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의 마음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최재경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2만3000원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최재경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2만3000원
한곳에 먹이를 숨기는 척하다
다른 곳에 숨기는 고단수
새 중에서 가장 지능 높아
20년간 관찰·연구 기록
<동물들의 겨울나기>(2003), <숲에 사는 즐거움>(2005)이라는 책들을 통해, 자연을 주제로 한 경쾌한 사색과 과학해설의 저술가로 국내에 알려진 미국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65·버몬트주립대 교수)의 새 책 <까마귀의 마음>이 우리말로 출간됐다. 북극지역과 유럽·아메리카 북부에 주로 사는 도래까마귀 종들의 기이한 행동과 높은 지능, 심지어 그들의 마음마저 읽어보자는 그의 오랜 관찰과 실험의 결과물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동물행동 관찰기라고 말하는 것으론 뭔가 부족하다. 사실 여기엔 동물의 마음에 다가서려는 생물학자이자 ‘도래까마귀 아빠’의 교감이 듬뿍 담겨 있다. 그에게 도래까마귀는 인간과 함께 살 줄 아는,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친구’나 ‘자식’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까마귀들엔 골리앗, 퍼즈, 하우디, 야곱 같은 이름들이 붙고, 그들의 버릇과 개성, 생활이 세세히 기록된 건 바로 이렇게 교감하는 관찰자의 시선 덕분이다.
까마귀는 이 책 한 권의 완전한 주인공이 되기에 앞서 우선 독자들한테 해명해야 할 게 있다. 동물의 지능과 마음이라면 침팬지나 돌고래, 개, 고양이가 더 제격 아닌가? 뇌 크기도 보잘 것 없고 ‘불길한 새’이기조차 한 까마귀가 그런 축에 낄 만한 ‘주제’는 되는가?
사실 이 책은 까마귀에 관한 이런 뿌리깊은 오해를 풀어주는 책이기도 하다. 까마귀는 새 가운데 가장 지능이 높다. 도래까마귀는 그 중에서도 가장 똑똑한 새, 인간과 가장 비슷한 생태를 지닌 새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상황에 맞춰 다른 행동을 하는 행동의 자율성은 까마귀도 어떤 마음의 세계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을 암시할 만하다. 또 이들의 기이한 행동은 일찌감치 동물학자들 사이에서 학문적 관심거리였다. 눈밭에서 미끄럼 타기, 공기 목욕, 거꾸로 날기, 물건을 이용해 갈매기를 쫒아내기, 더운 날 둥지 바닥에 구멍 내기 등등….
지은이 하인리히는 애초 벌레들의 행동 진화를 연구하다가 1980년대부터 도래까마귀의 매력에 다시 끌려 이 새의 관찰·연구를 계속해왔다. 네 마리의 도래까마귀 새끼들에겐 지극정성을 기울이는 아빠 노릇을 하며, 이들과 사람의 원시적 관계를 살피려 북극지역을 탐사하기도 했다. 여러 행동 실험들을 고안하고 시행하기도 했다. 또 도래까마귀와 함께 사는 사람들의 경험담, 그리고 과학 연구논문 자료들을 모으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 책에 정리된 도래까마귀의 지능 또는 통찰력의 사례를 몇 가지 훑어보자.
이들은 한 곳에 먹이를 숨기는 척하다 실제로는 다른 곳에 먹이를 숨기는 ‘고단수’의 은닉과 속임수를 쓸 줄 안다. 또 전혀 학습하거나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상황에서 적절하게 ‘잔머리’를 쓸 줄도 안다. 예컨대 고기를 매단 긴 줄을 부리로 끌어당겨 고기를 먹는 솜씨는 도래까마귀의 높은 지능을 보여주는 ‘중요한 실험증거’로서 제시된다. 선천적 유전자나 후천적 학습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을 인지하는 통찰력인 게 분명하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또 도래까마귀들은 서로 개별적으로 인식할 줄 안다. 게다가 새끼를 낳지 않은 어린 도래까마귀들은 새끼를 낳아 기르는 어른 도래까마귀들에 맞서 연합을 형성하기도 하며, 반면에 어른 도래까마귀들은 짝끼리 협력하거나 다른 어른 도래까마귀 쌍들과 연합하는 높은 사회성을 보여준다. 고기를 얻어먹기 위해 위험한 육식동물들과 공조하며 살기도 한다.
도래까마귀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마음을 다 증명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과 다른 모든 동물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간극 또는 단절은 궁극적으로 의식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문화의 문제라고 본다”라는, 오랜 연구 끝에 얻은 지은이의 통찰은 곱씹어볼 만하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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