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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미술관에서 ‘광장’을 읽다

등록 2020-02-28 05:59수정 2020-02-28 10:28

[책&생각] 서영인의 책탐책틈

광장
윤이형·김혜진·이장욱·김초엽·박솔뫼·이상우·김사과 지음/워크룸 프레스(2019)

국립현대미술관의 개관 50주년 기념 전시가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를 주제로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는 곧바로 최인훈의 <광장>을 떠올렸다. 동시대의 미술을 다룬 3부의 전시장에는 익명의 얼굴을 담은 사진들이 연달아 전시되어 있었고, 사전정보 없이 입장한 나는 ‘광장’을 떠올리며 이 개별적 표정과 신체들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러고 보면 최인훈의 <광장>에도 “생각보다 광장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로는 아예 나오지 않았다.”(박솔뫼) 정말 그렇다.

7명의 작가가 ‘광장’이라는 주제로 쓴 단편을 묶은 <광장>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3부 전시장의 입구에 소설집은 전시품처럼 놓여 있었다. “전시실이라는 공간에 화려하게 펼쳐졌다가 몇 달 후에는 완전히 철거”(출간의 말)될 전시 이후에 소설은 전시의 기억을 복기하며 계속 ‘광장’에 대해 말을 걸 것이다. 마치 최인훈의 <광장>이 반세기가 지난 이후에도 우리에게 말을 걸며 전시의 공간에 재현되는 것처럼. 그리고 나는 전시실에서 보았던 익명의 초상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번갈아 생각했다. 미술관은 너무 넓어서 관람 후의 나는 몹시 지쳤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엉덩이 부분이 푹 꺼진 내 방의 의자에 앉아 소설을 읽었다. 그날의 궤적이 만들어 낸 내 나름의 ‘광장과 밀실’이었던 셈이다.

휴일 낮, 하루 동안의 내 ‘광장과 밀실’은 순조롭고 평안하다. 전시실은 안전하게 가공된 광장이기 때문이다. 전시실 밖의 광장은 더 피로하고 더 난감하고 더 불안한데,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광장을 향해 간다. 광화문 광장을 폐쇄하고 그 자리에 복합 집회 문화공간을 짓겠다고 정부가 발표하자 이에 반대하는 만화가들은 연대한다. 그러나 광장을 지키기 위해 모인 그들은 각각의 사정과 의견과 경험들이 충돌하자 상처받고 외면하며 지쳐간다.(윤이형) 박솔뫼는 광장과 밀실을 오가다 중립국을 택한 <광장>의 이명준을 재일조선인 김시종과 연결시킨다. 경우는 다르지만 이명준과 김시종은 국가이든 체제이든 공동체가 형성되는 곳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배제와 차별을 상기시킨다. 박솔뫼의 소설에 등장하는 또 다른 재일조선인 권희로는 차별에 항의하는 인질극의 현장에서 “폐를 끼쳐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폐를 끼쳐서 우리는 평안한 공동체 내부에 숨은 갈등과 배제를 알게 되었다. 어떤 광장에서는 “나는 폐를 끼치고 싶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돕게 하고 싶습니다.”(박솔뫼)라는 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우선 서로 다른 각자의 얼굴을 골똘히 생각하며 “그녀가 무사하길 바랐다.”(윤이형)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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