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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고통 어루만지는 말 위에 문명이 서있다

등록 2018-10-04 20:03수정 2018-10-04 20:21

하버드대 영문학자·문학비평가의
고문, 전쟁, 창조 행위 비평
문명 파괴하는 고통의 구조 추적
‘고통의 언어화야말로 문명의 핵심’
고통받는 몸-세계를 창조하기와 파괴하기
일레인 스캐리 지음, 메이 옮김/오월의봄·3만7000원

문학의 공교한 언어를 읽던 섬세한 시선으로 ‘세계’라는 텍스트를 읽어내려가는 문학비평가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고 황현산 교수, 신형철이 좋은 모범이다.

일레인 스캐리 하버드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의 첫 책이자 대표작인 <고통받는 몸>도 ‘문학비평가의 세계비평’의 성공적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1985년 출간된 이 책은 당시 40살의 지은이를 단숨에 주목받는 학자이자 저술가로 올려놓았고, 지금도 몸의 고통과 고문을 논의하는 데서 빠지지 않고 인용되고 있다고 한다. 스캐리는 이후에도 여러 책을 냈지만,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그의 책도 <고통받는 몸>이 됐다. 스캐리는 호메로스와 사르트르 등 수많은 문학 작품과 함께 자크 데리다의 해체비평, 현상학,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 등 철학 텍스트를 비롯해 앰네스티 보고서, 군 실무참고서까지 막대한 분량의 텍스트를 가로지른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 곳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관성에서 벗어난 언어로 전개해나가는 독창적인 사유가 읽는 사람의 정신을 각성시킨다.

<고통받는 몸>의 저자 일레인 스캐리 미국 하버드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오월의봄 제공
<고통받는 몸>의 저자 일레인 스캐리 미국 하버드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오월의봄 제공

지은이의 평범하지 않은 언어를 평범하게 만들어버리는 위험을 피할 수 없지만, 책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인간은 창조를 통해 대상과 사물을 만들어왔다. 인간의 창조 이유는 현실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추위와 배고픔, 동물의 위협에 대항해 옷, 불, 집을 발명해냈다. 인간은 몸의 고통과 불편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만큼 세계로 눈을 돌려 더 많은 창조물을 탄생시켰고, 자신을 더 넓은 세계로 확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문과 전쟁은 이와 정반대 방향을 향하는, 파괴하는 운동이다. 인간의 몸에 고문은 고통을 가하고, 전쟁은 상해를 가한다. 고통받는 인간은 그 세계가 극단적으로 축소돼 결국 고통만이 그의 세계 전부를 잠식한다. 고문을 받는 인간은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문명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언어조차 잃어버리고 만다. 고통은 단말마와 비명으로만 표현될 뿐 좀처럼 언어로 명료하게 옮겨지지 않는데, 저자는 이를 “고통이 언어에 저항하는 것은 언어의 본성이다”라고까지 표현한다. 그 끝에서 (한 인간이 구성한) 모든 문명과 세계는 붕괴한다.

그 붕괴는 철저하다. 고문실 안에 있는 “벽, 의자, 욕조”와 같은 인공물조차 본래의 기능을 잃고 고문 무기로 전환돼버린다. 지은이는 고문의 고통으로 몸을 뒤트는 사람을 브라질에선 ‘전화기’, 그리스에선 ‘모토로라’(접이식 핸드폰이 펴졌다 접혔다 하는 모습)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전한다. “극한의 고통 안에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전화기일 뿐이다. 그리고 다시 이 전화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화기가 아니라 한 인간을 분쇄하는 수단일 뿐이고, 분쇄되는 이 인간은 더는 인간이 아니라 그저 전화기일 뿐이고, 다시 이 인간은 전화기가 아니라 그저 전화기를 분쇄하는 수단일 뿐이다.” 이런 고문을 통해 정권의 권력이, 전쟁을 통해선 전쟁의 결과가 약탈물과 확대된 국경선의 모습으로 실재가 된다.

