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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전문 무크 ‘크릿터’ 창간…페미니즘과 퀴어문학 조명

등록 2019-01-04 06:00수정 2019-01-04 19:53

“타자·소수자 논의는 주변부에서 출발”
“지금은 모두가 소수자인 정체성 폭발기”
“이광수는 퀴어소설 세계 열면서 닫아”
크릿터 1-페미니즘
편집부 기획/민음사·1만4000원

새해 벽두에 민음사가 비평 전문 무크 <크릿터>를 창간했다. 민음사는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를 내고 있는데, ‘크릿터’란 비평가를 뜻하는 ‘크리틱’과 ‘릿터’를 결합해서 만든 말이다. <크릿터>는 1년에 한 번 나올 예정이고, 창간호 특집은 페미니즘으로 잡았다. 2010년대 후반, 문학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도 가장 뜨거운 주제.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으로 상징되는 문화예술계 고발-항의의 연대는 단발적 이슈의 층위를 넘어서, 문학(예술)의 젠더 형식뿐 아니라, ‘누가’ ‘어떻게’ 문학을 대표해 왔는지의 조건을 질문에 부쳤다. (…) 1990년대 이후 내내 한국의 이론, 담론 현장에서 전개된 타자, 소수자 논의가 비로소 얼굴과 신체를 가진 구체적 타자로 등장했다. 이것이, 평론의 언어 혹은 이름 있는 기성 작가의 목소리가 아닌 작가 지망생, 독자의 경험과 고발 등에서 시작된 것도 기억해야 한다.”

김미정은 페미니즘 문학 운동이 기성 문단이 아닌 이른바 ‘주변부’에서 비롯했음에 주목한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오늘날 독자는 문학의 중요한 주체로 호명된다”고 주장한다. 조남주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두고 “독자의 목소리가 현실 세계에서 발화되고 사회에 화두를 던지고 이슈를 생성함으로써 문학성을 획득한 작품”으로 평가한 박혜진의 글 역시 궤를 같이한다.

이렇게 출발한 페미니즘 문학 운동이 “문학(예술)의 허용(불)가능한 다양성의 범위와 질을” 물어야 한다며 김미정은 순천과 칠곡 할매들의 글쓰기처럼 “재현미학의 규준에 미달/초과하는 무수한 쓰기와 예술의 현재도 동등하게 소중하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물론 그는 일본의 사례를 들며 “소동이나 문제제기 자체가 예술적 평가라고 착각되는 경향의 위험성을 경고”하길 잊지 않는데, 문학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질적 판단을 유보 내지 폐기함으로써 스스로 함정에 빠졌던 80년대 민중문학의 사례가 떠오르기도 한다.

민음사가 창간한 비평 전문 무크 <크릿터>는 ‘페미니즘’을 창간 특집으로 삼았다. 사진은 지난해 12월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페미니즘으로 쓰는 인권선언 추진단’ 회원들이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민음사가 창간한 비평 전문 무크 <크릿터>는 ‘페미니즘’을 창간 특집으로 삼았다. 사진은 지난해 12월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페미니즘으로 쓰는 인권선언 추진단’ 회원들이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봉곤과 박상영, 김혜진 등의 작품으로 중흥기를 맞은 퀴어 문학을 다룬 글들도 여럿 실렸다. 소영현에 따르면 “퀴어를 문학적으로 가시화하거나 성적 규범의 억압성을 폭로하는 문학에서 사회의 성애 중심적이고 이성애 중심적 인식틀 자체에 성찰과 재편을 요청하는 문학까지를 폭넓게 아울러 퀴어문학이라 부르게 된다.” 그러나 그는 “모두가 소수자가 되고 있는 정체성의 대폭발기”에 “퀴어의 도전을 광의의 이항적 분할 구도에 대한 저항과 위반 그리고 재편으로 확장적으로 규정하면, ‘퀴어문학’이라는 말은 곧 문학 자체로 흡수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양경언이 “‘윤리적인 구도’에 갇히지 않으면서 새로운 정치를 상상하고 실험하는 다른 방법으로의 퀴어 비평”을 고민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양경언은 “삶을 비확정적이고 비특정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면모야말로 ‘퀴어’ 개념이 남기는 가장 급진적인 정치성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데, 김혜진의 단편에서 “퀴어 내의 계급 위계를 가시화하는” 방식에 주목한 소영현의 글, 그리고 세 여성 작가의 단편에서 “갑질의 피해자지만 활발하고 강력한(정이현 ‘언니’), 난민이지만 우아하고 행복한(권여선 ‘하늘 높이 아름답게’), 서로를 공격하지만 사랑하는(최은영 ‘몫’)” 여성들을 확인하는 강지희의 평론이 페미니즘 비평 또는 퀴어 비평의 구체적 사례를 보여주는 셈이다.

<크릿터>는 특집과 서평, 기획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문학사적 시선과 당대 문학의 만남을 시도한 기획 ‘최근 한국소설의 계보와 영역’에서는 서영인과 한설의 글이 특히 흥미롭다. 서영인은 흔히 임화의 부인으로만 호명되는 지하련과 관련해 “어째서 사회주의자 지하련은 누락되고 임화의 부인 지하련만 문학사적 에피소드로 남아 있는 것일까”라며 ‘여성 서사의 전통’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설은 이광수의 소설 <무정>에서 기생이 된 영채와 역시 기생 언니 월화 사이의 동성애가 “황급하게” 지워져 버린 것을 두고 “퀴어 소설의 세계를 열면서 동시에 닫은”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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