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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진에 찍힌 인간의 과학적이고 기괴한 열정

등록 2019-03-15 06:00수정 2019-03-15 20:10

박상우의 포톨로지-베르티옹에서 마레까지 19세기 과학사진사
박상우 지음/문학동네·1만6000원

‘범죄자를 식별할 수 있는 정확한 방법은 무엇인가’, ‘히스테리를 보이는 인간은 어떤 얼굴과 행동을 하는가’, ‘범죄를 저지를 형태의 얼굴은 무엇인가’, ‘우월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의 차이는 무엇인가’…. 19세기 후반 과학(또는 유사과학)과 시각의 결합을 추구한 이들의 사진 활용은 역사상 가장 놀랍고도 기괴한 아카이브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이 아카이브는 철저한 무관심 속에 지난 한 세기 동안 아카이브를 생산한 기관의 캐비닛에 파묻혀 있었다.

이 사진 아카이브들이 열렬한 관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은 40여년 전이었다. 여기엔 미셸 푸코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푸코는 권력이 어떻게 타자에 대한 지식을 수집·분류·구축했고, 그 지식으로 개인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했는지를 규명했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박상우도 이런 관점으로 아카이브에 다가갔지만, 곧 아카이브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푸코의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진정으로 고민한 문제는 ‘과학적 연구방법’이었던 것이다.

박상우 서울대 미학과 조교수가 쓴 <박상우의 포톨로지>는 그동안 예술사진의 그늘에 가려 사진의 역사에서 소홀히 취급돼왔던 19세기 서구의 과학사진(또는 유사과학사진)을 연구대상으로 다룬다. 지은이는 타자인 인간의 신체를 광범위하게 사진으로 기록한 19세기 후반의 서구과학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 경찰청 신원 감식부 반장이었던 알퐁스 베르티옹은 ‘베르티오나주’라는 ‘과학적’ 범죄자 식별방법을 고안해낸 인물이다. 베르티옹이 자신이 개발한 범죄자 사진 형식으로 자신을 찍은 모습. 문학동네 제공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 경찰청 신원 감식부 반장이었던 알퐁스 베르티옹은 ‘베르티오나주’라는 ‘과학적’ 범죄자 식별방법을 고안해낸 인물이다. 베르티옹이 자신이 개발한 범죄자 사진 형식으로 자신을 찍은 모습. 문학동네 제공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 경찰청의 신원 감식부 반장 알퐁스 베르티옹은 범죄 수사에 일대 혁신을 이룬 인물이었다. 다양한 학자를 배출한 명문가 출신의 베르티옹은 인류학에서 사용하던 인체 측정과 정면과 측면 사진, 글쓰기 방법을 범죄 수사에 도입했다. 그의 수사기법은 ‘베르티오나주’로 불리면서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란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범죄사진은 만만치 않은 난관에 봉착하는데, 범인이 사진 속 인물과 동일인임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닮은 정도가 아니라 같다는 보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장의 사진이 찍은 대상이 같은 사람이라는 걸 절대적으로 증명하기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베르티옹의 범죄사진은 닮음, 동일성, 식별이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제기하며, “이 지점에서 이미 사진학, 범죄수사학을 넘어 과학철학의 땅으로 진입”한다.

경찰이 거리에서 범죄자 검거를 하기 위해 만든 사진첩. 1906년.
경찰이 거리에서 범죄자 검거를 하기 위해 만든 사진첩. 1906년.
영화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에티엔쥘 마레는 콜레주드프랑스 생리학 교수였다. 마레는 인간과 동물이 보이는 움직임을 “생명의 언어”라고 보고 이를 분석하는 것을 과업으로 삼았다. 그는 부정확한 인간의 눈과 손의 개입 없이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방법을 찾길 열망했고, 사진에 눈을 돌리게 된다. 오랜 시도 끝에 그는 연속 동작을 촬영하는 다양한 형태의 ‘크로노포토그라피’를 발명했다. 특히 그는 당시 코닥사에서 출시된 휘는 감광판을 촬영기와 영사기에 결합해, 1889년 최초로 자신의 손을 폈다 쥐었다 하는 첫 영화를 제작하는 데 성공한다. 이는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최초의 영화보다 6년 앞선 것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영화의 발명에는 오락이나 예술이 아닌 의학과 생리학 같은 학술 분야의 노력이 결정적이었던 것이다.

이 책 속에는 포톨로지(photology), 즉 사진학을 엄정한 학문으로 정립하려는 열정이 가득하다. “포톨로지가 진정한 의미의 학문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무엇보다 사진 자체에 대한 질문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 (…) 오늘날 팽창할 대로 한껏 팽창한 사진의 우주 속에서 우리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지훈 기자

일본의 식민지 통치 시절 조선인 인체를 측정한 사진. 함경남도 덕원 남자 측면 체격 측정. 1911년.
일본의 식민지 통치 시절 조선인 인체를 측정한 사진. 함경남도 덕원 남자 측면 체격 측정. 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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