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에 너를 숨겨놓았다
김미경 글·그림/한겨레출판·1만4800원
조직에 몸 붙여 사는 일을 접고 자발적 가난을 택한 용기. 매일 옥상에 올라 0.1㎜ 펜으로 서울 서촌의 풍광들을 10시간씩 담아내는 성실함, 광화문 광장에서도 치맛자락 펄럭이며 혼자 춤출 수 있는 자유. ‘서촌 옥상 화가’ 김미경의 지난 5년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하루종일 그림만 그리며 사는 삶”을 꿈꾸며 밤마다 대차대조표를 그리다 결국 2014년 월급쟁이 27년 인생에 종지부를 찍고, 그리고 또 그렸다. 2016년부터는 춤바람까지 더해져 그림 그리다 일어서서 춤추고, 춤추다 앉아서 춤추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김 작가가 이번에 낸 <그림 속에 너를 숨겨놓았다>는 <브루클린 오후 2시>, <서촌 오후 4시>에 이은 세번째 에세이집이다. 첫번째 책 <브루클린 오후 2시>(2010)는 2004년 <한겨레> 기자 생활을 그만둔 뒤 미국 뉴욕의 한국문화원 사서로 7년간 지내면서 한국에서 구축됐던 ‘기자 김미경’이란 사회적 자아가 ‘개인 김미경’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담았고, <서촌 오후 4시>(2015)는 전업 작가의 삶을 결심한 뒤 자신이 사는 동네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얘기를 풀어냈다. 이번 에세이집은 종이와 펜이 만나는 2차원을 넘어 춤을 통해 3차원의 세계로 확장해가는 여정을 100점의 그림에 실어 보여준다. 물론 동백꽃 흐드러진 제주도 마을이든, 도심의 노천카페든, 흥이 오르면 장소 불문하고 춤추는 그를 목격한다면 “역시 4차원이군”이라며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림과 춤 모두 제도권의 교육을 받지 않은 그는 지금도 “문인화풍 그림을 그리시는군요”라는 말이 “아마추어군요”라는 ‘에둘러 비평’이 아닐까 싶어 뜨끔할 만큼, 프로와 아마추어의 심리적 경계를 오간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대목은 그동안 예술의 황홀경을 경험해보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극과 용기를 준다는 점이다. 자기 집 앞에서 그림 그리는 작가를 유심히 살펴보던 서촌 토박이 주민이 77살에 종로문화센터 그림교실에 등록했다거나, 다운증후군 환자이자 김 작가의 그림친구인 은혜씨가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주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이야기 등은 감동적이다. 술술 읽히는 책이지만, 메시지가 묵직하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이 질문을 정직하게 받아 안고 간절함을 담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김미경의 ‘아트’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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