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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탕누어 인터뷰②] 기계는 합리적이나, 인간은 불합리하다

등록 2019-02-28 18:49수정 2019-02-28 19:34

대만 저술가 탕누어 인터뷰 2편
“전문성이란 모르는 것 아는 능력”
“인공지능은 합리적으로 사고하나
위대한 작품은 불합리함 담아”
“정치 탄압 보다 자본 유혹이 위험”
(인터뷰 1편에서 이어짐)

-스무살 때부터 하루 6~8시간을 책 읽는 일을 20년 넘게 지속해오다가 45살이 되어서 진정한 첫 책을 쓰셨다고 했는데, 처음부터 그렇게 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나요. 이제 내 책을 써야겠다는 느낌은 어떻게 왔나요.

“제 아버지는 건축 사업을 하셨어요. 제가 학교에서 성적이 좋은 것을 보시고 제가 나중에 공대에 가기를 바라셨어요. 하지만 저는 한 번도 문학의 길을 의심해 본 적이 없어요. 대만대학교에 진학하기 전인 18살에 <삼삼집간>(三三集刊)이란 문학잡지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창간인 중 하나가 저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가기 직전이었어요. 몇 년 동안 대학교 공부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양자오(楊照)도 멤버였어요.

가장 특별한 경험은 이 길을 걸으면서 똑같이 이 길을 걷고 있는 동갑 친구라든지, 선배라든지, 나보다 어린 친구를 많이 만났다는 겁니다. 샤오양도 그 시절에 만났어요. 그들은 소설을 쉽게 썼어요. 천재 소설가들이죠. 하지만 저는 소설을 쓰는 데 계속 어려움이 있었어요. 소설을 써서 선생님께 보여드렸는데, 저에게 “넌 평소에는 재미있는 사람인 것 같은데 왜 소설을 쓰면 재미가 없을까?”라고 말씀하셨어요. 옛날에 저는 그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예를 들어서, 주톈신은 생활 속에서 본 것, 느낀 것을 모두 소설로 써낼 수 있죠. 그런데 저는 저만의 표현 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마흔살이 돼서야 <한자의 탄생>(원제는 ‘문자 이야기’)이라는 책을 썼어요. 제가 문학이란 영역에 들어가서 첫 책을 써내는 데 25년이 걸린 거죠. <마르케스의 서재에서>도 40대에 완성된 작품이에요. 제가 어리석어서 저와 잘 어울리는 표현 방식을 찾는 데 20년이 넘게 걸린 거죠.

<삼삼집간> 첫 호를 1976년 3월 3일에 발행했어요. 3, 4년 동안 <삼삼집간>을 했었죠. 28권까지 냈어요. 나중에 폐간한 후에 ‘삼삼서방’(三三書坊)이란 출판사로 바꿨어요. 당시에 대만 남자는 군대를 2년 넘게 다녀와야 해서,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이 출판사를 이어받았죠. 몇 년 뒤에 주톈신과 결혼했고요. 아주 긴 세월 동안 삼삼서방을 운영했어요.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그 시절이 제가 독서를 가장 열심히 할 때였어요.

17, 18살 때 이미 소설을 쓴 제 아내와 처제에 비해 전 모자란 것 같았어요. 계속 자기만의 표현 방법을 찾지 못했죠. 하지만 상관없어요. 많은 사람이 평생 독서만 하고 살았잖아요. (웃음) 그렇지만 저는 계속 문학의 세계에 있었어요. 중간에 다른 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하고 그랬지만, 뭔가를 계속 썼어요. 이렇게 40대까지 보냈죠. 다른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많이 놀라더군요.

첫 책인 <한자의 탄생>도 어쩌다가 쓴 책이에요. 이 책은 원래 지적인 방송프로그램으로 만들려고 했었어요. 방송용이다보니 좀 쉽게 썼죠. 두 번째 책 <마르케스의 서재에서>부터 제 목소리로 쓸 수 있었어요. 물론 20여년 동안 생각해온 것이 언제나 똑같을 순 없죠. 그래서 이런 인터뷰를 할 때 항상 긴장됩니다. 저는 제가 옛날에 쓴 글을 잘 안 봅니다. 보기가 무서워요.”

