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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인 꿈꾸던 법조인 눈에 ‘삼국지’는 법률 상식의 보고죠”

등록 2018-08-29 21:21수정 2018-08-29 22:25

[짬] 첫 법률 에세이 펴낸 양중진 부장검사
<검사의 삼국지> 필자로 만난 양중진 부장검사는 ‘뿔난 공안 검찰’이 아니라 ‘이웃집 아저씨’에 가까워 보였다. 사진 김경애 기자
<검사의 삼국지> 필자로 만난 양중진 부장검사는 ‘뿔난 공안 검찰’이 아니라 ‘이웃집 아저씨’에 가까워 보였다. 사진 김경애 기자
<검사의 삼국지>(티핑포인트 펴냄). 재미있는 베스트셀러를 쓴 ‘검사’가 있다며 주위에서 인터뷰를 추천했다. 프로필을 보니 몇가지 이미지가 떠올랐다. ‘1992년 고려대 법대 졸업인데 97년 사시 합격했으니…고시 공부하면서 삼국지나 무협만화 좀 읽었겠지?’ ‘광주지검 공안부 부장을 거쳐 현직 서울중앙지검 공안 제1부장인데 이런 책까지 냈으면 천하재패와 처세의 묘수를 탐색하는 ‘정치 검사’ 아닐까?’ ‘법무부 부대변인도 지냈다니 어쨌거나 입담 좋은 다변가이겠지?’ 그런데 책의 추천사에서 나태주 시인은 ‘전혀 검사스럽지 않았다. 첫 인상부터 이웃집 아저씨거나 금방 헤어진 직장동료 같았다’고 썼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편견은 여지없이 깨졌다.

“공안이라면 다들 놀라시는데…대공 사건 말고 선거와 노동 분야도 있어요. 뿔 달린 검사들이 맡는 게 아니거든요. 허허.”

주말 검찰청 밖에서 만난 양중진(50·사법연수원 29기) 부장검사는 명함을 내밀며 해명처럼 첫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보니 2015년 선거사범 수사 유공 대통령표창도 받았고, 2016~17년 글을 쓸 때는 법무부 법질서선진화 과장이었다.

현직 서울중앙지검 공안 제1부장
‘검사의 삼국지’ 펴내 베스트셀러로
“일반인 친숙한 소재로 쉽게 법 풀이”

부친 영향 시 습작하던 ‘문청’ 출신
법무부 부대변인 시절 ‘블로거’ 인기
“후속으로 ‘검사의 스포츠’도 집필중”

우선 책을 쓰게 된 이유나 계기가 궁금했다. “법대 시절부터 ‘법전’이며 ‘법률용어’며 너무 어려웠어요. 특히 형법 교과서는 처음엔 읽어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고시’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법을 우리말로 쉽게 풀어서 친숙하게 이해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지요. 법무부 부대변인 시절 인연을 맺은 ‘기자 술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직접 한번 써보라고 권했어요.”

알고보니, 그는 2009년 부대변인 시절 ‘법무부 블로그’에서 이미 ‘글쓰는 검사’로 이름을 알렸다. “블로그를 법이나 검찰에 대해 사람들이 좀 더 편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매개체로 만들고 싶었어요. ‘교도소 매점·약국에서 잘 팔리는 상품 베스트 5’ 등등, 법조인이 아닌 일반인의 시각에서 궁금할만한 소재로 글을 썼더니 반응이 좋더라구요.”

지난해 2월부터 한 일간지에 연재한 글을 묶어낸 이번 책의 원제목은 ‘삼국지로 풀어보는 법 이야기’였다. “삼국지에서 매주 한편씩 소재를 찾아서 지금 우리의 법규나 법 상식을 잣대로 재해색해보니 쓰면서도 재밌었어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잖아요?”

첫회는 그 유명한 ‘도원결의'편이다. 의형제를 맺은 유비·관우·장비가 법적 형제로 될 수 있는지를 묻고, 민법의 친·인척 개념과 상속권, 형법의 친고죄 등을 적용해 스스로 답하는 식이다. ‘유비의 삼고초려가 스토킹에 해당할 수도 있을까’, ‘조조가 자신을 독살하려한 길평에게 혹독한 고문으로 얻은 자백이 법정에서 증거로 쓰일 수 있을까’, ‘장비의 혈기-무전취식은 범죄일까’, ‘손부인의 귀향-아두는 누가 키우나’, ‘제비뽑기-어떤 경우에 도박죄로 처벌될까’, ‘허저의 음주-음주운전과 위험운전치사상’, ‘화타와 조조-의사의 치료와 설명의무’, ‘맹획의 맹수-동물학대와 동물보호법’ 등등 요즘 우리 사회에서 흔히 벌어지고 있는 법적 논란 거리를 풀어놓아 흥미를 끈다. 마지막 43회는 제갈공명이 죽음을 맞이한 '오장원의 가을'편으로 공소시효 문제를 알기 쉽게 정리해놓았다.

