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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수학, 자연의 패턴 읽는 우아한 언어

등록 2005-12-29 18:35수정 2005-12-30 16:16

자연의 패턴<br>
이언 스튜어트 지음. 김동광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1만3000원
자연의 패턴
이언 스튜어트 지음. 김동광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1만3000원
눈송이, 호랑이의 줄무늬, 파도, 무지개… 모양이 제멋대로 보이지만 박복되는 수학적 패턴이 있다 이는 우주 탄생 초기에 ‘어떤 보편적 대칭이 붕괴되고 남은 흔적’이다
“눈송이는 어떤 모양일까? 가로등 불빛을 받아 내 외투 소매에서 빛나는 눈송이. 고요히 흔들리며 내리는 눈, 가냘픈 눈송이. 날씨가 춥다. 잘된 일이다. 내 소매 위에 눈이 녹지 않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귀가 시리다.”(<눈송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눈송이는 수학자에게 ‘호기심의 샘’이었다. 어린 시절 그가 수와 도형에 눈을 뜰 때에 그랬고, 지금 수학자로서도 그렇다. 호기심은 똑같은 모양이 여섯 번 되풀이 되는 눈송이의 ‘6각 대칭성’에서 생겨났다. 그것은 불규칙과 규칙을 잘 보여주는 자연의 패턴이자 수학의 세계였다.

‘자연의 수학자’로 불릴 법한 영국 수학자 이언 스튜어트(워릭대학 교수)가 들려주는 신기한 ‘자연 속 수학’의 이야기들이 두 권의 책으로 각각 출간됐다. 하나는 최근 나온 <자연의 패턴>(사이언스북스 펴냄)이고, 다른 하나는 올해 초 출간된 <눈송이는 어떻게 생겼을까>(한승 펴냄)다. <자연의 패턴>(1995)이 현대 수학에 관한 문고판 입문서라면, <눈송이…>(2001)는 관찰하고 성찰하는 수학자의 과학해설에다 여러 컬러 사진·그림을 곁들인 과학 교양서다. 모두 자연을 바라보는 데 범상치 않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책들이다.

눈송이는 어떻게 생겼을까<br>
이언 스튜어트 지음. 전대호 옮김. 한승 펴냄. 3만2000원
눈송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언 스튜어트 지음. 전대호 옮김. 한승 펴냄. 3만2000원
꽃잎에도 순열이 있다

두 책에서 수학은 ‘자연이라는 책에 쓰인 패턴’을 읽어내는 언어다. 그렇기에 수학은 ‘학문의 여왕’다운 모습으로 장엄하고도 매력적이며, 때로는 우아하고도 다정하다.

지은이는 수학자의 눈으로, 언뜻 보아 무질서한 자연 속에서 패턴이라는 숨은 그림 찾기에 나섰다. 어지럽게 떨어져 내리는 무수한 눈송이, 호랑이와 얼룩말의 줄무늬, 표범과 하이에나의 점박이 무늬, 이리저리 뒤얽힌 복잡한 파도와 사막의 모래언덕들, 비온 뒤의 무지개, 겨울 밤하늘에서 주위를 어슴푸레하게 물들이는 달무리, 대지를 적시는 구름과 빗방울…. 그의 사례는 디엔에이(DNA) 이중나선 구조나 세포골격 단백질 같은 생물체, 그리고 우주 탄생과 진화에 나타나는 물질의 무질서와 질서까지 종횡무진한다.


이런 자연의 불규칙이 ‘수학적 패턴’이라는 그의 그물 안에 걸려들고만다. 순열과 기하학은 물론이고 카오스, 프랙털, 복잡계 같은 현대 수학들이 씨줄 날줄을 이뤄 짜인 수학의 그물이다. 예컨대, 제멋대로 모양 같아 보이는 눈송이나 구름을 자세히 관찰하면 부분의 구조 안에 전체의 구조가 담기며 무수히 되풀이 되는 반복의 패턴이 나타나고, 거의 모든 꽃잎들이 3, 5, 8, 13, 21, 34, 55 식의 기묘한 순열(각 수는 앞선 두 수를 더해 얻은 결과다)을 이루는 수의 패턴이 나타난다.

