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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인혁당 사건 정면으로 다룬 노작가의 뚝심

등록 2005-12-15 20:29수정 2005-12-16 15:50

<푸른 혼> 김원일 지음. 이룸 펴냄
<푸른 혼> 김원일 지음. 이룸 펴냄
한겨레가 전문가와 함께뽑은 2005 올해의 책 50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과거사위)가 지난 7일 인혁당 사건이 정권에 의해 조작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8명의 명예 회복과 신원의 길이 열린 셈이다.

김원일(63)씨가 연초에 출간한 연작 장편 <푸른 혼>(이룸)은 인혁당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문제작이다. 사회·역사적 맥락을 놓치고 사소화·왜소화해져만 가는 한국 소설의 지배적 경향에 맞서 그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중진 작가의 안간힘이 낳은 역작이라 할 만하다. 인혁당 관련자 8명의 이름을 한 자씩 변형시킨 채 등장시킨 이 반(半)실명 소설에서 작가는 사건의 발생과 경과, 그 연원과 여파를 다각도로 파고든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소설인 만큼 작가의 상상력으로써 살을 덧붙이기는 했을망정 사건의 뼈대는 있었던 일 그대로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관련자)여덟 분의 영정에 이승을 뜬 지 30주기를 맞아 이 책자를 바친다”고 쓰고 있다. 역사적 사건의 기록자이자 증인으로서의 작가적 책임감이 이 소설을 쓰게 했음을 고백한 셈이다. 그 때문인지 작품은 다소 건조하고 단조롭게 읽히기도 한다. 여섯 편의 연작으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모든 작품의 결말이 1975년 4월 9일 새벽의 사형 집행 순간으로 수렴되기 때문일 것이다. ‘억울한 죽음을 향한 여덟 사람의 일렬 행진’이라 표현할 법한 그런 서사의 진행은 과거에 이미 벌어진 사태를 돌이키지 않는 한 달리 어찌 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대신 작가는 연작마다 시점과 서술 방식, 문체 등에 가능한 한 변화를 줌으로써 단조로움을 피하고자 한다. 연작 첫 편인 <팔공산>이, 사형당한 8명이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도시 대구의 역사와 사건의 관련성을 유장하게 풀어 나가고, <두 동무>가 서도원과 이수병의 우정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며, <여의남 평전>이 여정남의 평전 형식을 취하는가 하면, 마지막 작품 <임을 위한 진혼곡>이 망자 부인의 독백 형식을 빌려 사건의 사후 진행과 그 현재적 의미를 묻는 식이다.

진지하고 묵직한 문제의식보다는 얄팍한 기교와 한없는 가벼움이 떠받들리는 세태 속에 작가의 뚝심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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