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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지난여름 파리에서 ‘고흐’ 영화 보고 ‘시’가 샘솟았죠”

등록 2019-07-01 19:29수정 2019-07-01 19:55

[짬] 두번째 시집 낸 박인식 작가

박인식 작가는 1995년부터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글을 쓴다. “제가 아마 한국인 중 파리 골목을 가장 많이 다녔을 겁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박인식 작가는 1995년부터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글을 쓴다. “제가 아마 한국인 중 파리 골목을 가장 많이 다녔을 겁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러빙 고흐 버닝 고흐>(여름언덕). 우리말로 하면 ‘사랑하는 고흐 불타는 고흐’ 정도 되겠다. 프랑스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글을 쓰는 박인식 작가의 두번 째 시집이다. 1집 <겨울모기> 이후 2년 만이다. 지난여름 파리에서 화가 고흐의 죽음을 다룬 영화 <러빙 빈센트>를 보고 한달 새 썼단다. 영화를 보며 고흐 작품 <가셰 박사의 초상>을 제 주검과 함께 화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긴 한 일본인의 고흐 사랑이 떠올라 먹먹했단다. 이 일본인은 죽기 3년 전인 1990년 경매에서 이 그림을 약 천억 원에 샀다. 작가는 표제작을 이렇게 끝냈다. “사랑이 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은/ 예술혼처럼/ 불태우는 일/ 불타오르는 일”. 지난 25일 서울 서촌의 한 카페에서 작가를 만났다.

“시는 나를 써서 나를 만든 것이고 소설은 남을 써서 남을 만든 것이죠.” 그의 시를 보니 철들면서부터 예술과 술 그리고 사랑에 열정을 쏟아 ‘예·술·사’ 전공이라는 작가의 모습이 뚜렷하다. “예술혼이 뭔가를 묻는 영화를 보고 바로 예술과 예술혼에 대한 시들이 몰려왔어요.”

고흐를 보며 예술혼을 생각했다지만 많은 이들은 그의 삶을 보며 예술혼에 대한 상념이 길어질 듯하다. 그는 1995년부터 한해를 반으로 나눠 서울과 파리에서 산다. 1981년 처음 파리에 간 뒤 이 도시와 사랑에 빠져 14년 뒤 아예 가족과 함께 이주했다. 2002년 밥벌이를 위해 서울 안국동에 와인바(로마네 꽁티)를 연 뒤에도 여름만 되면 파리에 간다. 그 도시에선 몽마르트르 언덕 근처 집에서 글만 쓴단다. 그는 1985년 첫 장편소설 <만년설>을 낸 뒤로 주로 산을 화두로 여러 장르의 글을 쓰고 책을 냈다.

박인식 작가가 최근 펴낸 시집 표지.
박인식 작가가 최근 펴낸 시집 표지.
왜 파리인가? “저와 같은 ‘예술사’ 전공자가 너무 많아요.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오로지 사랑으로 산다고 했죠.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경호원을 따돌리고 엘리제 궁을 빠져나와 스쿠터를 몰고 애인을 만나러 가기도 했죠. 프랑스인들은 그런 행동을 탓하지 않아요. 자신들도 그러니까요. 사랑의 시간이 전 세계적으로 프랑스가 가장 많을 겁니다.” 그는 만 33살인 1984년 결혼해 올해가 결혼 35주년이다. “제가 말하는 사랑은 이성과의 사랑만은 아닙니다. 사랑은 나를 주는 것이죠. 그 대상이 바위 나무라도 전 열렬히 사랑하고 그 사랑을 느끼려고 해요. 그들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내 나름의 언어가 시이죠. 시가 될 때 대화와 교감이 가능해요.”

2집에는 시 ‘오무자’가 있다. “IT 세상의 주거부정이자 신원불명/ 오무자(五無子)/ 어느 날 평행세계로 망명 떠났다네”. 오무자는 핸드폰 컴퓨터 운전면허 티브이 신용카드가 없는 시인 자신을 말한다. 자신을 정의하는 데 ‘오무자’가 가장 중요하단다. “세상에 대한 반항이죠. 그 다섯을 받아들이면 나만의 목소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만의 목소리? “원시성이죠. (프랑스 화가) 고갱이 찾으려 했던 것이죠. 태초 인간들의 원시성, 야성이죠. 디지털화를 받아들이면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가 원작을 쓴 드라마가 1997년 <문화방송> 전파를 탔을 때도 티브이를 보지 않았단다. “티브이를 5분 이상 보면 전자파가 저를 찌르는 게 느껴져요. 아마 원시인들이 지금 세상에 오면 그런 느낌을 받을 겁니다. 전자파가 내 몸과 정신을 공격한다는 게 느껴져요. 전화 통화도 길어지면 귀가 아파요.”