눈송이 결정은 갖가지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모두 ‘6각 대칭 구조’를 이룬다. 또 눈송이는 부분들 속엔 전체의 구조가 반복돼 ‘부분과 전체는 닮은꼴’이라는 프랙털의 원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영국 수학자 이언 스튜어트는 자연에 나타나는 무질서 현상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일정한 ‘자연의 패턴’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제공
눈송이 결정은 갖가지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모두 ‘6각 대칭 구조’를 이룬다. 또 눈송이는 부분들 속엔 전체의 구조가 반복돼 ‘부분과 전체는 닮은꼴’이라는 프랙털의 원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영국 수학자 이언 스튜어트는 자연에 나타나는 무질서 현상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일정한 ‘자연의 패턴’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제공
‘대칭’은 자연이 선택한 또 하나의 중요한 패턴이다. 사람을 포함한 대부분 동물들이 좌우가 닮은꼴을 이루는 ‘거울상의 대칭’이나, 네 잎의 꽃잎처럼 90도를 회전하면 모양이 되풀이 되는 ‘회전의 대칭’, 타일처럼 일정한 시간·공간마다 되풀이 되는 ‘평행이동 대칭’은 우주 만물을 이해하는 열쇠말이다. 이 대목에서 지은이는 거울에 비쳤을 때 나타나는 거울상 대칭이야말로 자연의 수수께끼라고 강조한다. “가령 왼쪽 신발을 아무리 회전시켜도 오른쪽 신발이 될 수는 없다. …육상 생물은 어쩌다 이 특정한 방향성을 활용하게 되었을까?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다. …만약 그것이 우연의 소산이라면, 우리는 멀리 떨어진 어느 행성에 우리의 거울상에 해당하는 생물들이 존재한다는 상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모든 지역의 생물들이 같은 방향을 선택한 데에는 깊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패턴>, 160~161쪽)

그러나 수학은 자연 앞에 겸손해야

좋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패턴을 이루는가? 아무런 구조도 형성하지 않는, 모든 대칭이 파괴되는 뒤죽박죽의 덩어리가 아니라 유독 어떤 패턴을 이루는 까닭은 과연 무엇인가? 스튜어트 교수는 우리 자연에 패턴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주 탄생 초기에 “어떤 보편적 대칭이 붕괴되고 남은 흔적”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카오스’(혼돈)를 ‘신나는 무질서의 신세계’ 쯤으로 여기는 건 대단한 오해라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주사위를 굴릴 때 어떤 숫자가 나올지 정확히 예측할 순 없지만 구르는 주사위 운동은 규칙에 따라 이뤄지는 것처럼, 카오스는 “완벽하게 규칙에 의해 지배되는 규칙적이지 않은 형태”, “규칙성과 무작위성 사이의 노을 지역에 사는“ 것이다. 규칙은 존재하지만 우리는 주사위에서 어떤 수가 나올지 모른다, 또는 알 수 없다는 얘기다.

듣다보면, 그는 ‘패턴’으로 우주 만물을 다 이해했노라고 선언할 것만 같다. 그렇지만 그는 오히려 자연에서 엄청난 다양성과 우연성, 불확실성에 눈을 뜬다. “각각의 눈송이가 자기만의 궤적을 그리고, 자기만의 역사를 거치고, 자기만의 여행기록을 미세한 결정 구조로 남긴다. …10억개의 정육각형 씨앗이 있었다면, 10억개의 여행과 10억개의 역사가 있다. 10억개의 눈송이가 태어나는 것이다.”(<눈송이>, 214쪽)

그렇기에, 5천년 역사를 이어온 ‘학문의 여왕’으로서 수학의 자부심도 그런 자연 앞에서 겸손하다. “이제 새로운 수학이 꽃피울 시기가 무르익었다.…이전까지의 수학 체계는 그 자체로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었고, 연필과 종이의 제약 속에 갇혀 있었다.”(<패턴>, 252~253쪽) “나는, 우리가 세계에 관해 진정으로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반짝이는 실제 눈송이와 비교했을 때 눈송이에 관한 내 이야기가 얼마나 초라한지, 잘 알고 있다. 더 배워야 할 것이 아주 많다.”(<눈송이>, 214쪽) 그의 마지막 말은 이렇다. “눈송이는 어떤 모양일까? 눈송이 모양이다.” 작은 티끌 하나가 세계를 머금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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