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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랑을 시작하는 나이 열한 살

등록 2019-07-05 06:00수정 2019-07-05 19:49

[책과 생각]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사랑이 훅!
진형민 지음, 최민호 그림/창비(2018)

어린이문학이 다루기 어려운 주제가 사랑이지만 도처에서 사랑의 서사는 넘쳐난다. 십대들이 사랑을 시작하는 나이도 빨라졌다. 부모의 성적 압박을 피해 십대들이 친밀감을 나눌 이성친구가 절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진형민의 <사랑이 훅!>은 성격이 다른 세 명의 여자 아이들을 통해 십대의 사랑을 보여주는 동화다. 초등학교 5학년인 엄선정, 신지은, 박담은 지금 자신에게 다가온, 하지만 차마 말하기 어렵고 이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리둥절한 첫사랑의 모습을 담백하게 펼쳐낸다. 동화 속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라면 흥미롭게 읽을 만한 책이다.

5학년 2학기를 시작하며 담임은 아이들에게 새 학기의 다짐을 발표해 보라고 말한다. 한데 농구를 잘하지만 공부에 관심이 없는 이종수의 발표로 학급이 발칵 뒤집혀 버렸다. 종수가 “2학기 때는 여자 친구의 말을 잘 듣겠습니다”라고 말한 때문이다. 담임은 잘못 들었나 싶어 재차 묻고 아이들은 누가 종수의 여자 친구이냐에 관심이 쏠린다. 종수가 반장이자 공부 잘하는 엄선정과 사귄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아이들은 더 놀란다. 여자애들은 엄선정이 아깝다고, 말도 안 된다고 혀를 찼다. 남자애들은 “이종수! 이종수!” 하고 외치며, 엄선정 같은 애랑 사귀는 걸 보면 종수가 보통 놈은 아니라고 한마디씩 한다.

동화를 읽다 보면 이종수와 엄선정 커플의 모습을 통해 요즘 초등학생의 사랑법을 엿볼 수 있다. 가장 귀여운 대목은 엄선정이 음료수를 한 병만 사서 종수랑 입을 대고 마신다고 고백한 장면이다. 엄선정의 사랑은 단짝인 박담과 신지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박담은 둘도 없는 소꿉친구라고만 생각한 동네 친구 호태와 자신이 과연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 처음으로 의문을 갖는다. 그러고는 호태에게 우리도 음료수 한 병을 나누어 마시니 사귀자고 한다. 반면 지은이는 오랫동안 호태를 마음에 품은 채 짝사랑을 하고 있었다. 박담과 호태가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감정이 복잡해진다. 질투가 찾아온 것이다. 지은이는 짝사랑 호태가 다른 사람이랑 사귀는 것도, 가장 친한 친구 담이를 잃는 것도 모두 싫다.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왔다 갔다 한다.

엄선정은 종수가 뭐가 좋으냐는 질문에 “이종수를 만나면 속이 울렁거려, 자꾸 북소리가 들려”라고 말한다. 누구는 가슴에 나비가 날아온 것 같다고 한다. 왜 그 사람이 좋은지도 모른 채 훅 빠진다. 오묘하고 알 수 없는 마법이다. 그 사람만 보면 웃음이 나오고,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애를 쓴다. 사랑은 갈망과 믿음부터 의심과 질투 그리고 사랑이 거부될 때 생기는 증오까지 여러 무늬를 품는다. 이렇게 다채로운 감정을 품은 이상한 일은 세상에 또 없다. 사랑을 책만으로 배울 수야 없지만 세 소녀의 사랑을 통해 십대 초반의 아이들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만날 수 있다. 사랑은 나를 비추는 가장 정직한 거울이기도 하니까. 초등 5~6학년.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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