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은 지음/후마니타스·1만7000원 “곁에 두고 쓰던 물건은 물론이고 시간과 공간도 사람들에게 버림받는다. 무덤이, 공원이, 때로는 도시 자체가 버려진다. 죽음도 역사도 버려진다.”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은 지구촌 곳곳의 ‘버려지고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글이다. 국제부 기자를 오래 한 지은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내용이 바탕이 됐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직전에 찾았던 고대 수메르의 수도 바빌론에서부터 남겨진 것들에 대한 얘기가 시작된다. 나선형 구조로 유명한 이라크 사마라의 미나레트는 이슬람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윗부분이 무너졌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2001년 바미얀 석불을 폭파시켰다. 오랜 세월의 무게를 견뎌냈던 문화 유산들이 야만과 전쟁으로 무너져 내리고 흔적마저 지워져버린다. 전쟁이 파괴한 마을들과 욕망이 만들어낸 텅빈 도시, 버려진 비행기와 공항, 자동차, 배, 기차, 놀이공원은 인간이 만들어 낸 많은 것들이 어떻게 버려지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책임지지 못할 물건들로 지구를 뒤덮고 있다.” 바다를 덮은 플라스틱은 앨버트로스와 바다거북을 죽음으로 내몬다. 땅과 숲도 생명체를 키워낼 능력을 잃어간다. 강과 호수는 사라지고, 소수 부족들은 멸족하며 언어들이 사라진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또 버려지는 상품이 있다. “가장 큰 역설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폐기되는 것 중 하나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노예·난민·이주민·미등록자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버리고 폐기하고 지우는 우리가 아니라, 버림받고 지워지고 폐기당하는 존재인 우리를 성찰하게 한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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