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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나, 이재현은 ‘좌빠+자빠’다

등록 2005-12-29 17:28수정 2005-12-30 16:14

‘좌빠’로서 멍청하고 둔하게 살아온 나
외국여행 경험·면허·카드, 세가지가 없다
하지만 내심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자빠’로서 난 말과 글로 신자유주의와 싸운다
새해 계획은 세 가지다
외국 나가기·장구 배우기·말하고 쓰는 영어공부
이재현의 인물로 세상읽기/이재현

난 ‘좌빠’다. 최근 유행하는 식으로 딱지 붙이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십 수년 동안 겪은 정치적 환멸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환멸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 더 좌파 이념을 믿어왔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이제 나는 내 믿음대로 세상이 확 뒤집어지거나 혹은 방향을 홱 바꿔 굴러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믿고 있는 바는, 옛날 식으로 표현해서, ‘숨은 신’이다.

요즘 ‘죽은 개’ 취급을 당하는 어떤 철학자는 딱 160년 전에 유명한 명제를 통해 세계의 해석보다는 세계의 변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처음 접한 이십대 초반의 나는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가. 하지만 지금은 일단 세계를 해석하는 것, 즉 ‘단지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 중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해내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음을 잘 안다. 독일어로 ‘다양하게’란 말은 ‘죽은’ ‘서거한’이란 뜻도 지닌다. 그 말이 어원상 칼로 무언가를 갈라서 분리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탓이다. 헌데, 세계를 바꾸기는커녕, 내 나름대로 세계를 이리저리 갈라보며 분별하는 것도 매우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 먼저 재빠르게 세계의 변화가 나를 베어버렸다.

좌파와 달리 좌빠의 좋은 점은, 세계의 칼에 베여도 결코 죽지 않는다는 거다. 세계는 나를 바꾸지도 못하고 심지어 세계는 나를 해석하지도 못한다. 내 쪽이야말로 흐르는 강이므로 세계는 같은 나를 두 번 건널 수 없다는 식이다. 이거야말로 환멸과 상처를 십 수년 이상 견디고서 얻은 나름의 지론이다.

나는 한쪽으로는 세상의 변화를 잽싸게 읽어내려고 애써 노력해 온 반면에, 다른 쪽으로는, 없이, 둔하게 살아왔다. 없이 살아왔다는 건, 내게 없는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해외에 한번도 나가 보지 못했다. 못한 거냐 안한 거냐 라고 묻는다면 둘 다 라고 답해야 맞을 것이다. 둘째, 차도 없고 면허도 없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다. 면허를 딸 여유가 있다면 차라리 영어 작문이나 회화 공부를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신용카드를 가져본 적이 없다. 특별한 직업이나 기술이 없는 나로서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는 유일한 길이었다.

세계는 나를 바꾸지 못해

좌빠로서 세상을 견디며 사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렇게 나는 살아왔다. 또 멍청하고 둔하게도, 이렇듯 내게 없는 세 가지를 내심으로는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다. 안에 틀어박혀 있지만 책과 신문과 인터넷이면 충분해. 배기 가스로 공기를 더럽히거나 주차 문제로 열 받아 싸우지는 않아. 카드를 안 쓰니 거대 전자관리시스템이 내 사생활 정보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어.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세계가 나를 변질시키기 전에 내가 먼저 세상의 변화를 읽고 쓰는,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에서 나는 과거의 내 친구나 동지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은 적이 있고, 지금도 간간이 그러하다. 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 문학평론을 때려치우고 만화평론‘이나’ 한다든가 또 요즘에는 그 만화평론‘도’ 하지 않고 있다든가 하는 비난이 그것이다. 대학에서 보따리 장사를 해서 최저생계비의 일부를 벌기 위해, 내가 늦깎이로, 예컨대 만화 및 사진을 포함한 이미지의 역사나 문화 이론 등을 힘들게 공부해 가는 게 옛 친구들로서는 이해될 리 없었던가 보다. 그런데 나이 먹은 좌빠로서 이런 분야들을 새로 공부하는 것은 어려움도 크지만 즐거움도 많다. 제대로 공부해보자고 맘을 먹으면 신이 나서 뇌에서 엔돌핀, 즉 마약이 마구 분비되는 것이다.

난 ‘자빠’이기도 하다. 자빠로서 나는 신자유주의와 싸우는 걸 중요한 임무로 삼는다. 대한민국에서는 제대로 된 자유주의가 있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므로, 자유주의 앞에 ‘신’자를 붙인 채 사기를 치는, 낡아빠진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사람들을 착취하고 수탈하고 기만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늘 ‘전투 모드’로 임해서 매번 ‘보스전’을 벌인다. 물론 나의 전투는 거리에서의 몸싸움은 아니고 말이나 글로 싸우는 거지만. 이런 점에서, 나는 얼마 전에 보석으로 풀려나서 재판을 벌이는 홍콩 WTO(세계무역기구) 반대투쟁의 한류 전사들, 그 11명의 ‘수퍼 코리안’들에게 송구스러움을 느낀다.