-당신은 ‘독서의 수호신’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독서의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입니다. 그 경지에 오르면 뭐가 보이는지 궁금합니다.

“제게 전문성이란 곧 세상을 보는 위치입니다. 전문성은 다른 위치에서 보는 능력이라는 거죠. 전문성은 곧 모르는 것, 확실하지 않은 것,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능력입니다. 다른 전문 영역에 있는 사람과는 같은 세상에 있어도 다른 것을 봅니다. 저와 나이 든 목수가 똑같이 한 그루 나무를 바라본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 두 사람이 보는 것은 절대 같을 수 없어요. 전문가들은 거기에 있어야 하지만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가벼운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유명한 질문인데요, 무인도에 책 3권만 가지고 갈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가지고 가겠습니까.

“통조림과 물을 가져가야지, 왜 책을 왜 가지고 가겠습니까. (웃음) 저는 샤토브리앙의 회고록,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미시마 유키오의 4부작 소설을 가져가겠습니다.

미시마의 소설은 다시 읽어도 감동을 주는 책입니다. 요즘 일본근대문학을 읽고 있는데 가와바타 야스나리 보다 미시마 유키오가 더 낫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레이엄 그린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사건의 핵심>, <코미디언>, <아바나의 남자> 등 그의 작품을 다 좋아해서 고를 수가 없습니다. 그는 노벨문학상 후보에 스무번이나 올랐는데 결국 상을 못 받았습니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쓴 영국의 첩보소설가 존 르 카레도 그레이엄 그린이 발굴한 작가죠.”

-바둑을 소재로 이야기를 많이 하시던데, 구글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합니다. 인공지능 시대에서 인간의 지식과 독서란 어떤 의미일까요.

“요즘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도 이 질문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기술이 완성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우린 모릅니다. 이것은 역사의 법칙입니다. 인류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법칙을 찾아내는데 어디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릅니다. 끊임없는 실험을 거쳐야 문제가 어디서 어떻게 생기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기가 힘듭니다. 우리는 그냥 조심하고 경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야 인류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발전할지는 모르잖아요. 인공지능 때문에 생길 문제도 있을 겁니다. 인공지능도 감각 능력과 판단 능력이 있습니다. 이건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것이에요. 하지만 인류의 감각과 판단은 복잡하고 가끔은 합리적이지 않아요. 수많은 위대한 작품들은 불합리하고 복잡합니다. 물론 나중에 인공지능에게 이것조차 가능할지 모르지만요.”

-인공지능과 증강현실(VR) 같은 기술의 발전과 독서의 미래에 대해 비관주의인지 낙관주의인지 묻고 싶습니다. ‘독자들이 기술에 적응해가는 속도도 완만하기 때문에 출판사나 작가들도 서서히 거기에 맞춰갈 수 있다. 그래서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파괴적이지 않을 것이다, 다른 배로 옮겨탈 시간이 있다’ 이렇게 봐야 할까요. 아니면 종이책과 출판사의 쇠락이 급속도로 이뤄질까요.

“기술 발전이 독서에 미치는 영향은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옛날엔 책을 사지 않고선 상대성 이론이 무엇인지 알기도 엄청 어려운 일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으로 지식을 접하기 아주 쉬워졌어요.

오히려 이제 사람들은 어떻게 지식과 어울려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언제든지 검색할 수 있기 때문에 준비할 필요가 없어졌죠. 그런데 사람들은 이 지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잖아요.

많은 사람이 제게 책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인용이 등장할 수 있는지 물어봐요. 이건 모두 제 기억에서 나온 거예요. 책을 읽고 기억에 저장해 두는 거죠. 오늘 이 질문을 받고 제가 걱정한 것은, 인공지능은 인류의 기억에 대한 침략이에요. ‘알고 싶을 때만 검색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나중에 무엇을 검색하고 찾아야 할지도 모르게 될 거예요. 왜냐하면 그 지식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죠.”

-<마르케스의 서재에서>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자유의 신봉자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중국과 긴장 관계에 있는 대만의 작가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 의미심장하게 들렸습니다. 중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제약받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중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온전히 실현되는 것이 가능할까요.

