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조던 피터슨·스피븐 프라이·마이클 에릭 다이슨·미셸 골드버그 지음조은경 옮김, 임명묵 논평/프시케의숲·1만3500원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은 인종·성·성적 지향·종교 등의 차이를 구실로 차별적이고 편견이 담긴 언어를 쓰지 말자는 신념이나 정치·사회 운동을 뜻한다. 흔히 줄여서 ‘피시’(PC)라고 하는데, 소수자를 차별·배제하지 말자는 데서 소수자 우대 정책 등으로 나아갔다. 미국에서 ‘적극적 평등 실현 조처’(Affirmative action)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반발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보수 진영은 ‘백인 역차별’을 주장하며 이를 되돌리려 애쓰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은 진보 엘리트들의 젠체하는 태도일 뿐이라는 냉소 어린 비난도 받는다. 한국에서도 여성 차별, 성소수자, 난민, 이주노동자 문제 등을 계기로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목소리와 함께 이에 대한 공격도 나타났다. ‘피시충’이라는 부정적 말이 대표적이다.
2018년 5월18일 캐나다 토론토의 로이 톰슨 홀에서 열린 멍크 디베이트에서 사회자(가운데)를 가운데 두고 ‘정치적 올바름은 진보인가’를 놓고 찬반 진영이 양쪽으로 나뉘어 토론을 하고 있다. 멍크 디베이트 누리집 갈무리
정치적 올바름은 소수자 집단을 차별·배제하는 지배적 권력에 맞서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자유롭고 열린 토론을 억누르며 불필요하게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것인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는 이런 논쟁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2018년 5월18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멍크 디베이트’ 내용을 담았다. 멍크 디베이트는 ‘금광 재벌’ 피터 멍크 부부가 설립한 자선단체 오리아재단의 프로젝트로, 반년마다 열려 뜨거운 현안을 두고 토론한다. 지난해 봄에는 ‘정치적 올바름은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찬반 양쪽에서 두 명씩 나와 논쟁을 벌였다. 부정적인 쪽에는 토론토대 심리학과 교수인 조던 피터슨(56)과 영국의 작가이자 배우로 에미상을 받은 스티븐 프라이(61), 긍정하는 쪽에는 미국 조지타운대 사회학과 교수이자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이클 에릭 다이슨(60)과 <뉴욕타임스>의 여성 칼럼니스트인 미셸 골드버그(44)가 나섰다.
2016년 9월 캐나다의 의회가 트랜스젠더 등의 성 정체성 표현과 성 소수자가 모욕을 느낄 수 있는 발언을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자, 피터슨은 이 법안과 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큰 주목을 받았다. 피터슨은 정치적 올바름이 “좌파의 집단주의 이념”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올바름은 인종과 성 등 ‘집단’에 근거한 ‘정체성 정치’와도 관계가 있는데, 서구 문명의 산물인 ‘개인주의’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급진 좌파 유형의 집단주의자에게 표현의 자유는 정치적 올바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신이 하는 말, 실행하는 모든 행동은 당신이 속한 집단을 대표해 벌이는 파워 게임이 됩니다.” 집단주의 시각을 가지면 개인의 표현의 자유는 “케케묵은 생각이며 공상일 뿐”이 된다는 것이다. 피터슨은 극좌파가 ‘기회의 평등’을 넘어 ‘결과의 평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 다이슨은 ‘누가 집단을 발명해 냈느냐’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종, 젠더, 집단 사고 (…) 그런 이름이 붙은 집단들이 그 용어들을 만들어낸 게 아닙니다. (…) 정체성을 알릴 필요가 없는 집단이 시작했죠.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 당신이 누구인지 알릴 필요가 없습니다.” 정체성은 유색인종, 여성, 성전환자 등에게 “떠넘겨”졌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서 대우받기 위해” 싸운다고 주장한다. “당신에게 말하는 것은 바로 ‘우리는 개인으로 허용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백인 경찰이 흑인 소년을 사살한 사건 등을 들며, 이런 일이 ‘개인으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한다.
골드버그는 “차별과 배타성을 바로잡기 위해 공통된 정체성을 근거로 사람들이 모이는 게 왜 치명적이죠?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모든 것, 가장 좋은 면 아닌가요? 진정한 진보는 바로 그런 거죠”라고 주장한다. 그는 본래 “미국 정치는 개인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집단들이 서로 각축을 벌이는 투쟁의 장”이었다고 말한다. 사회를 개인의 구성이라고만 보면 여성, 인종 등의 사회적 문제를 다룰 수 없다고 짚는다.
프라이가 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하는 쪽에 선 게 눈길을 끈다. 그는 동성결혼을 한 사람으로 자신을 “온건 좌파, 물렁한 좌파”라고 한다. 그 또한 인종 차별, 여성·동성애자·성전환자·외국인 혐오, 편견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문제는 ‘그런 중요한 목표를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입니다. 제가 궁극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하는 이유는 제가 일생 동안 혐오하고 반대해왔던 것들이 정치적 올바름에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조의 개입, 경건한 체하는 태도, 독선, 이단 사냥, 비난, 수치심 주기, 증거 없이 하는 확언, 공격, 마녀사냥식 심문, 검열 등이 결합되어 있죠. (…) 제가 정치적 올바름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프라이는 정치적 올바름이 “우파 신병들을 모집하는 하사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역효과만 부르지 않느냐는 얘기다. “좌파가 저지르는 커다란 오류 중 하나가 뭔 줄 아세요? 적의 명석함을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한다. 소수 집단들을 대놓고 공격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동안 눌러놓았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이 표출됐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골드버그도 어떤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해 그것을 공개적으로 표명할 기회를 주지 않는 ‘노 플랫포밍’ 등에 비판적이다. 그러면서도 과거에도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공포감’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사실을 지적한다. “사람들이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갑자기 더 이상 토착민을 ‘인디언’이라고 부를 수 없고 (…) 함께 일하는 성인 여성을 ‘아가씨’라고 불러서도 안 되었죠. 정말이지 목에 뭐라도 콱 박힌 것 같았겠지요. 동성애자를 빗댄 농담도 할 수 없다니! (…) 지금 우리는 그런 종류의 언어를 사용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죠. 그런 것을 전혀 억압으로 느끼지도 않고요. (…) 오늘날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인이 누린 특권을 두고 논쟁하는 대목에서 피터슨과 다이슨은 거친 말을 주고 받으며 격앙되기도 한다. 당시 주최 쪽은 3천명의 방청객을 상대로 토론 전과 토론 후로 나눠 투표를 실시했다. 찬반 숫자에 변화는 있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정치적 올바름은 한국 사회에서도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주제다. 정치적 올바름이 결핍돼 있다는 주장이 있고 지나치다는 주장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든 그래도 물음은 남는다. ‘무엇이 정치적으로 올바른가?’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