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우생사회가 될 때까지: 과학계몽, 미디어, 생식의 정치
요코야마 다카시 지음, 안상현·신영전 옮김/한울아카데미(2019)
2016년 7월26일 새벽,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에 있는 지적장애인 복지시설 ‘쓰구이 야마유리엔’에서 대규모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26살의 전 시설 직원 우에마쓰 사토시가 시설에 침입해 칼로 19명을 살해하고 26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끔찍한 사건이었다. 체포된 우에마쓰는 ‘불행만 만드는’ 장애인은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안락사’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발생 직후 일본 언론은 이를 ‘우생사상’과 연결해 논의했다.
그러나 이 책의 지은이 요코야마 다카시는 사건의 발생 동기를, 단순히 문제를 일으킨 한두 사람이 과거의 ‘우생사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낙인찍거나, “이런 사건이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사건의 구조를 파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건을 일으켰던 원인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의학사를 중심으로 근현대 일본을 연구해온 저자는 러일전쟁 이후 도입된 우생사상이 계몽운동과 미디어를 통해 대중과학의 형태로 널리 전파되는 과정을 통시적으로 면밀히 분석한 끝에, 이 사건이 단순히 과거의 우생학이나 안락사론과 연결되지 않는 지극히 현대적인 현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러일전쟁 이후 민족 개조를 위한 단종법(국민우생법) 제정 운동과 종전에 이르는 시기가 ‘구(舊) 우생학’의 시대였다면, 전후 1948년 ‘우생보호법’이 제정되고, 1960년대 산전 진단 기술(태아의 심각한 유전 질환을 출생 전에 진단하는 기술)이 보급되어 현재에 이르는 시기를 ‘신우생학’의 시대라고 명명한다.
구 우생학 시대 ‘단종’이 민족 개조를 위한 국가권력의 강제였다면, 신우생학 시대의 ‘임신중절’은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차이가 있다. 단적인 사례 중 하나가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사라진 ‘불행한 아이 태어나지 않게 하는 운동’과 선천적 장애인의 복지와 선진 의료 개발을 위해 산부인과에서 비장애아를 출산한 임산부에게 헌금을 요청한다는 이른바 ‘오갸 헌금’ 등이었다. 오갸 헌금에 내재한 사상은 비장애와 장애를 구분해 전자는 행복하고 후자는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선진기술의 개발을 통해 장애아 출산, 다시 말해 불행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우에마쓰 사토시의 범행 동기는 하나의 극단이었을 뿐이다.
요코야마 다카시는 1980년대까지 일본의 적지 않은 산부인과 의사가 우생사상을 과학이자 상식으로 간주했다면서, 전후 우생학 운동의 역사를 부정하고, 우생사상을 우리와 관계없는 외부의 거대한 악으로 간주한다면 오늘의 우생사회는 변화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위기와 고난 앞에서 인간의 참모습이 드러나는 것처럼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이 바이러스가 드러내는 것이 차별과 배제만은 아닐 것이다. 확진 판정을 받고도 병상이 없어 집에서 대기해야 하는 지역 시민의 상황은 대구·경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의료 공공화를 대신해 사영화를 추구해온 이 나라 대부분이 처한 문제이며, 청도대남병원 정신질환자들의 잇따른 죽음은 한국 또한 일본과 다를 바 없는 ‘우생사회’라는 진실을 보여준다. 우리의 행복을 위협하는 것은 불행을 끝없이 차별하고 배제한 뒤에 ‘나’만 아니면 된다는 바로 그 잘못된 행복의 추구였다.
<황해문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