으면서 양쪽 모두에 환멸을 느끼고 제3국으로 가는 망명길에 바다에 투신해 죽는다는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고발하는 한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양대 이념을 상대로 한 사상적 고투를 보여주었다.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치 않았던 구정권 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 저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

서문에서 작가가 밝힌 대로 <광장>의 이념적 ‘모험’은 4·19가 열어젖힌 자유와 해방의 분위기에 힘입은 바 컸다. 그러나 이 소설이 60년 가까이에 이르도록 현재적 의의를 잃지 않고 꾸준히 새로운 독자들에게 읽히는 까닭은 1960년 첫 발표 당시 작가를 괴롭혔던 남북 분단과 대결 구도가 여전하다는 민족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첫 발표와 단행본 출간(1961년) 이후 적어도 일곱번 이상의 크고 작은 개작을 한 것은 <광장>이 지닌 문학사적·시대적 의미를 자각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광장> 이후 최인훈은 <회색인> <서유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총독의 소리> 같은 소설과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산문집 <유토피아의 꿈> <문학과 이데올로기> 등을 꾸준히 발표했다. 구보 박태원의 단편을 패러디한 연작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문학사에 관한 그의 예민한 감각의 소산이라면, 희곡집과 산문집은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정신과 문명사적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

1970년 신문에 연재한 장편 <태풍>, 그리고 1984년에 발표한 짧은 단편 ‘달과 소년병’ 이후 오랜 침묵을 지키던 그는 1994년 두 권짜리 두툼한 장편 <화두>를 전작으로 내놓으며 극적으로 ‘컴백’했다. 작가 자신을 연상시키는 ‘나’의 고백체로 된 이 소설은 해방 뒤 북한에서 다녔던 중·고교 시절, 전쟁 중 남으로 피난 와서 대학에 들어가고 군에 복무하다가 소설가로 등단한 과정, 세계 문명의 중심지인 미국에 머물며 변방의 지식인으로서 느끼는 왜소한 자의식, 소련의 허무한 몰락을 바라보는 반성적 지식인의 사유,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소설을 쓰기까지의 고뇌와 모색을 담은 작가의 육체적·정신적 편력기라 할 만하다. 책을 내고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훗날의 한국 문학사에 작가 최인훈이 젊어서는 <광장>을, 나이 들어서는 <화두>를 썼다고 요약된대도 그다지 불만이 없겠다”고 말할 정도로 이 작품에 대한 그의 애정과 자부심은 <광장>에 못지않았다.

※ 그래픽을 누르면 확대됩니다

<화두>에서 절정에 이른바, 최인훈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은 도저한 사유와 지성의 깊이라 할 수 있다. <광장>에서 <화두>에 이르는 소설들에서 최인훈은 조국의 분단 현실과 그 배경을 이루는 이념 대립, 그리고 그런 현실과 이념 지형 속 지식인의 역할 등에 관한 지적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화두> 이후 다시 오랜 침묵에 들었던 그는 2003년 <황해문화>에 단편 ‘바다의 편지’를 발표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이 단편은 백골이 된 채 바닷속에 누운,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으로 짐작되는 인물의 독백을 통해 민족사와 인류사의 기억과 전망을 한데 버무린 실험적인 작품이다. 이것이 결국 작가가 생전에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 되었는데, 2008년 기자들과 만난 그는 “단행본 한 권 분량이 될 만한 미발표 단편 원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말을 가지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한번 시도해 본, 매우 전위적인 작품들”이라는 작가의 말은 이 미발표 소설들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2012년 2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최인훈은 “역사를 끌어안으면서 동시에 예술은 예술로서 쉽사리 변하지 않는 시원성(始原性)을 어떻게 하면 획득할 수 있나 하는 게 데뷔 이래의 화두였다”며 “결국 평생 한 가지 노래를 불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또 “2차 한국전쟁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며 “어떤 유행이나 서양식 철학보다 앞서는 한국의 소박한 토착 철학이 바로 이것이다. 그 결론이 먼저 있고, 그걸 어떻게 명제화하느냐는 학자나 예술가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광장>에서 ‘바다의 편지’에 이르는 소설을 통해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이 여기에 집약되어 있는 셈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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