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 헤엄치는 물고기’ 멸치에 렌즈를 들이댄 그림책
각각의 멸치 ‘살아 있는 표정’…유쾌한 목소리 들리는 듯
각각의 멸치 ‘살아 있는 표정’…유쾌한 목소리 들리는 듯

유미정 글·그림/달그림·1만4000원 물고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덩치 큰 고래나, 날카로운 이빨의 상어다. 작고 떼 지어 다니는 멸치는 아이들의 호기심 그물에 잘 걸리지 않는다. 육수를 낼 때 필수적인 존재지만 어른들에게도 멸치의 존재감은 명태나 고등어 같은 생선에 밀린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튼튼한 지느러미로 나를 원하는 곳으로 헤엄치네.” (루시드폴 <고등어>), “검푸른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찬물을 호흡하고.”(가곡 <명태>) ‘친구’들은 깊고 푸른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는 이미지로 음악하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지만 멸치는 반찬과 안주 사이 어딘가, 어중간한 위치에서 떠돈다. 그림책 <멸치의 꿈>은 ‘바닷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로서의 멸치에 렌즈를 들이댄 책이다. “이래 봬도 헤엄 잘 친다고 소문난 멸치였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유쾌한 멸치의 목소리는 책장을 넘기자마자 읽는 이들을 깊은 바다로 이끈다. 사천구백아흔아홉 번째로 태어난 멸치는 달빛을 쫓다가 고깃배 등불에 속아 속절없이 그물 위로 훌훌 떨어진다. 이때부터 기구한 삶이 시작된다. “아따, 뜨거워 죽겠네!” 팔팔 끓는 가마솥에서, 뜨거운 햇볕에 고초를 겪은 멸치는 키재기를 통해 등급으로 분류되는 굴욕도 겪는다. “똥은 무슨 똥! 내 아무리 작아도 창자는 있다네.”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서 ‘똥을 뺀다고 난리 쳐도’ 멸치는 ‘이제 다 내려놓으니 몸이 가뿐하구나’, ‘빳빳이 마르고 난 뒤에야 다들 울고, 웃고 소리도 치고, 화도 내는구나’라며 관조한다. 머리만 남은 멸치에게 꿈이란 게 있을까? 바다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의 꿈도 사라지지 않는다. ‘바다로 바다로 헤엄쳐 가자! 우리, 바다가 되자!’ 바다와 하나가 되는 멸치를 보며 읽는 이도 자연스레 바다와 하나가 되는 기분을 갖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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