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서 어렵게 살다 보니 늘 배가 고팠습니다. 꿈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내 또래 애들이 학교 가면 부러웠습니다. 나는 학교 갈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집은 아들들은 다 학교에 보냈습니다. 나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딸이라고 공부를 못 하게 했습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혹은 가난 때문에 글을 배우지 못했다 뒤늦게 글을 배운 ‘순천 소녀시대’ 할머니 스무 명이 살아온 삶을 글로 쓰고 그림에 담아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봄날)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막내가 50대 후반, 맏언니는 아흔을 바라본다. 2016년부터 순천시 평생학습관 한글작문교실 초등반에서 글과 그림을 배웠다.
할머니들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이 들면 동심이 되살아 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가 그린 것처럼 천진하고 색깔이 곱다. 그렇다고 밝은 얘기만 담긴 건 아니다. 일제강점기와 여순사건, 한국전쟁 등 시대가 할퀸 생채기가 뚜렷하다. “인민군으로 갔다 왔다고 오해를 하고 모두 싸잡아 총살을 시켰습니다. 오빠는 그때 혼인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올케 될 사람은 오빠도 없는데 가마를 타고 시집을 왔습니다.”
이들의 개인사는 가난, 시집살이, 남편의 바람과 폭력, 아들의 중학교 납부금 때문에 목숨을 끊으려 한 사연 등 슬프고 가슴 아픈 얘기로 차 있다. 그럼에도 곳곳에서 웃음이 터지게 한다. 이모 집에 심부름을 가 엉겁결에 선을 본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구멍 뚫린 양말 사이로 보이는 하얀 엄지발가락이 갑자기 멋있어 보이고 맘이 가” 결혼을 했다. 남편의 버릇을 고쳐놓은 얘기도 있다. “남편은 자기 생일날 밥을 빨리 안 준다고 상을 엎어 밥상이 망가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상을 새로 안 사고 석 달 동안 땅바닥에 밥을 줬더니 그 뒤로는 상을 안 엎었습니다.”
한글을 배우지 못해 영수증 따위를 읽을 수 없었고 손주들한테 동화책을 읽어줄 수 없어 창피했던 할머니들은 이제 스스로 자신의 이름과 집 주소를 쓰고 영어에도 도전한다. ‘안녕하세요, 선생님’을 영어로 ‘헬로, 디져’라고 해 폭소를 터뜨리게도 하지만….
할머니들의 사연은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알려져 지난해 서울에서도 ‘그려보니 솔찬히 좋구만’이란 이름의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제는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습니다. 공부도 그림도 너무 좋아 자랑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행복하게 사는 게 꿈입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그림 남해의봄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