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 물재생센터 침전지 모습. 물을 천천히 흘려보내며 부유물질을 가라앉히고 공기를 불어넣어 미생물을 활성화시킨다.(위) 탈수기가 하수 찌꺼기의 물기를 짜내고 있다.(아래)
먹고 마시고 싸고 닦고…
1인당 하루 500ℓ의 물을 쓰고 나면
서울서 500만㎥가 하수도로 흘러든다
더러운 물은 ‘물재생센터’에서 살아나고
분뇨는 지렁이를 통해 퇴비로 거듭난다
현장속 현장
오전 7시30분. 이크, 늦었다, 눈을 비비며 서둘러 텔레비전(TV) 뉴스를 튼다. 어제 마시다 남은 밀크티를 싱크대에 쏟아붓고 주전자에 새 물을 가득 채운다. 물이 끓는 사이 신문을 들고 화장실로 직행. 떨어지는 분비물을 확인하고 서둘러 샤워를 한다.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아침 풍경. 씻고 마시고 비우는 일로 하루는 시작된다. 그 하루가 저물 때까지도 역시 채움과 비움은 반복된다. 먹고 마시고 싸고 뱉고 닦고. 여기에 매일 들어가는 물은 얼추 450-500ℓ. 우리나라 도시 사람들이 하루 평균 쓰는 물의 양이다. 서울 인구가 1100만명이니 수돗꼭지에서 흘러나온 상수 500만㎥가량이 매일 하수도로 흘러들어간다.
26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현천동 난지 물재생센터를 찾았다. 우리들이 매일 배출하는 물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예전에 이곳을 가리키던 ‘하수종말처리장’이라는 이름은 이제 적어도 서울에선 ‘종말’됐다. 지난 11월 서울시는 조례를 개정해 하수종말처리장을 물재생센터로 바꾸었다. 더러운 물을 깨끗이 만들어 다시 한강으로 흘려보내니, ‘종말’ ‘처리’ 보다는 ‘재생’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듯도 하다.
난지 물재생센터는 처리할 수 있는 시설용량이 하루 100만㎥로 서울시 하수의 6분의 1 가량을 맡고 있다. 마포·용산·은평·서대문 전역과 종로·중구·성동구와 고양시 일부 지역의 하수가 이곳으로 흘러든다. 처리용량이 가장 큰 곳은 강서구 마곡동의 서남 물재생센터(하루 시설용량 200만㎥). 중랑(171만㎥) 탄천(110만㎥) 물재생센터가 뒤를 잇는다.
서울~부산 23번 달리는 하수로
서울 전역엔 총길이 1만157㎞의 하수관로가 촘촘히 깔려 각 건물의 하수를 물재생센터 4곳으로 실어나른다. 서울~부산이 428㎞니까 경부고속도로를 23.7번 달릴 수 있는 거리다. 서울의 하수도 지도를 보면, 새삼 서울이 ‘물의 도시’임을 느끼게 된다. 각지의 하수도는 낮은 곳으로 흐르고 흘러 중랑천·안양천·탄천·홍제천·불광천·성북천 등 샛강으로 모여들고 이는 다시 한강변의 탄천·중랑·서남·난지 등 물재생센터 4곳으로 집합해 재생과정을 거친 뒤 한강으로 흘러간다. 서울의 하수도는 빗물과 오수를 따로 분리해 흘려보내는 ‘분류식 하수’가 14%밖에 되지 않는다. 1980년대 이후 택지개발을 통해서 형성된 지역만 분류식 하수를 쓸 뿐, 86% 대부분이 우수와 오수를 함께 뒤섞어 물재생센터로 보낸다. 여름철 큰비가 내리면 하수 처리 부담이 커지는 이유다. 28만평 터에 들어선 난지 물재생센터는 크게 3부분으로 나뉘었다. 첫째는 하수를 모아서 침전시킨 뒤(침전조) 공기를 불어넣어 미생물을 활성화킴으로써(포기조) 물을 정화시키는 곳이다. 두번째는 침전 과정에서 밑에 가라앉은 찌꺼기(오니)를 농축·소화·탈수·건조·소각시키는 시설이다. 셋째는 분뇨처리시설로서 정화조에서 퍼올린 배설물을 분뇨차량이 싣고 와서 쏟아부으면 이를 처리하는 곳이다. 가장 먼저 방문한 침전지는 물을 천천히 흘려보냄으로써 부유물을 밑에 가라앉히고 윗층에 맑은 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을 맞으면서 물재생센터의 악취가 염려되자 서울시는 침전지 위에 뚜껑을 씌워 냄새가 피어오르지 못하게 막았다. 곳곳에선 냄새 포집관이 설치돼 악취가 빠지도록 했다. 냄새 나오는 구멍을 꼭꼭 막은 데다 영하 10℃의 추위 속에선 시궁창 냄새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평균 초속 0.3m의 속도로 하수관을 흘러온 물은 물재생센터에 이르면 11시간 동안 200m 남짓한 침전조·포기조를 천천히 흐르며 정화된다.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 110~120ppm을 넘기던 물은 8~12ppm 정도로 깨끗해져서 한강으로 되돌려지는 것이다.
