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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부적응자’가 삶을 창조해가는 법

등록 2019-09-27 06:00수정 2019-09-27 20:33

숨을 참던 나날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든·1만7000원

“공인된 부적응자(misfit).” 리디아 유크나비치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삶은 순탄함과는 거리가 멀다. 아버지는 폭력적이었다. 그가 유수의 대학교로부터 합격 편지를 받던 날, 아버지의 첫 반응은 이랬다. “너가 그렇게 잘났냐?” “(집을 떠나) 이기적으로 살겠다고?” 아버지의 폭력을 방치했던 어머니는 우울함을 견디지 못해 술에 절어 지냈다. 수면제를 입 안에 잔뜩 털어넣고 자살 시도를 했다. 집 안에서 리디아는 수치심과 절망을 먼저 배웠다.

훌륭한 수영선수였지만 대학에 진학한 뒤 마약에 손을 댔다. 경기에 출전하면 끝까지 완주하지도 못했다. 수영선수로서의 경력은 홀랑 날아갔다. “내가 빠져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고, 리디아는 그때를 돌아봤다. “뇌를 마비시켜줄 수 있는 경험”이 간절하던 시기였다. 마약 중독으로 재활센터를 다녀야 했고, 대학은 두 번 중퇴했다. 두 번의 휴가를 감옥에서 보냈다.

이뿐이랴. 사랑도 혹독했다. 결혼엔 두 번 실패했다. 무엇보다 그의 삶을 슬픔의 심연으로 밀어넣은 건 딸의 죽음이었다. 딸은 태어나던 날 죽었다. 리디아는 한동안 좀비 같은 나날을 보냈다. 종일 침대에 누워 울며 신음을 뱉어냈다. 조용히 마트 바닥에 앉아 오줌을 싼 적도 있다. “내가 미친 것 같지는 않았고, 그저 내게서 영혼이 떠난 것 같았다.” 꼬박 10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깊은 비탄과 상실의 상태에서 간신히 한 걸음을 내딛는다.

때때로 찬란한 기회가 찾아왔지만, 잡을 용기도 없었다. 세계적인 출판사로부터 출판 제의를 받았을 때였다. “부적응자들은 무얼 바라거나 ‘네’라고 대답하거나 큰 결정을 내리는 법을 잘 몰라요. 좋은 것을 원한다는 걸 부끄러워하는 거죠.”(‘테드’ 강연 중) 그렇게 그는 다시 밑바닥에 웅크리고 만다.

그러나,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야기를 이어 간다. 학대, 성폭력, 중독, 자기파괴, 사산의 슬픔을 겪은 뒤에도 끝내 자신의 힘으로 솟아올랐고 글을 써내려갔다. 고통, 상실, 실패, 시련, 우울과 같은 삶의 잔해를 조각조각 모아 다시 ‘나의 이야기’를 직조해냈다. <숨을 참던 나날>은 그 조각들을 담아낸 결과물이다. 그는 섣불리 “실패나 고통이 아름답다”고 포장하지 않는다. 다만 실패의 순간에도 나 자신은 아름답고, 고통 속에서도 나의 이야기는 들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때론 상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언어로 전달한다. ‘부적응자’에게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온 생애를 꾹꾹 눌러쓴 글을 통해 보여준다.

어느샌가 ‘적당히 체념하며 사는 것’이 미덕이 돼버린 사회에서 리디아의 이야기는 오랜만에 삶의 치열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아픔도, 절망도 대상화되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를 만나는 것도 반갑다. 사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부적응자’ 아니던가. “살아낼 수 있는 이야기를 발견할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만들라”는 그의 말이 더 많은 이들에게 가 닿길 바란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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