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가 장강명(왼쪽)과 일본 소설가 나카무라 후미노리가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대산문화재단 사무실에서 대담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올해로 네번째를 맞은 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17~18일, 대산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 주관)의 특징은 세대교체다. 특히 일본에서 그동안 문인 교류 경험이 거의 없는 젊은 작가들이 많이 참여했다. 나카무라 후미노리(41)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쓰리>, <교단 엑스>처럼 내면의 어둠을 언어와 형상화해 그와 대치하는 작품들을 많이 써온 작가다. 오에겐자부로상, 아쿠타가와상을 받았고 영어 등으로 번역돼 국외에서도 다수의 상을 받은 일본을 대표적인 젊은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18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대산문화재단에서 나카무라와 한국의 장강명(43) 작가가 만났다. 장 작가는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표백>과 한국 청년의 이주 문제를 다룬 <한국이 싫어서> 등 사회 비판적 문제부터 에스에프 작품까지 폭넓은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두 사람은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종이책의 쇠락, 정치적 현실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3개국어로 번역된 포럼 참가작가 작품집 <마음의 연대-전통, 차이, 미래 그리고 독자>에 실린 서로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좌담을 시작했다.
└ 나카무라 장 작가의 단편소설 <모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주인공에게 가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는 설정이 특이했고, 묘사가 매우 세심했다. 두 화자가 등장하는데 누가 누구를 창작해낸 건지 알 수 없게 한 것도 일본에는 없는 설정이라 특이했다. 이 작품이 일본에도 출간됐으면 좋겠다. 일본에선 번역문학이 적극 수용되지 않기 때문에 아쉽다.
└ 장강명(이하 장) 나카무라 작가의 <달 아래의 아이> 읽으면서 놀랐다. 일부러 맞춰 놓은 것처럼 제 작품과 비슷한 대목이 많더라. 일단 어둡고 불길하고 숙명론적인 분위기가 비슷했다. 하지만 내 작품의 운명론적 분위기가 등장인물들이 처한 사회에서 기인하는 반면, 나카무라 작가의 숙명론은 대를 이어오는, 사회보다 더 깊은 데 근원이 있는 느낌이라 더 어둡게 느껴졌다.
└ 장 <교단 엑스>에선 전쟁과 살인, 성관계 묘사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사건과 메시지가 강렬하고 독자의 눈길을 끄니 ‘선정적이고 소재주의다’, ‘인물 내면 묘사나 문학성이 약화된다’는 우려도 있을 것 같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범죄나 충격적 사건들은 일부러 독자들을 놀라게 하려고 사용하는건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쓰게 된 건지 궁금하다. 특히 노골적인 성적 묘사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다는 비판을 많이 나오고 있다. 남자 작가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고, 나도 극복하려 노력하는 중인 문제다.
└ 나카무라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썼다. 작가가 자연스럽게 쓰면 결과적으로 독자들이 놀라게 된다. 나는 반대로 <교단 엑스>를 쓸 때는 분량이 많고, 수위도 높기 때문에 이 책은 잘 안 팔리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50만부가 나갈 정도로 잘 팔려서 놀랐다. 모두들 그 책을 베개로 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웃음). 문학성과 메시지, 소재 선정은 서로 독립적일 수 있다.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기는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처럼 사건과 문학성을 잘 섞어서 쓴 작가도 있기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교단 엑스>를 보면, 결국에 죽는 것은 다 남자고 여자들은 다 살아남는다. 그런 결말로 여자가 더 강하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작품에서 너무 여자들만 당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여성들을 직접 취재해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물어보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지금 집필 중인 에스엠(SM, 가학성과 피학성 변태성욕)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도 남자가 여자를 묶는 장면을 쓸 때 남자 입장에서만 쓰면 남성의 쾌감만을 강조하게 되기 때문에 이를 여성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을 쓰는 식이다.
일본 소설가 나카무라 후미노리가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대산문화재단 사무실에서 한국 소설가 장강명과의 대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장 내 소설들이 영어로 막 번역돼서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 독자가 일본 작가 작품을 읽을 땐 문화적 배경이 비슷해서 별다른 장벽이 없다. 하지만 영미권처럼 다른 문화권으로 작품이 번역된다고 할 때 작가들에게 어떤 고충이 있을까 궁금하다. 당신의 작품이 미국에서 상도 받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데, 나에게 줄 조언이 있을지 궁금하다.
└ 나카무라 일본 독자와 미국 독자의 반응이 거의 비슷했다. 문화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는 것도 같다. 옴진리교 사건처럼 일본인들만 알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번역한다. 최근엔 일본 젊은 사람들도 옴진리교를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풀어서 쓰는 게 반응이 좋다.
