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의 시대: 초연결의 시대, 장벽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팀 마샬 지음, 이병철 옮김/바다출판사·1만6500원
국제 문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팀 마샬과 로버트 캐플런은 낯설지 않은 저널리스트들이다. 두 사람 모두 지정학을 바탕으로 국제 문제에 대한 거시적 분석과 비평을 내놓는다. 두 사람의 관점은 상이하다.
미국의 캐플런은 미 제국의 존재가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힘이라는 철학에 바탕해, 미 제국에 대한 도전을 지정학적 관점에서 살핀다. 그에게 지정학은 제국의 학문이다. <지리의 복수> 등에서 그는 제국에 대한 도전이 가져올 디스토피아를 현란하지만 친절하지 않은 문체로 독자들에게 강요한다. 반면, 영국의 마샬은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국제 사회를 바라본다. 그에게 지정학은 제국 자체가 초래하는 위기를 다루는 학문이다. <지리의 포로들>(한국 번역서는 <지리의 힘>)에서 마샬은 제국이 초래하는 디스토피아를 평이하고 쉬운 문체로 설명한다.
지은이 팀 마샬은 지구촌의 디스토피아를 ‘장벽’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사진은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을 갈라놓은 장벽. 바다출판사 제공
마샬의 <장벽의 시대>는 <지리의 포로들>에서 다 말하지 못한 지구촌의 디스토피아를 ‘장벽’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왜 우리는 장벽의 시대에 살고 있나’가 원제인 이 책에서 장벽이 상징하는 분리와 격리, 차별과 혐오가 퍼지는 세계화 역류 시대를 조망한다. 세계화가 개방과 연결을 이룬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별과 분리가 점증하는 현재의 디스토피아를 만들며 역류한다고 그는 진단한다.
냉전 시대에 세계는 자본주의권과 사회주의권 사이를 나누는 큰 장벽이 그어졌으나, 현재 장벽은 국가와 국가 사이에, 국가 내 지역 내에서 그어지고 있다. “적어도 65개 나라가, 전 세계 국민국가의 3분의 1 이상이 국경선을 따라 장애물을 설치했다. 2차대전 이후 세워진 것 중 절반은 2000년 이후에 생겨났다.”
개방과 통합의 상징인 유럽에서는 냉전의 절정기보다 더 많은 장벽과 철조망이 들어선다.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마케도니아와 세르비아, 세르비아와 헝가리,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 사이 등 동유럽뿐만 아니라 서유럽인 스웨덴과 덴마크 사이에도 장애물이 설치됐다. 마샬이 지적하는 이런 인위적인 장벽은 사실 상징일 뿐이다. 각 국가와 사회 내에 존재하는 제도적 차별과 격리, 분리, 혐오가 실제적인 문제이다. “장벽이란 분리의 이유가 아니라 분리의 결과일 뿐이다.”
마샬은 중국, 미국,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중동, 인도, 아프리카, 유럽, 영국에서 벌어지고 점증하는 분리와 차별의 실태를 보여준다. 이는 각 국가와 사회 내에서 존재하던 전통적인 차별과 분리가 세계화로 인해 그들의 정체성이 도전받자,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소셜미디어가 우리를 통합하리라 믿었는데, 이후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우리가 처해가는 새로운 분리의 시대는 디지털 시대의 발전을 반영하고 그로 인해 악화된다.”
역사 내내 가장 혹독한 차별과 혐오를 받았던 유대인들이 세운 이스라엘과 그 주변이 가장 악랄하고 제도적인 분리와 봉쇄의 구역이 된 것은 역사의 비극을 말해준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주민이 사는 가자 지구를 지붕이 없는 거대한 수용소로 만들고, 서안 지구 내에 거미줄 같은 장벽을 세웠다. 이스라엘 내의 분열도 복잡하다. 이스라엘 내 유대인과 아랍계 주민 사이의 분리뿐만 아니라, 유대인 내에서도 세속파, 초정통파 등으로 나뉘어, 거의 소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서로 결혼도 않고, 다른 교육기관에서 교육받는다.
마샬은 장벽을 현실이라고 본다. 장벽 해체나 열린 국경은 현재로서는 가능하지 않다. 몰려드는 사람을 차단하는 장벽을 없애려면, 몰려드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명확한 것은 우리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더 많은 돈을 보내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돈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려고 할 것이다.” 전 지구적인 부의 재분배만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위협받는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에게도 장벽의 필요성을 격감시킬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