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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작품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당선작 없음’ 고심끝 결론

등록 2019-05-26 18:20수정 2019-05-26 20:19

[제24회 한겨레문학상 심사평]

216편 응모, 본상에 8편 올랐지만
새롭거나 압도적 출중함 발견 못해
제24회 한겨레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수동 한겨레출판 회의실에서 본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편혜영 윤이형 서영인 강영숙 장은정 오혜진 김유진 신샛별씨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제24회 한겨레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수동 한겨레출판 회의실에서 본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편혜영 윤이형 서영인 강영숙 장은정 오혜진 김유진 신샛별씨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제24회 한겨레문학상에 응모된 작품은 216편이었다. 예심에서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거나 범죄 수사 과정을 따르는 작품이 다수 보였다. 지난 십여년간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음모론적 시각으로 재구성하는 서사나, 페미니즘과 퀴어에 대한 동시대적 관심이 반영돼 있는 서사도 주목을 받았다. 부모에게 학대받은 경험을 회고하면서 상처의 극복 또는 치유를 향해 자신의 삶을 조정해 나가는 남성 인물과 자신의 생애를 다시 쓰면서 젠더 차별적 사회구조를 고발하는 여성 인물의 등장도 인상적이었다. 개인적 호기심에 치우쳐 소재에 대한 보편적 접근 통로를 마련하는 데 소홀하거나 폭력, 살인, 사체훼손 및 유기, 강간과 같은 참혹한 장면들을 삽입해야 하는 서사 내적 논리가 부재한 작품들이 자주 보이는 것은 안타까웠다. 여러 인물이 서로 갈등하면서 특정한 사건을 통과해 나가는 이야기는 소수였다. 이미지와 상징, 소재와 미문을 내세운 작품들에서 장편소설 특유의 리듬과 호흡을 만나보기는 어려웠다.

본심에 오른 8편 중 충격적으로 새롭거나 압도적으로 출중한 작품은 없었다. 각각 장단점이 뚜렷이 보였고, 심사위원들은 오랜 시간 토론을 거쳐 작은 단점과 큰 장점을 가진 작품을 가려내야 했다. <당신의 인생이 마음에 드십니까>는 낯선 정동(情動)을 전달하면서 세련된 미장센을 제시하고 있어 흥미롭다. 그러나 회고 형식으로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소개하고 ‘엄마’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결말은 이야기를 봉합하는 너무 쉬운 선택으로 보였다. <카라바 공작의 치부책>의 경우,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 간의 다툼 현장을 속도감 있는 문체로 스케치하는 전반부의 매력과 이야기를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작가의 필력에는 쉽게 동의가 되지만, 누아르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절정 부근과 ‘최자영’의 배신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평이 많았다.

<꽃을 그려요>, <앵무조개의 방>, <17층, 천장이 높은 식당>을 두고 긴 논의가 이어졌다. <꽃을 그려요>는 완성도가 높다. 치밀한 공간 묘사로 서사의 분위기를 만들고, 인물들의 불행을 과장하지 않으면서 감정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다만 이 소설이 사용하는 어휘, 문장, 이미지, 상징체계, 상상력이 익숙한 만큼 낡은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고, 전반부는 문장의 속도가 과하게 느려 가독성이 떨어졌다.

<앵무조개의 방>과 <17층, 천장이 높은 식당>은 시의적 메시지를 품고 있어 돋보였다. 중년의 퀴어와 그 가족의 이야기인 <앵무조개의 방>은 가볍고 탄성 좋은 문장들로 눈길을 끈다. 그러나 ‘타인과의 쾌적한 관계’라는 당위적 메시지를 반복하느라 인물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긴장과 갈등의 심층을 들여다보지 않았고, 그것이 이야기 전부를 허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버렸다.

사내 성폭행 사건을 해결하는 조직의 논리와 그 논리와 싸우는 개인을 그리는 <17층, 천장이 높은 식당>은 생계가 걸린 노동 현장에서 윤리적 난제에 직면한 여성의 복잡한 심경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렇지만 여성의 고통을 설명하기 위해 주변 인물들을 단순화·도구화하거나 성폭행으로 임신됐을지 모를 아이를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이상심리가 등장하는 대목은 무리해 보인다는 지적이 많았다.

심사위원들은 장점과 단점이 고루 분포돼 있는 작품들을 앞에 두고 고심 끝에 심사 결과를 ‘당선작 없음’으로 하는 데 합의했다. 이 ‘선택’을 하기까지 모두가 꽤 큰 용기를 내야 했는데, 응모작들에서 엿본 갈망과 노력을 쉽게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문학적으로 탁월하게 가공된, 시의적절한 문제제기’를 발견하고 싶다는 바람을 재확인하면서, 내년 한겨레문학상에 더 큰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당선작 없음’이라는 ‘선택’이 더 나은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그런 작품을 구상하고 계실 분들을 향한 다정한 초대로 읽히면 좋겠다.

제24회 한겨레문학상 심사위원회(강영숙 김유진 서영인 신샛별 오혜진 윤이형 장은정 편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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