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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20년간 4052쪽 번역…“중국 5천년 지성사 쫙 꿰어지더라”

등록 2019-02-08 05:01수정 2019-02-08 20:39

류쩌화의 ‘중국정치사상사’ 번역 출간한 장현근 교수
1996년 ‘왕권’을 열쇳말로
중국 고대정치사상 복원한 대작
책 절반이 원전사료로 채워져
시대마다 다른 문법·사상에 애먹어

2015년 겨우 출판사와 계약
교정지가 천장까지 닿을 정도
“사상사 사라지는 단편적 지식시대
한국 정치사상사 복원 작업 할 것”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장현근 용인대 교수는 “중국 정치사상도 이제 기틀이 잡혀, 민주주의나 사회주의에 비견할 만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장현근 용인대 교수는 “중국 정치사상도 이제 기틀이 잡혀, 민주주의나 사회주의에 비견할 만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년. 장현근 용인대 교수(중국학과)가 류쩌화의 <중국정치사상사>(1996) 번역에 착수한 것은 20년 전인 1998년이었다. 당시엔 중국정치사상사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샤오궁취안(소공권)의 <중국정치사상사>(서울대출판부)가 번역되어 있었다. “하지만 류쩌화의 책은 분량이 그보다 두 배나 되고, 방대한 분량의 원전 텍스트가 실려 있어요. 후학들에게 이 두 책이 있다면 중국정치사상사의 기본은 충분히 되어주겠다는 생각에 반드시 번역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는 번역을 위해 매일 밤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책상에 앉았다. 저서 10여권, 논문 70여편 등 많은 집필 작업과 함께 이 책을 틈틈이 번역했다. 저녁 약속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와도 번역을 꼭 조금이라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번역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책의 절반이 원전 사료로 채워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갑골문부터 청나라까지 5천년을 망라하는 터라 시대마다 문법이 달라지고, 사상가마다 제각각 고난도 논리를 펼치는 통에 애를 먹었다.

1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장 교수는 “그걸 다 이겨내고 번역을 해내니 중국 5천년 지성사가 꿰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관념의 변천사>(한길사)처럼 시대를 관통해서 변화하는 관념의 역사를 다룬 책도 쓸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2002년 규모가 작은 출판사에서 먼저 1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다음 권부턴 감당하지 못하겠다며 출간을 포기했다. 장 교수가 출판사 몇 군데를 다녔지만, 책을 내주겠다는 데가 없었다. ‘언젠가는 이 책을 출판하는 미친 짓을 해줄 출판사가 나타날 거다’란 생각으로 혼자 번역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2015년 글항아리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고, 2016년 원고를 넘겼다. 4052쪽. 한국어판 전 3권의 분량은 본래 2100여쪽인 중국어 원전의 두 배 분량에 이른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교정지를 열 번 뽑았는데 (낱장을 쌓으면) 사무실 천장에 닿을 정도고, 별도의 인력을 채용해 2년간 진행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저도 처음 번역을 시작할 땐 금방 할 거라 생각했어요. 출판사만 제때 만났으면 10년은 일찍 냈을 텐데 그런 점이 아쉽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류쩌화의 <중국정치사상사> 1권은 선진 시대, 2권은 진한과 위진남북조, 3권은 수·당·송·원·명·청을 다룬다. 류쩌화가 서문에서 방대한 저작의 핵심을 간결하게 정리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중국 고대 정치사상의 주제는 무엇인가? 대답은 천만 갈래일 수 있으나 다음 세 가지로 귀납될 수 있다. 군주 전제주의, 신민(臣民)의식, 성인 숭배 관념. 고대 정치 관념에서 근대 정치 관념으로의 전환은 주로 위 세 가지를 넘어섬을 의미한다. 즉, 군주 전제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전환, 신민의식으로부터 공민의식으로의 전환, 성인 숭배 관념으로부터 자유 관념으로의 전환.” 장 교수는 “류쩌화가 제자 7명과 함께 쓴 <중국정치사상사>는 중국 고대 사상사 전체가 왕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가는 과정이었다고 요약하고, 이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1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장현근 용인대 교수는 “중국 정치사상도 이제 기틀이 잡혀, 민주주의나 사회주의에 비견할 만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장현근 용인대 교수는 “중국 정치사상도 이제 기틀이 잡혀, 민주주의나 사회주의에 비견할 만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류쩌화는 ‘중국정치사상=마르크스-레닌주의+마오주의’였던 1980년대 후반 ‘왕권’을 열쇳말로 중국 고대 정치사상을 복원해낸 ‘왕권주의학파’의 태두로 꼽힌다. 그는 중국 톈진의 난카이대학에서 60명이 넘는 중국사상사 교수를 길러냈다. 하지만 류쩌화 본인은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석사 학위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고난을 겪은 인물이었다. 문화대혁명 당시 오지로 하방당해 농사를 짓느라 공부가 끊긴 적이 있다. “제가 2015년에 중국을 6개월간 주유할 때 류 교수도 톈진 자택에서 뵙고 토론도 했습니다. 정말 훌륭하신 분이었죠. 그때 류 교수가 마오쩌둥만이 아니라 공자와 맹자에게서도 메시아 의식이 있었던 게 아니냐고 이야기해서, 상당히 놀랐습니다. 지난해 5월 한국어판의 출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신 게 참 아쉽네요.”

오래 번역에 매달리긴 했으나 이 책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사상가가 시대적 갈등을 해결하려는 고뇌의 산물로 전통 정치사상을 보지 않고, ‘역사의 동력은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관점에 따라 인간 불평등과 억압의 질서에서 나온 결과물로만 파악하는 것도 단선적이라 비판한다. “일당독재 공산주의 사회에서 학문을 하는 교수의 작은 한계라고 할까요. 역사는 당대의 눈으로 봐야지 지금의 시각으로 과거를 재단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장현근 교수가 20년간 번역해온 <중국정치사상사>는 1권이 1320쪽, 2권이 1208쪽, 3권이 1524쪽으로 모두 4052쪽에 이른다.
장현근 교수가 20년간 번역해온 <중국정치사상사>는 1권이 1320쪽, 2권이 1208쪽, 3권이 1524쪽으로 모두 4052쪽에 이른다.
장 교수는 최근 국내학계에서 사상적 기반이 약해져 가는 경향을 두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치학과에서도, 역사학과에서도 사상사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과학은 어두운 터널로 들어선 것 같습니다. 대중매체엔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깊고 넓게 고민하는 통사적인 작업이 필요합니다.” 장 교수는 앞으로 중국정치사상사의 큰 영향을 받은 우리의 정치사상사를 복원하는 작업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정치사상사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지금 시대는 경제 우위, 법 우위의 시대입니다. 마치 진시황 때처럼, 이런 시대는 근본적으로 반지성주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인이나 정치학자들이나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지 않으면서 정당이나 선거처럼 표면적인 문제만 가지고 정치를 하고 학문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일수록 정치란 무엇인지, 더 나은 세상이 무엇인지 근원으로 파고들어 가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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