지은이는 이 같은 ‘세계를 파괴하기와 창조하기’(부제)라는 양극의 운동이 곧 인간 문명의 근본적 운동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파괴에서 창조로 돌아서는 그 전환의 첫발, 즉 몸의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야말로 문명의 핵심 과제라고 단언한다. 언어에 저항하는 고통을 언어화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기는 어려워하지만 의심은 쉽게 한다. 그렇기에 출판, 의학, 법, 예술 등을 통해 고통을 언어화하려는 인간의 발버둥은 “윤리적인 중요성으로 가득 찬 기획”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방 안의 두 형상>(Two Figures in a Room, 1959). 출처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 세인스베리 시각예술센터
프랜시스 베이컨의 <방 안의 두 형상>(Two Figures in a Room, 1959). 출처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 세인스베리 시각예술센터

스캐리는 여기서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오랫동안 독방에 갇혀 고문당한 죄수가 어느 날 빵 덩어리 안에서 작은 쪽지가 든 성냥갑을 발견한다. 쪽지에 적힌 말은 “코라죠(이탈리아어 Coraggio)!”, 즉 “용기를!”이라는 말이었다. “이 부서지고 절단된 목소리들의 세계 안에서 가장 치유가 되는 강력한 순간은 어쩌면 당연히도, 상상을 초월하는 고립과 자기 자신의 육체 안으로 삼켜지는 것만이 유일한 현실이 된 사람에게 인간의 목소리가 와 닿는 순간이다. (…) 목소리를 회복시키는 위와 같은 행위들은 고통을 규탄하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고통을 감소시키는 일과 거의 같은 것, 고문 과정 자체를 부분적으로 되돌리는 일이 된다.”

이 책이 나오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국제 앰네스티가 1972년 시작한 세계 각국 독재정권의 고문 실태 폭로와 고문 철폐 캠페인이었다. 옮긴이의 말을 보면, 지은이가 1977년 런던에서 국제 앰네스티의 고문 보고서를 읽은 것이 집필에 결정적이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지은이는 고문 보고서를 읽으며 “고문의 구조가 사실 창조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이라는 이 책의 핵심 테제를 떠올렸다고 한다.

지금도 고문은 세계 도처에서 행해지고 있겠으나, 지금의 한국 독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급박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지은이가 고문이라는 폭력의 극단적 형태를 해명함으로써 드러난 폭력의 논리는 현실의 폭력을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다. 얼마 전 어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바닷물 속에 잠겨 들어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고문’을 당해야 했다. 그들의 절규에 귀를 닫지 않고 그 고문과 같은 고통을 같이 받기를 선택한 수많은 시민의 애도가 있었다.

지은이의 언어를 빌려온다면, 그 절규와 애도야말로 우리의 문명이 파괴되는 것을 온몸으로 막은 행위이며, 앞으로 우리 문명이 딛고 서야 할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인 이들과, 경제 위기를 들먹이며 “이젠 빨리 잊어버리자”고 등을 떠밀었던 이들이 인간과 문명을 파괴하는 고문기술자와 다를 바 없었다는 사실도. 성폭력으로 인해 인간임을 부정당한 여성들이 자신의 고통을 힘겹게 언어로 고백하고 정의를 요구하는 것이 왜 자신만이 아니라 문명을 치유하는 결단인지도 이 책은 알려준다.

출간 후 30년이 지난 터라 이 책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옮긴이인 연구활동가 메이도 지적하듯이 책에선 문명의 창조 행위를 순정한 유토피아적 행위로까지 격상시키고 있으나, 현대 문명의 창조가 세계를 파괴하고 인간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자명해지고 있다. 하지만 문명의 위기는 문명의 부정이 아닌, 고도화든 방향 전환이든 문명 안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손쉽게 기각할 수 있는 주장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지금 시대는 창조의 본질과 방향에 관해 근본부터 다시 사고하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기를 요청하고 있다. 그렇다면 <고통받는 몸>은 여전히 의미 있는 모범이자 자극제가 되어주지 않을까.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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