“당대의 일 외면하지 않아야”
└ 장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한국의 많은 문제를 소설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나도 역사적인 소재보다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일어나는 일들을 소설로 쓰고 싶고, 당대의 일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소재들은 여전히 갈등 중인 사안이 많아서 고민되는 지점이 있다. ‘내 소설이 곡해돼서 특정 정파를 편드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사건 피해자에게 아픔을 상기 시키지 않을까’ 같은 고민이다. <교단 엑스>의 소재가 된 옴진리교 사건도 피해자와 그들의 유가족이 아직 살아있는 사건이다. 이런 소설을 쓸 때 윤리적으로 고민되는 지점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 나카무라 모든 주의를 기울여 조심스럽게 표현하려고 한다. 쓰기 전에 모든 정보를 알아본 다음에 쓰는 것이 중요하다. 피해자라던가 힘이 없는 분들에게 초점을 맞춰서 정보를 알아보는 습관을 길렀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룰 때도 일본 군인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꼼꼼히 알아봤다. 나도 동시대에 일어나는 사건에 초점을 맞춰서 쓰려고 한다. 나는 별로 밝은 성격의 사람이 아니고, 한때는 이 세상이 너무 살기 힘들다고 느낀 적이 있다. 그럴 때 문학이 내게 용기를 줬다. 그런 사람들과, 그런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작품을 주는 작품을 쓰고 싶다.
└ 장 한국에선 웹소설이 굉장히 뜨고 있다. 웹소설의 기원이 일본이라고 하더라. 일본서도 휴대전화로 보는 대중소설이 굉장히 인기를 끈다고 알고 있다. 웹소설 독자가 많아지면서 작가들의 글쓰기의 환경이 변하고 있다. 나도 웹소설 연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종이책 독자를 상대로 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종이책 독자가 줄고, 웹소설이나 전자책 독자가 증가하는데 따라 글쓰기 방법도 바뀌어야 하나 고민이 많다. 범죄소설 같은 대중문학처럼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일부러 가져와야 하나 생각도 한다.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나.
└ 나카무라 나는 종이책 문화나 펜으로 종이에 쓰는 문구 문화를 지키고 싶다. 여기에 있는 교보문고 같은 서점이 줄어들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작가의 몫이라 생각한다. 아직 일본에선 만화책은 인터넷으로 보는 게 많지만 소설은 책으로 출판되는 것이 더 많다. 종이로 읽을 때와 인터넷으로 읽을 때는 뇌의 활동이 많이 달라진다고 한다. 인류에게 종이책으로 글을 읽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 장 한국에선 대중소설을 읽고 쓰는 사람과 순수문학을 읽고 쓰는 사람이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독서 환경의 비극은 이런 분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중간에 있는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도 이런 분리가 있나.
└ 나카무라 에스에프(SF, 공상과학)를 포함해서 집필하는 장작가처럼 나도 장르를 구별하지 않고 섞어서 쓴다. 나는 그런 나 자신을 순수문학 작가로 생각하고, 일본이나 유럽에서도 그렇다. 미국에서는 미스터리소설가, 범죄소설가라고 평가를 받는다. 나라마다 다르다. 일본에서는 미스터리도 순문학이라고 평가를 받는다.
└ 장 우리 둘 다 문학성과 대중성 모두 잡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두 가지가 아예 분리되는 것은 아닌데 막상 내는 책마다 독자가 달라지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 작품은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썼는데 ‘주제 의식이 약하다’는 비판을 받는다거나, 진지하게 썼는데 독자들과 멀어져버리니 애를 먹는다.
└ 나카무라 공감한다. 어려운 문제다. 나의 미스터리작품을 좋아하는 독자가 나의 다른 소설은 미스터리적이지 않다고 불평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에스에프든 미스터리든 모든 재미있는 소재를 수용하려고 한다. 나는 소설의 가능성을 더 넓혀보고 싶다.
“한국문학 읽으면 한국인 이해 깊어져”
└ 장 일본 소설을 읽기 전에는 제2차대전 당시 일본 국민 모두가 군국주의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교단 엑스>를 보면 일본이 벌이는 전쟁에 동의하지 않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한 일본인도 있었구나 생각이 든다. 나카무라 작가의 책을 통해서 2차 대전에 대한 일본인들의 마음의 일부를 알게 됐다.
