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산·김금희·박상영·임솔아·강화길·김봉곤 지음/큐큐·1만2000원 ”하지만 그런 재회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그것이 기적과도 같은 불행이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정아는 단짝 친구 유나와 유나 가족들과 함께 여름 휴가를 간다. 이모와 함께 자는 텐트에서 둘은 애틋한 사랑을 확인하지만 다음날부터 둘의 사이는 가족들과의 틈바구니에서 미묘하게 균열이 생긴다. 휴가에서 돌아온 뒤 둘은 서로를 피하게 되고 4년 뒤 대학에 진학해 고향을 떠날 때까지 한번도 마주치지 않는다. 여고생 둘의 불안한 첫사랑을 그린 김금희 작가의 단편 ‘레이디’는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수록작품 ‘애러비’와 ‘죽은 사람들’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한 작품이다. 퀴어단편선이란 문패를 붙인 소설집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에 실린 6편의 수록작은 모두 위 작품처럼 고전과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현대의 퀴어 서사로 다시 쓰여진 이야기들이다. 이종산 작가의 ‘별과 그림자’에서 친구와 둘이 하는 생일파티에 등장하는 모자 선물과 집 마당에 핀 칸나는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 파티’에 등장하는 붉은 칸나와 주인공이 쓰던 모자에서 가져온 모티프다. 젊은 페미니즘 소설 <다른 사람>을 쓴 강화길 작가의 ‘카밀라’는 최초로 레즈비언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소설 <카밀라>를 가져와 사라진 친구를 추적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최근 퀴어 소설집 <여름, 스피드>를 낸 김봉곤 작가의 ‘유월 열차’는 미야자와 겐지가 쓴 <은하철도의 밤>의 아득한 분위기가 겹친다.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가는 한 남자와 그의 연인인 다른 남자를 통해 누군가에겐 익숙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은하처럼 멀고 낯”선 연인의 여행길을 들뜬 듯 쓸쓸한 정조로 써내려갔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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