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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주식회사와 은행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라

등록 2019-03-08 06:00수정 2019-03-08 20:13

금융과 회사의 본질-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
김종철 지음/개마고원·2만원

주식회사와 은행이 없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김종철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과)의 <금융과 회사의 본질>은 현대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주식회사와 은행, 대의적 정치체에 놓여 있는 모순을 지적하며 근본적인 체제 변화를 말하는 책이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사회 체제의 급진적인 전환을 체계적으로 주장하는 보기 드문 국내 학자의 연구다. 이어질 후속 연구 결과와 학계 안팎의 반응이 기대된다.

김 교수는 주식회사, 금융제도, 대의제 정치제의 본질에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가 있다고 말한다. 설명하면 이렇다. 채권자는 자산의 재산권을 일정 기간 채무자에게 넘겼기 때문에 그동안은 재산권자가 아니다. 반면, 재산권자란 자산에 대해 재산권을 소유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한 사람이 채권자이면서 동시에 재산권자일 수는 없다. 하지만 주식회사, 은행, 의회 등은 이런 모순적 사고에 기반해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주주들은 평소엔 회사에 의결권과 인사권을 행사하는 재산권자로 행세하지만, 회사가 부도가 났을 때는 채권자로 돌변해 자신은 ‘단지 돈을 빌려줬을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교수는 현대 회사의 근원을 영국에서 13~17세기를 거쳐 형성된 신탁(trusts)에서 찾는다. 영국 귀족들은 왕에게 반환되어야 할 토지를 불법적으로 상속하기 위해 토지의 재산권을 제3자에게 맡기는 대신 배당금을 받는 신탁 제도를 고안해냈다. 신탁 계약은 귀족의 허락 없이는 땅을 함부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해, 귀족의 실질적 재산권도 보장해주도록 설계되었다. 17세기 후반 영국 귀족들이 왕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승리해 얻어낸 특권적인 제도가 현대 기업의 기원이었다는 말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들어선 초고층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는 아랍에미레이트의 두바이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글로벌 기업들이 들어선 초고층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는 아랍에미레이트의 두바이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이런 ‘이종교배’는 근대 은행업의 탄생 또한 가능하게 했다. 우리가 언제든 예금을 찾을 수 있는 ‘요구불 예금’은 은행이 예금주들에게 돈을 빌린 것일까, 아니면 은행이 보관해주고 있는 것일까. 대출은 반드시 상환 기간을 정하기 때문에 언제든 예금을 찾을 수 있는 대출이란 성립하지 않는다. 반대로 돈을 보관할 뿐이라면, 은행이 예금을 다른 사람에게 대출해주는 것은 횡령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 하지만 이런 모순이 가능한 것 또한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은행이 예금을 대출해줌으로써 사회 전체의 통화량을 늘리는 ‘화폐창조’가 경기의 확장과 후퇴를 거듭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김 교수는 이런 주식회사, 금융, 대의제 정치체에서 ‘이종교배’를 철폐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사회로 가는 열쇠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그는 재산권을 폐지하고 재산권을 계약권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식회사의 주주는 채권자일 뿐 재산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배당권만 주고 의결권이나 인사권과 같은 재산권적 권리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신 의결권과 인사권을 경영진과 종업원이 행사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종업원 총회에서 선거로 이사진을 선임하고 중요 사업을 승인하는 직접민주주의 의사 결정 구조가 도입되어야 한다. 또한 회사 안에 국회, 시민단체, 소비자단체, 지자체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구성한 감사 조직을 두어야 한다. 종업원들도 1인당 1억원씩 투자해 주식회사를 협동조합으로 변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기본자산제 도입이 필수적이다.

기본자산제란 “모든 성인이 한 인간으로 자율성과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자산을 평생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기본자산은 개인 채무 변제나 소비성 지출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제한을 받는다. 기본자산제는 개인, 가족 간에 이뤄지던 상속제를 폐지하고 사회적 상속을 시행함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상속을 극히 제한해 부모나 배우자로부터는 기본자산의 네 배까지만 증여 또는 상속받을 수 있게 하거나, 아니면 기본자산 이하로만 받을 수 있는 두 가지 방안을 제안한다.

김종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개마고원 제공
김종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개마고원 제공
두 번째 큰 전환은 화폐경제에서 신용경제로 전환이다. 그는 인류사에서 화폐가 교환수단으로 쓰이지 않는 형태의 신용경제가 화폐경제 보다 더 오래 존재해왔다고 말한다. 그는 신용경제로 전환한다면, 은행과 일부 투자자들이 누리는 재산권적 특권을 해체해 서로 공평한 상태에서 거래하는 공정한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신용경제와 직접민주주의 정치체의 구체적인 모습은 앞으로 이어질 연구에서 밝히겠다고 예고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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