침전지 밑에 가라앉는 찌꺼기(오니)는 좀더 복잡한 공정을 요구한다. 이점호 위생처리팀장은 “오니는 음식물이 위와 장에서 소화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니는 사람 체온과 비슷한 36~7℃의 온도가 유지되는 소화조에서 20여일을 머물며 미생물이 이를 분해하도록 한다. 음식물을 소화할 때 방귀가 나오는 것처럼 오니 소화조에서도 메탄가스가 나온다. 이 가스는 포집돼 소화조를 데우는 열원으로 사용된다. 사람도 이처럼 방귀를 뀌는 것만으로 몸을 덥히거나 온돌을 달굴 수 있다면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더 푸를지 모른다.
지렁이 먹고 사는 한강 철갑상어
소화조를 거친 오니는 수분이 97%에 이르기 때문에 물을 더 꼭 짜기 위해 탈수기로 보낸다. 탈수기는 오니를 묻힌 두 겹의 필터를 압착해 짜내는 방법을 쓴다. 열을 뿡뿡 내뿜으며 덜그럭덜그럭 필터를 부지런히 돌리는 탈수기는 산업시대 초창기 부산하게 움직이는 증기기관과 흡사한 모습이다. 탈수기 통과 이후 물기가 75% 정도 남은 오니는 하루에 297t이 나온다. 이 중 152t 가량은 수도권 매립지에 매립되거나(1t당 3만300원), 바다에 버려진다(1t당 3만원). 나머지 145t은 소각장으로 이동한다. 소각장에 들어가면 건조기는 오니를 다시 물기가 55% 남는 정도로 말린다. 건조된 오니는 소각로에서 850℃의 불꽃으로 태운다. 이때 소각로에서 발생하는 열은 보일러로 전해져 120℃ 안팎의 고압증기로 바뀌어 앞서의 건조기를 가동시킨다. 이처럼 알뜰살뜰, 허투루 쓰는 에너지가 별로 없다. 소각로 이후엔 산성물질을 중화시키고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작업을 거쳐 12t 정도는 재로 남아 시멘트·보도블럭 등의 원료로(!) 쓰이게 된다. 마지막 남은 물질은 굴뚝으로 빠져 나간다. 연기로 변해 공중에 흩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몸에서 직접 나온 분뇨는 하수에 비해 영양분이 많다. 땅에 묻거나 바다에 버리거나 소각하는 하수 오니에 비해 분뇨 오니가 더욱 쓸모있는 것이다. 난지물재생센터의 분뇨처리장엔 하루에 400대의 분뇨차량이 드나들며 3515㎘의 분뇨를 쏟아붓는다. 분뇨는 일단 협잡물 종합처리기에서 종이·생리대 등의 이물질을 걸러낸 뒤 농축조에 들어간다. 위에 뜨는 맑은 물은 침전지로 보내고, 일부는 소화조로 보내 미생물이 분해하도록 하고, 나머지 일부는 지렁이 사육장으로 들어간다. 지렁이 사육장에서 사람의 똥은 지렁이의 먹이가 된다. 하루에 자기 몸무게 만큼의 똥을 누는 지렁이는 사람의 똥찌꺼기를 먹고 기름진 퇴비(분변토)를 만든다. 지렁이를 기르고 있는 비닐하우스 문을 여니 지렁이가 먹고 싸는 생활의 열기 때문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시야가 뿌옇다. 삽으로 흙을 조금 헤치니 연분홍빛 지렁이 수십마리가 꼬물꼬물거렸다. 8200평의 지렁이 사육장에서 생산하는 분변토는 한해 800t. 1t당 1만9500원에 판매하므로 1560만원 가량의 수익을 올린다.
