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버거·존 호크스 지음, 주명진·이병권 옮김/뿌리와이파리·1만8000원 1990년대 중반, 부강한 나라의 고인류학자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발견된 사람속 화석을 배타적으로 독점하려 서로 경쟁했다. 화석의 해부학적 특징을 밝혀낼 동안 실제 화석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는 오직 발견자들만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학계에 널리 퍼졌고, 실제로 1994년 남아공에서 발견된 ‘작은 발’(오스트랄로피테쿠스 화석)은 발견된 지 12년이 지나도록 연구 결과가 공유되지 않았다. <올모스트 휴먼>의 저자이자 고인류학자인 리 버거는 이같은 학계의 풍토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인물이다. 저자는 발견된 화석은 가능한 한 빨리 학계에 공유해야 하며, 공개적인 심사를 거쳐야만 연구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2008년 남아공에서 발견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 화석의 연구 과정을 완전히 공개했고, 직접 복제품을 만들어 사람속 화석을 소장하고 있는 전 세계의 모든 주요 박물관에 보내기도 했다. 2013년에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남아공에서 발견한 ‘호모 날레디’ 화석은 발굴 과정부터 전 세계에 ‘생중계’했고, 작업 일지와 성과를 꼬박꼬박 블로그를 통해 알렸다. 심지어 좁은 땅속 동굴을 통과해 화석을 발굴할 학자(저자는 이들을 ‘지하 우주인’이라 불렀다)를 페이스북으로 공개모집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어렸을 적 들판에서 한 화살촉을 찾으며 고인류학에 관심을 갖게 된 순간부터, 호모 날레디 화석을 발견해 성과물을 내놓기까지 저자의 여정이 담겼다. 남아공 자연환경보전지역에서 화석을 발굴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마치 현장에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두개골의 크기, 치아의 배열, 손가락의 길이 등 화석의 형태를 인류의 특성과 비교하는 작업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인류 기원의 무한한 상상력에 압도된다. “유전학자들은 그 데이터에 기반을 둔 논문을 발표하기 전에 디엔에이(DNA) 서열을 공유하고, 천문학자들은 망원경과 다른 기계로부터 얻은 데이터를 공유한다… 정보를 공유하고 논문에 이름을 같이 올리면서 우리는 함께 연구를 진행했고, 더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저자는 호모 날레디 화석에 대한 첫 논문을 폐쇄적인 전통 논문 저널이 아닌 공개접근 정책을 따르는 신규 과학 저널에 제출했고, 동시에 화석 스캔 결과를 한꺼번에 공개해 누구든 복제품을 만들어 연구할 수 있게 했다. ‘먼지 속을 샅샅이 찾아 과거와의 연결점을 찾는다.’ 저자의 작업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연구에는 누구나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그의 남다른 신념 때문이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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