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새라 소설 <민들레꽃 사랑>
1996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홍새라(40)씨가 첫 소설집 <민들레꽃 사랑>(푸른나무)을 펴냈다. 표제작을 포함한 단편 여섯과 중편 하나가 묶였다.
홍씨의 소설들은 90년대 이후 주류가 되다시피 한 ‘여성 소설’의 경향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을 보인다. 역사적 상처와 현실의 어둠을 헤집는 작가의 손길은 오히려 ‘80년대적’이라 할 법한 면모를 보이기까지 한다.
표제작은 2차대전 때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갔던 주인공이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에 신음하는 모습을 통해 역사적 상처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다. 전쟁이 끝나고서 귀국한 주인공 일순씨의 뱃속에는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뱃속에서 매독에 감염되어 정신질환을 앓게 된 아이는 일찌감치 시설로 보내졌지만, 새롭게 가정을 꾸리고 나름대로 안온한 생활을 영위하던 일순씨 앞에 장성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 행패를 부린다. 작가는 일순씨가 겪은 과거의 지옥과 현재의 악몽을 보여주면서 그것이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나직하게 묻고 있다. 소설의 마무리는 아들의 패악 이후 정신을 놓았던 일순씨가 다시금 심기일전해서 아들이 있는 병원에 다녀오겠노라며 길을 나서는 장면인데, 이를 통해 작가는 역사의 상처를 극복하는 모성애의 힘을 강조하려는 듯하다.
새로 닦이는 길가 논을 사 들여 식당을 열겠노라며 논을 팔라는 서울 사장의 요구를 고심 끝에 거절하는 농사꾼을 등장시킨 <논 이백 평>, 역시 새롭게 건설되는 고속도로와 기독교의 침투 앞에 전통적 삶의 양식과 가치가 파괴되는 양상을 고발한 <뜸북새가 사라진 물언지>, 해고노동자들의 복직투쟁과 농촌공동체의 파괴에 대한 저항을 한 줄에 꿰어 이해하는 <마음속의 고향> 등은 현실을 지배하는 개발논리에 전통의 공동체적 가치로써 저항하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주인공의 구수한 입말로써 서술되는 <서울에 온 횡성댁>에서도 작가의 그런 기조는 여일하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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