아직, 시위 현장에서 경찰에 맞아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자유주의를 말하는 것은 여러모로 곤혹스러운 일이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내가 놀던 동네에서 자유주의자라는 것은 심한 욕이었으므로, 자빠로서 내가 말해 온 것은 고전적, 혹은 역사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자유해방주의(libertarianism)라고 변명을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 사회 영역에서든 문화 영역에서든 자유해방주의를 제대로 실천하려면 난봉꾼이 되어야 하는 법인데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기에는 나는 너무 약하고 소심하다.

자유주의를 말하기 힘든 현실

좌빠든 자빠든 간에 학삐리로서 말이나 글로 싸우다 보니까 모국어의 쓰임새에 늘 민감하다. 남한에서 최초로 일본어 등에 의존하지 않고 본격적, 전면적으로 모국어로 배우고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한, 최초의 세대가 문학 쪽의 4.19세대일 것이다. 모국어를 쓰는데 있어서, 이제 칠십을 바라보는 4.19세대와 지금의 내가 다른 점은 무엇일까. 나는 80년대 대학가의 대자보를 그 정치적 활력에 압도된 채 경이롭게 따라읽어간 적이 많다. 그러면서 동시에 저렇게 글을 거칠게 쓰면 어쩌나 하는 아쉬움을 느낀 것이 그 첫 번째 차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인터넷 게시판의 글, 댓글, 답변들이 그렇다. 나를 자주 ‘낚기’도 하지만, 생각이나 표현이 너무 거칠고 파괴적이어서, 마치 단세포 동물의 단말마로 느껴지는 짧은 글들, 더 정확히는 글이자 동시에 말이니까, 그 글-말들의 황폐함에 이래저래 속이 아주 상한다.

사회적으로 모국어가 거칠게 쓰인다는 것은 다른 쪽에서 보자면 우리의 모국어가 아직 어리고 여리다는 뜻이다. 4.19세대를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겨우 40년밖에 안되는 것이다. 우리 모국어의 역사에는 아직 라블레도 없고 셰익스피어도 없고 괴테도 없지만, 없다는 얘기는 얼마든지 앞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거칠게 쓰이고는 있지만 우리 모국어는 싱싱하고 파릇파릇하다. 모국어의 감옥이 나는 좋다.

그러니까 나는, 육칠십대와 일이십대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사회적, 언어적 계곡 사이에 위태롭게 걸려 있다. 몇 가닥 밧줄로 엮인 구름다리인 셈이어서, 매순간 출렁거리기는 하지만 두 세대를 이어준다는 자부심이 있다. 이 자부심은 지극히 주관적인 거라서 냉정한 눈으로 보자면 헛다리짚는 걸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 허공에 걸려 있는 게 어디냐며 자위하며 살아간다.

한국에는 많은 이재현이 있다. 제일 유명한 이는 CJ(씨제이)그룹의 이재현이고, 그 다음으로는 CJ 이재현보다 더 많은 현찰을 한꺼번에 직접 주물러 본, 차떼기 주역인 전 한나라당 재정국장 이재현이 있다. 그 밖에도 많은 이재현들이 있는데, 나-이재현의 신년 계획은 일단 두 가지다. 하나는 외국에 나가보는 일이다. 보름쯤 전에 레바논 미술가들을 만나서 얘길 나누다가, 내가 사회복지나 문화의 측면에서 우리나라 인프라가 엉망이라고 개탄하면서 아직 한국은 제3세계라고 했다가 크게 반박을 당한 적이 있다. 여전히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이다.

6070과 1020 이어주는 자부심

이재현/작가
이재현/작가
그 다음에는 장구를 배우는 일이다. 우선 타악기는 몸과 마음에 다 좋을 거 같아서고, 게다가 또, 사람 앞날은 모르는 거니까, 만에 하나 내가 쿠바나 푸에르토리코의 장구 치는 한국 대사가 되는 날이 오면, 마구 막말을 쏟아내기 위해서다. “미국, 너야말로 범죄정권이야, 너는 역사를 위조해 왔어”라고 장구를 치듯 흥겹게 막말을 내뱉게 될 지도 모른다.

양쪽 계획에 다 곁들여서, 말하고 듣고 쓰는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앞서 말한 철학자는 만 51세 되는 해 정월 초하룻날에 할아버지가 되었고 그 해 가을부터 러시아어를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 분보다는 더 오래 살 작정이니까, 새로 시작하는 공부도 그 분에 비해서는 아주 빠른 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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