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준 시집 <적막>
혼자 밥먹고 혼자 사랑하고 혼자 그리워하고
적막한 지리산 발치에서 혼자 살기…
그러나 마냥 외롭지만은 않소
때론 친구요, 때론 스승같은 자연 있으므로
박남준(48)씨의 새 시집 <적막>(창비)은 고독과 그리움, 탈속과 자연을 노래한다. 박남준 시의 그런 면모는 전주 근교 모악산 자락을 거쳐 하동 악양의 지리산 발치에서 오래도록 혼자 지내고 있는 그의 삶에서 비롯된다. 시와 삶의 일치가 말처럼 쉬운 노릇은 아니겠거니와, 박남준 시인은 단순히 시를 쓰는 것을 넘어서 시를 사[生]는 드문 경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내 몸의 유통기한을 생각한다 호박을 자른다/보글보글 호박죽 익어간다/늙은 사내 하나 산골에 앉아 호박죽 끓인다”(<겨울 풍경>)
“밥을 짓고 국 끓이며/어쩌다 생선 한 토막의 비린내를 구웠으나/밥상머리 맞은편/내 뼈를 발라 살점을 얹어줄 사람의/늘 비어 있던 자리는 달라지지 않았다”(<이사, 악양>)
10년을 살아 온 모악산 자락에서든 새로 둥지를 튼 지리산 발치에서든 혼자 준비해서 홀로 받는 밥상의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늙은 사내 혼자 호박죽을 끓여 먹거나 생선을 구워 먹는 광경을 한마디로 ‘청승’이라 이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청승은 박남준 시인에게 있어 고독과 탈속으로 분화되어 현상한다. 시집 <적막>은 청승의 바탕에서 빚어 낸 고독과 탈속의 노래들이다.
“내 그리움은 이렇게 외줄기 수직으로 곧게 선 나무여야 한다고/그러다가 아예 돌처럼 굳어가고 말겠다고”(<당신을 향해 피는 꽃>)
“그 사람 이름을 불러보네/문밖은 이내 적막강산/가만히 불러보는 이름만으로도/이렇게 가슴이 뜨겁고 아플 수가 있다니”(<이름 부르는 일>)
시인은 시집의 도처에서 누군가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토로한다. 그 누군가를 향해 다가가서 마침내 하나가 되는 순간을 꿈꾸는가 하면 합일이 불가능할 것이라며 체념하여 물러나 앉기도 한다. “돌아오지 않는 편지를 보내던 날이 있었다/대답 없는 이름을 부르고는 했다”(<늙은 너도밤나무>)에서 접속 불능의 사태는 과거형으로 처리되어 있지만, 시집 맨 뒤에 배치된 시 <먼 강물의 편지>의 마지막 줄은 그것이 현재형으로서 영영 굳어질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안녕 내 사랑, 부디 잘 있어라”
유배 혹은 성숙의 조건 ‘고독’
시인의 ‘홀로 살이’가 스스로에게 강제하는 유배와 징벌로서의 성격만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명절이면 시인은 어머니가 기다리는 고향 집 대신 절을 찾아 버릇하는데, 그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 반승반속의 경계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러할 때 그에게 고독은 자신을 단련하고 성숙시키기 위한 조건으로 쓰인다.
“다시 내게 묻는다 너도 이렇게 수직의 정신으로 내리꽂힐 수 있느냐 내리꽂힌 그 삶이 깊은 물을 이루며 흐르므로, 고이지 않고 비워내므로 껴안을 수 있는 것이냐 그리하여 거기 은빛 비늘의 물고기떼, 비바람을 몰고 오던 구름과 시린 별과 달과 크고 작은 돌이며 이끼들 산그늘마저 담아내는 것이냐”(<나무, 폭포, 그리고 숲>)
박남준씨의 시에 등장하는 자연은 완상과 착취의 대상이기보다는 삶이라는 구도의 길을 함께 가는 도반이나 스승으로서 그려진다.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따뜻한 얼음>)
“고추밭에 고춧대들 다 쓰러졌다/(…)//작년 여름 쓰러져 죽은 미루나무 가지들 잘라 지줏대로 삼는다/껴안는구나/상처가 상처를 돌보는구나/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과 엮이며 세워져/한 몸으로 일어선다”(<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과>)
시인의 현실적·인간적 고독이 ‘영영 이별’이라는 부정적·소극적 사태로 귀결된다면, 자연 속의 탈속이라는 그 삶의 또 다른 면모는 사뭇 다른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다.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과 함께 다시 일어선다는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깨달음이 그것이다. 개인적인 고독과 패배에 함몰되지 않고 공적인 연대와 모색을 통해 그것을 넘어설 길이 마련되는 것이다. 지난해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하면서 쓴 한 시에서 그것은 이렇게 노래된다.
“그대를 향해 걸어가기 위해 제주에 왔네/(…)/쓰러진 것들이 일어나 함께 걷는 나 여기 제주에 왔네/그대를 향해 걸어간다는 것/바로 내 안의 생명과 평화를 얻기 위한 일/내 안으로 걸어가네”(<바람과 돌들이 노래 부를 때까지>)
이 때의 ‘그대’란 우선은 개인적 그리움의 대상인 구체적 인물일 수도 있겠지만, 생명평화를 염원하며 바람과 돌들의 땅을 걷는 동안 그것은 인간 보편의 가치 또는 진리로 승화하는 듯하다. 생명평화 탁발순례와 직접 관련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길>이라는 시에 오면 길을 걷는 ‘나’ 즉 주체의 적극적 구도행이 길의 지원에 대한 믿음을 수반하는 양상을 보인다.
늘 애달픈 그 이름, 어머니
“길이 빛난다/밤마다 세상의 모든 길들이 불을 끄고 잠들지 않는 것은/길을 따라 떠나간 것들이 그 길을 따라/꼭 한번은 돌아오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길> 전문)
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이 밤새 내린 눈을 밟고 편지를 전하러 길을 나서려는 것은.
“흰 눈은 내릴 것이다 그 눈길 위에 첫발자국을 새기며 걸어/편지를 전하러 갈 것이다 그 발자국을 따라 그리운 것들이/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올 것이다”(<겨울 편지를 쓰는 밤>)
시인의 편지를 그 누구보다 절실히 기다리는 이가 바로 어머니 아닐까. 무심한 아들이 장치해 놓은 자동응답기에 대고 늙은 어머니는 울 듯이 말한다. 말하며 운다: “어째서 당최 기별이 없다냐/에미는 이렇게 보고 싶은데/어디 갔어 내 아들아/어딜 갔는고 이 더위에/몸조심허고 끼니 거르지 말고/뭐나 끓여 먹고는 있는지/니가 하늘에서 떨어졌냐 땅에서 솟았냐/에이고 참 무심도 허다/건강 조심허고 어치든지 몸 건강허고”(<전화>)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창비 제공
유배 혹은 성숙의 조건 ‘고독’
늙은 사내, 웃으며 청승떨기 박남준 시집 <적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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