난지 물재생센터에선 뭐니뭐니해도 지렁이가 가장 큰 자랑거리였다. 사무실 입구에 놓인 어항에선 한강에서 잡아올린 철갑상어를 기르고 있었다. 설명서를 읽어보니 철갑상어는 분뇨 오니를 먹고 자란 지렁이를 먹이로 삼고 있었다. 사람-지렁이-철갑상어가 하나의 고리로 엮여 있다. 사무실 곳곳에 놓인 화분 밑에는 그릇을 하나 더 놓아두었는데 이곳엔 음식물쓰레기를 먹고 사는 지렁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지렁이가 만든 퇴비는 다시 윗 화분의 거름으로 쓰여 고운 꽃을 피워내는 영양제가 된다.
물재생센터를 돌아보니 작은 한숨이 나왔다. 사람 하나가 청결한 삶을 부지하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인가. 적어도 이곳에선 사람보다 지렁이가 더 고상한 동물처럼 느껴졌다.
글·사진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서울 전역엔 총길이 1만157㎞의 하수관로가 촘촘히 깔려 각 건물의 하수를 물재생센터 4곳으로 실어나른다. 서울~부산이 428㎞니까 경부고속도로를 23.7번 달릴 수 있는 거리다. 서울의 하수도 지도를 보면, 새삼 서울이 ‘물의 도시’임을 느끼게 된다. 각지의 하수도는 낮은 곳으로 흐르고 흘러 중랑천·안양천·탄천·홍제천·불광천·성북천 등 샛강으로 모여들고 이는 다시 한강변의 탄천·중랑·서남·난지 등 물재생센터 4곳으로 집합해 재생과정을 거친 뒤 한강으로 흘러간다. 서울의 하수도는 빗물과 오수를 따로 분리해 흘려보내는 ‘분류식 하수’가 14%밖에 되지 않는다. 1980년대 이후 택지개발을 통해서 형성된 지역만 분류식 하수를 쓸 뿐, 86% 대부분이 우수와 오수를 함께 뒤섞어 물재생센터로 보낸다. 여름철 큰비가 내리면 하수 처리 부담이 커지는 이유다. 28만평 터에 들어선 난지 물재생센터는 크게 3부분으로 나뉘었다. 첫째는 하수를 모아서 침전시킨 뒤(침전조) 공기를 불어넣어 미생물을 활성화킴으로써(포기조) 물을 정화시키는 곳이다. 두번째는 침전 과정에서 밑에 가라앉은 찌꺼기(오니)를 농축·소화·탈수·건조·소각시키는 시설이다. 셋째는 분뇨처리시설로서 정화조에서 퍼올린 배설물을 분뇨차량이 싣고 와서 쏟아부으면 이를 처리하는 곳이다. 가장 먼저 방문한 침전지는 물을 천천히 흘려보냄으로써 부유물을 밑에 가라앉히고 윗층에 맑은 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을 맞으면서 물재생센터의 악취가 염려되자 서울시는 침전지 위에 뚜껑을 씌워 냄새가 피어오르지 못하게 막았다. 곳곳에선 냄새 포집관이 설치돼 악취가 빠지도록 했다. 냄새 나오는 구멍을 꼭꼭 막은 데다 영하 10℃의 추위 속에선 시궁창 냄새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평균 초속 0.3m의 속도로 하수관을 흘러온 물은 물재생센터에 이르면 11시간 동안 200m 남짓한 침전조·포기조를 천천히 흐르며 정화된다.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 110~120ppm을 넘기던 물은 8~12ppm 정도로 깨끗해져서 한강으로 되돌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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