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대중들, 역량-스피노자와 그의 동시대인들워런 몬탁 지음, 정재화 옮김/그린비·1만9000원
“철학이 단지 상상적인 실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 실존을 가져야만 한다면, 반드시 현실적인 결과를 생산해 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철학은 스스로를 무장하기 시작한다.”
워런 몬탁 미국 옥시덴탈 칼리지 교수는 알튀세르주의 국제 학술지인 <데클라주>의 편집장으로, 인정 받는 알튀세르와 스피노자의 연구자다. <신체, 대중들, 역량>은 국내에 출간되는 그의 첫 저서로, 스피노자의 유물론과 관념론의 타협 불가능한 대립과 투쟁을 복원해내며 스피노자의 해방적 기획을 되살려내는 책이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성서 속의 여러 책들은 일치하지 않으며 일관되지 않고 모순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기에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런 당혹스러운 사태에 대한 불안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성서 바깥에 교리 체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성서의 신성함은 그것이 독자의 헌신이라는 결과를 생산하는지를 통해 판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스피노자의 성서 해석학을 몬탁은 “문자의 유물론”이라 부른다.
“스피노자의 철학에 방대한 힘을 주는 것은 정확하게 해결의 부재, 끝나지 않는 논제들의 누적, 유예된 논증들 그리고 대체로 그의 논증들의 알갱이에 반하여 예기치 않게 등장하며 설명되지 않지만 잊을 수 없는 어떤 이미지들이다. 그의 철학은 언제나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쓰인 것으로 남아 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이유로 스피노자의 사유들을 그것들에 어떤 한계나 경계를 부과하지 않고 그 자체로 사유되도록 허용한다면 그것들은 우리를 거의 상상할 수 없게 어려운 해방의 길로 떠나도록 할 것이다.”
언어의 유물론은 언어가 신체들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에 주목한다. 전제정치의 비밀은 정신들을 설득하는 능력이 아니라, 군주의 이익을 위해 신체들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에 있다. 그 능력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는 일을 하기를 스스로 욕망하는 데까지 이른다. <변신이야기>에서 메데이아의 말처럼 “나는 더 나은 것을 보고 그것에 찬성하지만, 더 나쁜 일을 하고야 만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배자들이 언제나 “대중에 대한 공포”를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중들은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며 게다가 그들의 경제적 능력에서 보자면 사회생활에 필수적이다. 그들은 모든 국가가 그 위에 건설되는 심연이다.” 전적으로 불합리한 명령을 내리는 군주가 드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몬탁은 토머스 홉스와 존 로크의 저작에서 나타나는 모순들을 짚어가며, 이 모순 속에서 이 둘의 정치적 기획의 ‘부재하는 중심’인 다중의 존재를 읽어낸다. 동시대 철학자인 홉스, 로크와 달리 스피노자는 대중에게 역사의 중심적인 자리를 부여한 철학자였다.
스피노자는 로크와 홉스의 정치적 개인주의를 거부했다. 그 이유는 그가 역량과 권리를 분리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를 역량이라고 생각하면, 개체는 유의미한 분석 단위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그렇다면 중심적 사회관계는 국가와 개체가 아닌 국가와 다중 사이에 있는 것이다. 만약 사회를 자본가와 노동자처럼 ‘평등한’ 개인 간의 ‘자유로운’ 상호작용으로 보는 정치적 개인주의 또는 자유주의를 신체의 유물론과 부딪히게 한다면,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몬탁은 이를 두 가지 간명한 명제로 정리한다. “신체의 해방 없이는 정신의 해방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집합적 해방 없이는 개체의 해방은 있을 수 없다.”
“신체를 다시 도입하는 것은 의식을 잠에서 깨우고, 자신들의 행위를 결정하는 힘들을 알지 못하므로 행위들을 바꿀 수도 없으면서 그들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자신들이라며 꿈꾸고 있는 개인들을 정치적 몽유병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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