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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호르르르 조르르르 동시가 알사탕 같아

등록 2020-03-06 06:01수정 2020-03-06 10:01

오리 돌멩이 오리
이안 시, 정진호 그림/문학동네·1만1500원

“너에게 주는 말이니까 이제부터 네 말이야.”

이안 시인은 네번째 동시집 <오리 돌멩이 오리>를 통해 읽는 이들의 손에 조약돌처럼 반들반들한 ‘말’을 쥐여준다. “나는 은이 좋아/ 은하수/ 은빛/ 은근/ 은은하다…”(‘은’), “동동동동/ 오리가 헤엄쳐 가면/ 오리 뒤로/ 길다란 시옷이 만들어진다…”(‘시옷’) 책장을 펼치고 흥얼거리다 보면 입 안에서 달콤하고 새콤한 알사탕 같은 말이 구른다. 계속 혀로 굴리고 싶고, 맛을 간직하고 싶다. 입맛을 쓰게 할 어려운 표현이나 생소한 단어는 없다. 어른에게는 ‘시를 읽는 맛이 이런 거였지’라는 생각을 들게하며 잊고 있던 ‘동시의 맛’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네 말 중에/ 조금이 좋아/ 조금 아픈데 괜찮아/ 조금 많이 화가 나…”(‘조금’) “형선이가 밥을 얼마나 천천히 먹느냐면/ 형선이가 밥을 다 먹고 숟가락을 놓는 순간/ 온 세상에 기적이 일어날 것처럼 천천히 먹는다”(‘형선이’) 동시전문지를 내며 전국의 어린이 독자를 만난다는 시인의 눈을 따라가면 그동안 쉽게 지나쳐 버린 아이들의 숨은 표정이 보이기도 한다. 조약돌을 말없이 품고 있는 강물처럼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그림도 시 읽는 맛을 더한다.

시집 곳곳에서 자리잡고 있는 꽃, 소금쟁이, 오리, 돌멩이 등을 소재로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시를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다. 봄을 맞아 얼굴을 내미는 민들레를 길가다 만나면, “금 간 시멘트 사이에서/ 노란 민들레가 피어났다/ 민들레처럼 노란/ 시는/ 마음이 금 간 곳에서/ 피어났다/ 금 간 곳에 달아주는/ 노란/ 단추”(‘금’)라고 흥얼대고, 4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호르르르 벚꽃잎이 떨어진다/ 벚꽃잎 그림자가 조르르르 달려간다/ 벚꽃잎 엉덩이에 방석을 대어 주려고”(‘그림자 방석’)라고 노래 부르면 어떨까. 8살 이상.

이승준 <한겨레21>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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