‘오무자’는 파리 사랑과도 맥이 닿는단다. “디지털에 가장 저항하는 민족이 프랑스이죠. ‘티브이 없애기’ 사회 운동을 하는 나라입니다. 티브이에서 책 광고도 못 하게 합니다. 베스트셀러를 경계해서죠. 많은 사람이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생각을 하는 걸 끔찍하게 여기죠.”

연세대 물리학과에서 석사까지 마친 그는 80년대에 산 전문잡지 기자를 했고 <사람과 산>을 창간해 이끌기도 했다. 그때부터 지금껏 ‘인사동의 터줏대감’이다. “2002년 와인바를 열었을 때 저한테 술빚을 갚으려고 가게를 찾은 이들이 천명은 됐죠. 제가 한국인 가운데 가장 다양하게 와인을 마셨을 겁니다. 지금도 술자리는 끝까지 가죠. 통음합니다.” 시를 보면 시인의 주량이 느껴진단다. “취향의 문제이지만 술을 하지 않는 작가들의 글에서는 맛이 나지 않아요.” 가장 맛난 시는? “황지우는 시도 인간도 좋아요. 김수영의 시를 가장 좋아해요. 현실 모순에 일대일로 부딪히는 과정에서 절로 빚어지는 언어이죠. 그 어떤 시적 테크닉으로 만들어내는 은유보다 더 강렬한 직유입니다.”

예술사 전공의 뿌리는 중1로 내려간단다. “중학교에 올라 가 어떤 일로 인간을 의심하게 되었죠. 그때부터 기존 전통과 관습에 저항했어요. 좋아했던 박기정 만화 <불발탄>이 나오는 날에는 학교를 빼먹고 만화방에 갔어요. 만화를 보지 말라는 선생님에게 제가 <불발탄> 만화를 들고 교무실로 찾아가 만화를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라고 대들기도 했죠. 경북중에 전체 2등으로 입학해 한달 만에 꼴등에서 두번 째가 됐어요.”

‘러빙 빈센트’ 감동으로 한달새 수십편
예술혼 다룬 ‘러빙 고흐 버닝 고흐’ 내
“사랑하는 것들과 교감하는 언어가 시”

핸드폰·컴퓨터·운전·TV·카드 없이
25년째 일년 절반 파리 은둔하는 이유
“나 같은 ‘예술사’ 전공자·‘오무자’ 많아”

그 시절 가장 좋아하는 화가 고갱도 만났단다. “저한테 저항의 길을 제시한 이가 고갱이죠. 고갱을 얼마나 좋아했냐면, 중3 때 고갱처럼 살려고 학교에서 별난 아이들 6명을 포섭해 6개월 합숙훈련을 했어요. 제가 친구들을 세뇌했죠. 고갱이 산 타히티 부근 섬으로 밀항해 태평천국을 만들려고 했어요. 친구 한 명의 밀고로 부산항에서 경찰에 체포됐죠.”

미술비평가인 그는 고갱과 고흐를 이렇게 논했다. “인간 정신의 원시성과 순수성은 고갱이 훨씬 더 가지고 있어요. 지금도 저는 고갱이 고흐보다 화가로서 한 수 위라고 생각해요. 고흐는 감정적 열정의 화가죠. 온도가 훨씬 높아요. 반면 고갱은 차갑죠. 차가우면서 모순덩어리죠.”

그는 대학 시절부터 전문산악인이었다. 지금도 서울에 있을 때는 매일 두 시간 그만의 루트로 집 근처 인왕산을 오른다. 여기엔 안전한 암벽 타기도 포함된단다. 가장 행복했던 산행을 묻는 말에 그는 “매일 가는 인왕산 등반이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산에 갈 때마다 늘 내 나름의 기도를 올립니다. 주변 사람들 아프지 않고 또 사회의 약자나 소수자들의 치유를 바라죠. 나무나 바위를 보며 내 나름의 대화를 해요. 그 시간이 좋아요. 나무나 바위는 날마다 다르게 보입니다. 그 변화를 느끼고 싶고 그 변화를 나무나 바위에 말해주고 싶어요.”

그는 한국인의 영혼에 산의 신령이 흐른다고 믿는다. “우리처럼 전 국토의 70%가 산인 나라는 매우 드물어요. 스위스도 산이 많지만 다 크죠. 우리처럼 골짜기가 많지 않아요. 스위스는 산속에 들어 가 살 수 없지만 한국은 산속이 살기 제일 좋아요. 서울도 산속이죠. 한국은 또 산과 물이 한 몸으로 붙어 있어요. 지형이 그래요. 산은 산이 가진 영혼의 그릇이자 형식이고, 물은 산의 영혼과 정신의 내용입니다. 그 속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한국인에게는 산의 영혼이 삶을 통해 내재화되어 있어요.”