이쯤되면 ‘삼국지의 달인’이 아닐까? 자료를 찾아보니, 동양권에서 ‘성서’ 다음으로 널리 읽힌다는 ‘삼국지’가 국내에 대중적으로 소개된 것은 1941년 박태원의 월간지 연재인데 작가가 월북하면서 중단됐다. 이후 수많은 번역본이 나왔지만 주류는 3대 작가본이 맥을 잇고 있다. 60년대까지는 일본작가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 번역본이,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는 월탄 박종화의 ‘삼국지’를 거쳐, 88년 출판된 이문열의 ‘삼국지’가 무려 1200만부, 지금까지 국내 최고 베스트셀러 기록을 지키고 있다. “월탄도 읽었고 이문열도 봤지만 탐독파는 아니었어요.”

그러면 원전으로 일본작가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만화 삼국지 30>(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펴냄)를 고른 이유는 뭘까? “막상 원고 청탁을 받고보니 마감이 급했어요. 일반인들이 누구나 한번쯤 읽어봤을 친숙한 텍스트를 찾다보니 ‘삼국지’가 떠올랐죠. 후배에게 가까운 서점에 들러 무조건 ‘삼국지’를 사오라고 부탁했더니 <만화 삼국지 30>를 골라왔더라구요.”

‘삼국지’와는 특별한 사연이 없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있겠지? “워낙 꿈이 시인이었어요. 대학 땐 신춘문예 당선을 목표로 습작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왜 하필 법대를 들어갔을까? “경찰공무원이던 아버지의 바람이기도 했고 마침 학력고사 성적도 맞았어요. 일단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겠다 싶었죠.” 부친의 한풀이? “저도 첨엔 아버지에게 경찰 생활하면서 판·검사들에게 무시당하거나 억울했던 경험이 있었나 싶어 여쭤봤는데 그런 적 없다셨어요. 실은 아버지의 꿈이 시인이셨거든요.” 예상을 벗어나는 반전의 연속이다.

지난달 말 추천사를 써준 나태주 시인에게 가장 먼저 <검사의 삼국지>를 전하러 간 양중진 부장검사(오른쪽)가 공주 풀꽃문학관에서 나 시인의 풍금 반주에 맞춰 동요를 부르고 있다. 사진 티핑포인트 제공
지난달 말 추천사를 써준 나태주 시인에게 가장 먼저 <검사의 삼국지>를 전하러 간 양중진 부장검사(오른쪽)가 공주 풀꽃문학관에서 나 시인의 풍금 반주에 맞춰 동요를 부르고 있다. 사진 티핑포인트 제공
그제서야 시인에게 추천사를 받은 연유가 짐작이 간다. “2015~16년 공주지청장 때 공주문화원장이던 나태주 시인의 풀꽃문학관에 종종 놀러갔었죠.” 나 시인이 소개한 일화도 다시 익힌다. ‘공주에서 지청장의 소임을 마치고 떠날 때, 이임인사를 하고 갔는데 잠시 뒤 되짚어 왔다. 아무래도 풀꽃문학관 풍금 소리에 맞춰 동요를 한 번 더 불러보고 가야만 하겠다고.’ ‘(그는)홑사람이 아니고 겹사람이다.’

그는 내친김에 신문 연재와 컬럼까지 ‘글쓰기 외도’를 계속하고 있다. 검찰 내 농구동호회 회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스포츠 마니아로 소문난 그는 운동경기를 둘러싼 소재로 법률적 풀이를 하는 연재글을 모아 <검사의 스포츠>를 출간할 예정이다.

이쯤에 또 한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필명이 높아지고 대중과 친숙해지면 ‘정치 유혹’도 많아질텐데?’ “요즘 그런 질문 많이 받고 있어요. 물론 정치에 관심도 많아요. 정치가 우리 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을 결정한다고 보기 때문이죠. 하지만 직접 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전 가족, 친구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거든요. ㅎㅎ”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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