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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빈곤 속에서도 빛나는 얼굴들

등록 2018-10-18 20:04수정 2018-10-18 20:35

세상에 호소하다-구룡마을의 명암
빈곤의 미-구룡마을을 중심으로
이태호 글·사진/눈빛·각 권 2만5000원

서울 구룡마을 7A 지구에 있는 김숙자씨의 단칸방은 문을 열면 정면에 타워팰리스가 보인다. 자기 삶의 비참함만을 도드라지게 하는 곳으로만 생각했던 그 고급아파트에서 어느날 연락이 왔다. 가사도우미로 일할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이었다. 그 집의 4살짜리 아이는 택시를 타고 압구정동 학원에 다녔고, 김씨는 수영장이나 에어로빅장에 아이를 동행했다. 어느날 “할머니 집에 가보고 싶다”는 아이를 데리고 자신의 단칸방으로 왔을 때 아이는 “저 여기 살고 싶어요”라고 철없는 소리를 했다. 9년을 일하며 그는 자신을 친할머니처럼 따르는 아이가 건강히 자라 대성하길 매일 기도했다. 아이가 중학교에 올라가자 김씨는 가사도우미 생활을 끝냈고, 남편이 진 빚 1억원을 갚았다.

구룡마을의 누더기집 위로 보이는 타워팰리스. 사진 이태호
구룡마을의 누더기집 위로 보이는 타워팰리스. 사진 이태호

‘구룡마을의 보안관’ 김양기씨의 벗, 담배. 사진 이태호
‘구룡마을의 보안관’ 김양기씨의 벗, 담배. 사진 이태호

통통다리 위에서 채소를 다듬는 할머니. 사진 이태호
통통다리 위에서 채소를 다듬는 할머니. 사진 이태호

가림막 앞길로 외출하는 구룡마을 주민들. 사진 이태호
가림막 앞길로 외출하는 구룡마을 주민들. 사진 이태호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고급아파트인 타워팰리스가 2㎞ 거리 지척에 있어 부와 빈곤의 극명한 대비를 나타내는 상징적 장소다. 하지만 구룡마을에 가까이 다가가 보면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 다양하고 복잡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빈곤에 짓눌린 어두운 얼굴만이 아니라 좌절하지 않고 함께 살아온 민중의 아름다운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이태호의 발견이었다.

이태호는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19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에 가담했다가 박정희 정권의 압력으로 해고된 언론인이다. 이후 <한겨레> 창간위원과 기자, <평화신문> 편집국장 대리로 일했고, 지금도 논픽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여전히 현역인 그는 지난 2013년부터 5년간 구룡마을을 수백번 드나들며 사진을 촬영하고 사람들을 만나 취재했다. 그 결과물이 <세상에 호소하다>, <빈곤의 미> 두 권의 사진집에 담겨 나왔다. 앞의 사진집이 구룡마을이 형성된 역사와 현재를 좀 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다뤘다면, 후자는 생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주관이 강하게 드러난다는 것이 지은이의 설명이다.

이태호는 곧 공영개발로 사라질 이곳을 “빈곤을 해소하고자 노력해 온 인류의 역사에 길이 남겨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기록에 남겨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사진과 글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가 기록으로라도 남겨야 하는 것은 물론 허름한 건물의 외양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국전쟁 당시 강화도 인근 석모도에서 남편이 주민들과 함께 학살돼, 절에서 밥을 해주고, 옷을 떼다 파는 일로 살아온 남봉주(90) 할머니. 번개 같은 주먹으로 억울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는 ‘구룡마을의 보안관’으로 살아왔지만 이제 나이가 지긋해진 김양기(85) 할아버지. 집 안이 쓰레기와 악취로 가득하지만 일필휘지의 붓글씨 실력을 갖춘 의문의 사람 안창길(57)씨 등 두 책에 걸쳐 15명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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