박인식 작가는 평민의 아버지이다. 지인들 사이에 ‘박구라’로 불리기도 하는 작가는 아들 평민의 이름을 두고 나직하게 말했다. “제가 아들 이름은 좀 욕심을 부렸어요. 시민도 아니고 대중도 아니고 평민이라고 했죠.” 그의 아들은 85년생이다. 프랑스에서 대학을 나와 지금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이름이 특이해 놀림을 당하는 아이들이 크게 되더라고요. 또 아들이 평민이면 저도 평민의 아버지가 되잖아요. 대통령보다 좋은 거죠. 민의 한자는 가을하늘 민(旻)입니다. 날일 밑에 글월 문이죠. 한자가 아름다워요. 가을하늘을 닮은 사람이 되길 바랐죠.”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고 이희호 여사 조카를 만날 일이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그러시더군요. 제 아들 이름이 평민이니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면 자리를 달라고요. 제가 평민이가 평민당 창당(87년)보다 먼저라고 하니 어머니 답이 걸작이었어요. 대통령은 그런 거 안 따진다고요. 하하.” 어머니 말을 전했냐고 하자 그럴 리가 있냐며 웃었다. 파리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딸 이름은 지민이다. “요즘 지민이란 이름도 핫하다면서요.”               강성만 선임기자
박인식 작가는 평민의 아버지이다. 지인들 사이에 ‘박구라’로 불리기도 하는 작가는 아들 평민의 이름을 두고 나직하게 말했다. “제가 아들 이름은 좀 욕심을 부렸어요. 시민도 아니고 대중도 아니고 평민이라고 했죠.” 그의 아들은 85년생이다. 프랑스에서 대학을 나와 지금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이름이 특이해 놀림을 당하는 아이들이 크게 되더라고요. 또 아들이 평민이면 저도 평민의 아버지가 되잖아요. 대통령보다 좋은 거죠. 민의 한자는 가을하늘 민(旻)입니다. 날일 밑에 글월 문이죠. 한자가 아름다워요. 가을하늘을 닮은 사람이 되길 바랐죠.”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고 이희호 여사 조카를 만날 일이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그러시더군요. 제 아들 이름이 평민이니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면 자리를 달라고요. 제가 평민이가 평민당 창당(87년)보다 먼저라고 하니 어머니 답이 걸작이었어요. 대통령은 그런 거 안 따진다고요. 하하.” 어머니 말을 전했냐고 하자 그럴 리가 있냐며 웃었다. 파리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딸 이름은 지민이다. “요즘 지민이란 이름도 핫하다면서요.” 강성만 선임기자

필생의 목표는 산을 주제로 한 10권짜리 대하소설이란다. 이번 시집을 내느라 3권 작업이 늦춰졌다고 했다. 컴퓨터가 없으면 집필 자료는 어떻게 찾느냐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자료가 필요한 글은 안 써야죠 하하. 파리 집에 스무 권 이상 되는 한국어 브리태니커 사전이 있어요. 작가에게 50% 할인을 해줄 때 사서 파리로 가지고 갔죠. 여행할 때도 숙소 예약을 하지 않고 바로 갑니다. 몇 년 전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는 아침까지 12시간 동안 방을 구하지 못했죠.”

그는 만화가 박기정 팬클럽 ‘오동추’의 리더이기도 하다. 만화가 박재동, 가수 최백호 등도 회원이다. “일년에 두번 정도 박기정 선생과 회원들이 만납니다. 박재동, 최백호도 박 선생 만화를 보고 만화가나 가수의 꿈을 키웠더군요.”

그한테 인생의 책인 <불발탄>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단다. “한 소년이 공항에서 구두를 닦고 있었어요. 소년은 파리행 비행기가 뜨면 늘 그쪽으로 종이비행기를 날립니다. 번번이 맥없이 떨어져 불발탄이 되죠. 소년은 언젠가 파리로 가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웁니다.”

프랑스어는 조금 되느냐고 묻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전혀 못 한다”고 했다. “프랑스어를 공부할 시간에 한국말을 더 공부하겠다는 생각이죠. 프랑스 친구들도 많지만 사실 말은 소통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해요. 술이나 신체적 접촉, 영화 보기와 같은 방법으로 충분히 소통이 가능해요.”

그는 인터뷰 이틀 뒤 파리 20구에 있는 집으로 떠났다. 9월 말에 돌아온단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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