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과 함께하는 유럽사 산책김경화 외 5인 지음/글항아리·1만7000원
그 어떤 설명이나 이름보다 이미지가 더 깊이 각인되는 경우가 있다. 여성의 상체와 물고기의 하체가 결합된 스타벅스의 초록색 사이렌 로고, ‘쌍둥이칼’로 더 많이 불리는 세계적인 주방용품 생산 업체 헹켈의 쌍둥이 로고처럼 말이다. 자동차 회사나 축구팀은 또 어떤가. 뛰어오를 듯한 검은 말이 새겨진 페라리, 사자를 차용한 푸조, 푸른색과 흰색으로 원을 4분할한 베엠베(BMW), 왕관과 십자가를 각각 차용한 레알마드리드와 에프시(FC)바르셀로나의 로고도 우리에게 친숙하다.
중세에 문장을 관리하던 문장관 의복의 변천사. 글항아리 제공
이 로고의 공통점은 모두 중세 ‘문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1000년 전 중세 유럽의 전투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문장은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기 위한 표식에서 봉건 엘리트들이 자신의 통치 범위를 표시하거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이후 길드·수도회·기도회·대학·도시 등 단체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변모해왔다. 헹켈의 쌍둥이 로고는 1731년 칼을 주로 만들던 독일의 졸링겐 대장장이 길드조합이 등록한 로고로, 수공업 제품의 내구성과 안전성을 보증하는 표식이 됐다. 레알마드리드나 에프시(FC)바르셀로나의 로고는 각 지역의 상징을 가져온 경우인데 “강력한 연대감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집단적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주술적 힘까지 행사하는” 중세 문장의 기능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다.
중세에 문장을 관리하던 문장관 의복의 변천사. 글항아리 제공
문장이 단지 시각적 상징물로만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인들의 인식 체계와 제도 형성에도 영향을 미쳐 그 자체로 사료가 된다. 자신의 소유물과 식솔들에게 문장을 붙이거나 하사하는 관습은 사유재산제도가 정착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장자를 통해 계승되면서 부계 중심의 성씨 체계가 확립되는 데도 역할을 했다. 문장에 주로 사용됐던 색과 동물을 통해 당대의 인식을 유추해볼 수도 있다. 싱그러움을 연상시켜 오늘날 많이 쓰이는 초록색은 중세에선 ‘악’을 나타내는 색이었다. 영원성을 추구하던 중세 사람들에게 늘 변하는 자연은 기피하고 싶은 요소였던 것이다. 사자와 독수리는 문장이 사랑한 대표적인 동물인데 이는 각각 왕과 황제를
문장에서 가장 인기 많은 동물로 꼽히는 사자. 글항아리 제공
신봉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문장과 함께하는 유럽사 산책>은 국내에서 처음 저술된 문장 관련 연구다. 문장의 기원과 역사부터 구성 요소, 기업·학교·스포츠에서 변용된 오늘날의 문장에 이르기까지 두루 톺아보는 안내서 역할을 한다. 한 챕터를 할애해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속 문장을 상세하게 설명하니, 팬이라면 놓치지 말기를!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