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라이언 W. 커니핸 지음, 양병찬 옮김/어크로스·1만3500원 가짜뉴스가 판치는 빌어먹을 세상, 스스로의 힘으로 진실을 마주하려면 익혀야 할 기술이 적지 않다. 이 가운데 숫자 감각은 가장 중요한 범주에 속한다. 1면에 주로 유명인 스캔들을 싣는, 영국의 대표적 황색언론 <더 선>(The Sun)은 2018년 2월12일 이런 제목의 기사를 싣는다. “유엔의 국제 구호활동가들, 6만명의 무고한 민간인을 강간하다”. 국제 구호활동가들이 전 세계에서 성적 학대를 저질렀고, 지난 10년 동안 이런 강간 범죄가 6만건에 이른다는 것이다. 놀랄 일이다. 하지만 이 숫자는 매우 허술하게 만들어졌다. 2017년 유엔의 한 보고서에 실린 문장이 시작이다. “작년 평화유지군에 의한 성적 착취 피해자가 311명이다.” 이 문장을 두고 한 유엔 직원이 군인에 의한 성범죄가 300명가량이니 유엔 소속 민간인의 범죄도 비슷한 수준에서 저질러졌을 것으로 보아 600명으로 숫자를 늘렸다. 이어 성범죄의 10%만 보고되기 마련이라는 이론에 따라 여기에 10을 곱했다. 다시 지난 10년간 발생 건수를 다 모은다는 취지에서 다시 10을 곱했다. 이런 숫자를, <더 선>은 머리기사 제목으로 갖다 붙였다. 황당하지만, 돌아보면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다. 흥분하고 절망하기 전 먼저 정신을 차리고 볼 일이다. 그래서 이런 숫자들에 속지 않으려면 ‘숫자 감각’을 길러야 한다. 저자인 브라이언 W. 커니핸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현대 컴퓨팅의 삼현(三賢)’이라 불리는 이 분야 전설적 존재다. 이 책은, 그가 20년 동안 대학에서 비이공계 학생들에게 수학을 지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숫자 감각을 익히는 법을 모아 쓴 책이다. 숫자를 다룬 책치고 의외로 ‘만만하다’. 주어진 사례들이 죄다 미국 사회와 관련된 것이어서 ‘숫자로 보는 미국 사회상’으로도 읽을 만하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