“자유란 것을 조금 완벽하게 생각하자면 저는 사람이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대만에 사는 것이 아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다른 점에 있어 자유롭지 않다는 거죠. 대만은 사실 상업적인 견제를 받고 있습니다. 자본은 부드러운 방식으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제어하고 있는 것이죠.

대만의 저술이 중국보다 넓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적인 사회에 살면서 우리도 모르게 제한을 받고 있어요. 출판사가 이런 책은 팔리지 않는다고 하면 작가들도 쓰지 않는 거죠. 하지만 중국은 13억 인구가 있기 때문에 내가 남다른 생각을 해도 누군가는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어요. 중국 책이 대만 책보다 다양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다 알다시피 곤란이 조금 있을 겁니다. 제 책 같은 경우는 중국에 가면 얇아집니다. 중국에서 책을 내면 이런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심사를 거쳐 일부 내용이 없어지는 거죠. 이럴 때 제 원칙은 하나에요. 제가 쓰지 않은 것을 추가하지는 말라는 것. 올해는 지난해보다 이런 상황이 조금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아직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정치적인 힘이 언제까지 얼마나 언론을 제어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돈은 직접적인 정치적 폭력보다 힘이 약하지 않습니다. 상업화의 시대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것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라짐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납니다. 우리가 비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상대도 없어요.

하지만 중국은 아주 뚜렷해요. 제가 들은 소식이 있는데 중국에서 책을 발행할 때 국제표준도서번호(ISBN)가 필요한데 올해부터 번호를 반으로 줄인다고 합니다. 책을 반으로 줄이는 거죠. 이렇게 함으로써 통제하고 있는 거예요. 이거는 몹시 나쁜 일이죠. 그래서 아직은 어떻게 되는지 몰라요. 계속 이렇게 갈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물음표죠. 문학은 곤란한 환경 아래에서 특별한 것을 만들어낼지도 몰라요. 저는 이렇게 바랍니다.”

-문학에선 정치와 독재정권의 억압을 증언하고 고발하는 문학 또한 중요합니다. 중국에서 이런 발언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문학의 상당히 중요하고 큰 부분이 제약되는 것이 아닐까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아까 말했던 것처럼 문학은 곤란한 상황에서 특별한 결과를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보코프의 생각은 문학이 이런 압박 하에서 상처를 받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문학을 극적으로 만들면 문학이 너무 단순해 진다고 합니다. 도구화뿐만 아니라, 너무 단순해진다는 거죠. 문학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복잡한 것입니다. 선과 악, 천사와 악마로 쉽게 나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나보코프가 탄압을 받은 러시아 문학을 말할 때 그의 마음이 복잡했을 것입니다. 그는 그런 소설은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 사람을 불쌍해하지만, 그 사람들의 작품을 평가하라고 한다면 좋은 문학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작가들이 좋은 환경에서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평가는 그 작가들에게 불공평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작가들은 존경할 만하고 측은해할만 하지만 문학적인 측면에서 엄격하게 볼 때 이런 문학은 확실히 피해를 받았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는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다시 찾아서 보지 않아요. 왜냐하면 표현이 너무 단순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라마다 정치적인 힘이 미치는 영향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때와 대만에서 이런 이야기 할 때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나라마다 사람들의 처지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솔직히 아직도 대만에서 정치적인 압박에 대해 쓰는 사람은 별로라고 생각해요. 이런 식으로 ‘나는 독립적이고 용감한 지식인’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게 솔직히 죽은 호랑이를 공격하는 것처럼 무용한 일이에요. 이런 식으로 책을 내고 화제를 일으키고 싶은 사람을 저는 무시하고 싶어요. 하지만 중국에선 아직도 이런 문제를 직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도 다른 문제가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사회마다 처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용기 있는 사람은 강한 상업적인 힘이나 강한 정치적인 힘이나 강한 인터넷의 힘에 직면할 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문학과 사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하나는 돈이고 하나는 정치적인 힘이라는 겁니다. 이 두 가지에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를 비판함으로 자기 용감함을 드러내는 것을 아주 싫어해요. 왜냐하면 이런 행동은 문학의 넓이를 좁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타이베이/글·사진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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