└ 나카무라 예전에 아베 총리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맺은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를 버려두고 정치적으로 합의를 한 것이기에 좋지 않다고 본다. 한국 국민들과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일본 사람들이 한국의 역사나 정치에 대해 인식이 없기 때문에 오해가 많다. 서로를 더 알아가면서 가까워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에 온 것이 이번이 다섯 번째다. 한국에 직접 오니 느껴지는 모습도 있고,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모습이 있다. 한국에 올 시간이 없다면 문학작품을 읽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인간의 내면을 다룬다. 한국의 문학작품을 읽음으로 한국인의 내면을 이해하게 되고, 한국인을 알 수 있게 된다. 더 많은 한국의 책이 일본에 많이 출판이 되면 결국 한일 간의 관계도 좋아질 것이다. 이번처럼 한중일의 작가들이 모이는 자리에 일본 기자들이 많이 왔고, 그들의 보도를 통해 일본 사람들이 한국의 문학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행사라고 생각한다.
└ 장 우리 나이가 40대 초중반이다. 그동안 굉장히 어둡고, 인간 내면의 악한 부분들을 다루는 소설을 많이 써왔다. 요즘은 그런 것을 쓰면 힘이 들더라. 계속 악한 생각을 하다 보니 힘이 빼앗긴다. 나이가 들면서 남성 호르몬도 줄면서 마음이 착해지는 것 같다(웃음). 나카무라 작가는 인간의 어두운 면에 꽂혀 있다고 하는데, 어두운 주제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는지, 그런 소설을 쓰면 이젠 힘이 들지는 않는지 궁금하다.
└ 나카무라 아직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없다(웃음). 우리보다 나이 많은 60대의 무라카미 하루키도 여전히 젊은 작품을 쓰고 있다. 어두운 작품을 많이 쓰는 건 내가 원래 어두워서 그런 것 같다. 학생 때 다자이 오사무나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받은 충격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소설가 장강명이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대산문화재단 사무실에서 일본 소설가 나카무라 후미노리와의 대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기자 보수정당인 자민당이 장기 집권해오고, 아베가 총리 3연임을 하는 일본에서 살면 상당히 답답할 것 같다.
└ 나카무라 지금 일본을 보면서 살기 힘든 나라구나 느낄 때가 많다. 그런 상황에서도 작가들은 침묵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베 정권이 잘못을 하면 지적해야 한다. 아베 총리는 몇 번이나 그만둬야 할 상황이 왔음에도 아직도 총리를 하는 것이 매우 신기하다. 그래도 내년쯤에는 자민당이 어렵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지지하는 국민들도 슬슬 떨어져 나가고 있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 다른 나라들도 서로 단절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그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는 한국만이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등 이런 단절을 매우려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많은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부러워한다. 촛불집회도 부럽게 생각하는 일본인들이 많다. 남북한이 분단된 데는 일본의 책임도 크기 때문에, 남북의 우호관계를 위해서는 일본도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베의 힘으로는 무리다. 그의 지지층 중에는 자국중심주의로 쏠려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일본을 어떻게 보나?
└ 장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일본을 한국의 미래 모습처럼 보는 경향이 있다. 일본처럼 노인이 많아지고, 장기 경제 불황이 한국에 오는 것 아니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한국이 나중에 일본처럼만 되어도 다행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본은 그런 상황에서도 평화롭지 않나. 한국에 장기 경제 불황이 오고, 고령 인구가 많아지고, 사회 역동성이 줄어들면 굉장히 폭력적인 사회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지금 사회 각 분야에서 혐오의 감정들이 폭발 직전이다.
└ 나카무라 일본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유럽 사람들은 일본이 과거의 유럽을 닮아간다고 하더라. 한국이 일본만을 닮아가는게 아니라 세계국가들이 다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경제가 안 좋아지면 사람들 마음도 안 좋아진다. 우리는 일본 경제가 어떻게 될지 2020년 도쿄올림픽이 끝난 이후가 불안하다. 지금 실업률이 낮아지고 있는 것은 단순히 출산율이 낮아 젊은 사람들이 적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는 별로 좋지 않은데 정부와 일본은행(중앙은행)이 좋게 보이게 만드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모습은 희망적이다.
└ 장 앞으로 소설로 써보고 싶은 당대의 문제가 있나. 나는 앞으로 빈곤 문제나 노동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쓰려고 계획 중이다.
└ 나카무라 지금은 일본에서 벗어나서 세계 문제에 초점을 둔 소설을 신문에 연재 중이다.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모이는 상황이다. 지금 작품은 일본 남자와 베트남 여성의 사랑을 관한 것이다.
└ 장 재건축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을 곧 마감해야 하는데 이것은 외국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아무리 인류가 공통으로 이해하는 바가 있다고 해도 한국의 재건축 문제는 외국사람들이 정말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 나카무라 꼭 공감을 얻어야만 재미있는 건 아니다. 차이를 알게 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정리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