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조수경 지음/한겨레출판·1만3800원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 자살뿐이라고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썼다. 조수경의 소설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의 주인공인 서른살 청년 이서우는 그런 카뮈의 주장에 적극 동조하는 인물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살이 최고의 처방이 되기도 한다.” 중학생 시절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한 뒤 제 방에 틀어박힌 그는 자살하기 위해 삶을 견딘다.
서우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세상은 그와 같은 이들의 죽을 권리를 인정하기로 했다. 마음의 질병인 우울증을 불치의 신체 질환과 같은 병으로 받아들이고, 그 병에 걸린 이들이 안락하게 죽음을 택할 수 있도록 곳곳에 ‘센터’를 세웠다. 물론 소설 속 이야기다. 흥미로운 것은 센터가 생긴 뒤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크게 줄었다는 것. “아이러니하지만, 세상은 그만큼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어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한사코 자살하겠다는 아들에게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라며 하소연하듯 따지던 엄마가 마침내 서우의 센터 입소에 동의하게 된 것은, 센터 생활이 오히려 그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방문한 센터의 “대기실은 죽고 싶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안락사를 다룬 장편소설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를 낸 소설가 조수경. “죽음을 생각하는 건 언제나 삶을 생각하는 일”이라고 ‘작가의 말’에 썼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 달 뒤에 자살할지 여부를 선택하라는 특별위원회의 ‘처방’에 따라 입소한 센터에서 서우가 만나는 사람들과 겪는 사건들이 소설의 몸통을 이룬다. 특히 서우의 룸메이트가 된, 센터의 최장기 입소자 김태한은 일종의 가이드처럼 서우를 ‘바깥’ 세계와 사람들에게 이끄는 구실을 한다.
서우가 입소한 센터가 여느 병원이나 요양원이 아니라 자살하고자 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김태한이 안내하는 센터 구성원들과 그들이 이루는 사회는 생각보다 밝고 활기차다. 태한은 때마다 밥을 두 공기씩 먹어치우고 근사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휘파람을 불며, 가까운 동료들인 한 여사와 양지, 손 형, 작가 선생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파티를 즐긴다. 서우로서는 중학 시절 이후 처음으로 경험하는 ‘삶다운 삶’이었다. “내 방에 처박혀 있던 하루하루는 죽은 시간이었는데, 죽음과 가장 가까운 이곳에서는 1분 1초가 전부 살아 있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살려는 이들이 아니라 자살 희망자들이 모인 곳. 그들이 자살을 바라게 된 까닭은 가지각색이다. 반려견의 죽음을 겪은 뒤 “죽음이 너무 무서워서 센터에 올 수밖에 없었”다는 양지, 늙어가는 몸에서 풍기는 부패의 냄새가 싫어 더 늦기 전에 삶을 끝내기로 한 한 여사, 아내와 아이들을 호주에 보내고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가 자살로 내몰린 손 형, 창작의 불꽃이 꺼져 버린 데 절망한 작가 선생, 그리고 평생 외로움에 시달려 왔고 “적어도 이곳에서는 고독사 할 일이 없”으리라는 생각으로 입소한 오민아까지.
오민아는 센터에서도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고, 한 여사는 축제 같은 파티를 열고 가까운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웃으며 죽어 가지만, 센터에 입소한 모두가 자살을 하는 것은 아니다. 센터에서 만난 연인과 새로운 삶을 꿈꾸며 나란히 퇴소하는 이들도 있고, 위암 발병 사실을 확인한 뒤 새삼 창작 의욕이 샘솟아 글을 쓰기 위해 센터 밖으로 나가는 작가 선생 같은 이도 있다. 서우 자신, 처음 처방 받았던 한 달이 지나고는 언제든 죽을 ‘권리’를 획득한 만큼 “초조할 필요도, 성급할 필요도 없”이 결정을 미룬다. 그사이 동갑내기 연수에게 사랑을 느끼고 ‘평범한’ 삶을 향한 꿈을 품기도 한다.
안락사를 다룬 장편소설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를 낸 소설가 조수경.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서우가 끝내 자살을 택할지, 아니면 죽음에서 삶 쪽으로 극적인 유턴을 할지 확인하는 일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자. 27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작가 조수경은 “누군가에게는 죽음이 정말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안락사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첫 단편집 <모두가 부서진>에서도 영육이 두루 찢긴 이들을 대거 등장시켰던 그는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시선이 간다. 앞으로도 계속 어두운 소설을 쓰게 될 것 같다”며 “그러나 우울도 강한 에너지가 될 수 있는 만큼 그게 꼭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